전문가칼럼
차부회(77회) 은율탈춤(국가무형문화재 61호) 보유자(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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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시사인천(18. 5.15)
“무형문화재, 우리 삶이고 역사인데 사라지면 안 되잖아요?”
[문화와 사람] 차부회 은율탈춤(국가무형문화재 61호) 보유자
“우연히 야외공연장에서 탈춤 공연을 봤지요. 굉장히 속이 후련해지고 흥이 나더군요. 그때 결심했죠. 이거 꼭 해야겠다고”
차부회(61·사진) 선생은 한평생 걸어온 탈춤 인생의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국가무형 문화재 61호 은율탈춤 보유자다. 답답했던 스무 살 청년 의 가슴을 흔들어 놓은 탈춤. 어쩌면 탈춤과의 인연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봉산탈춤(국가무형문화재 17호)과 강 령탈춤(국가무형문화재 34호) 보유자였던 고(故) 양소 운 선생이다. 열한 살부터 예인의 길에 들어섰던 그는 아 들을 낳기 전 해인 1958년 봉산탈춤을 재현하고 1967년 보유자로 지정됐다. 차 선생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 라 자주 공연장을 다녔다. 공연에 대한 첫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섯 살 쯤 됐을 거예요. 명동 국립극장에서 어머니 가 공연하는 걸 보면서 따라했던 기억이 나요. 엄마가 입으로 ‘덩더끼쿵덕’ 하고 장단을 맞춰주면 탈을 쓰듯이 얼굴을 가리고 춤을 추곤 했어요. 탈춤이나 민요 공연이 그냥 좋았어요”
인천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는 정식으로 탈춤을 배우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를 공연장에도 오지 못하 게 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해 평범한 삶을 살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수시절 길을 걷다 우연히 다시 본 탈 춤 공연에서 강한 끌림을 느꼈고, 그 해 대입 예비고사 를 치르자마자 은율탈춤 전수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 곳엔 어머니의 스승과 제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걱정 의 시선을 보내는 어머니를 “답답해서 취미삼아 배우려 한다”는 말로 설득했다.
# 탈춤 추면 밥 굶는다고? ‘먹고 사는 것 보여주겠다’ 오기 생겨
대학에 들어가선 아예 봉산탈춤 동아리를 만들었다. 학교에 강사를 초빙해 기초부터 배워나갔다. 여전히 어 머니에겐 비밀이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 던가. 축제 발표회 날, 강사가 모셔온 장구 치는 악사가 하필 어머니였다. 그날부터 그는 어머니의 엄청난 반대 를 맞닥뜨려야 했다. “배고프고 고생만 하는데 이걸 왜 하느냐는 거예요. 이번엔 제가 물었죠. 대체 어머니는 뭐가 좋아서 평생 하셨느냐고 말이에요. 어머니가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더 라고요” 한참 후 그의 어머니 입에서 이런 말이 떨어졌 단다.
“그래 좋다. 대신 일 삼아서 하지는 말아. 그래야 배 라도 안 고프지” 대답은 했지만, 그에겐 딴 맘이 있었다. “다들 탈춤 추면 밥 굶는다고 걱정하는데, 이걸로 먹고 사는 걸 보여줘 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어머니와 약속한 대로 취업 원서는 썼다. 다만 면접에 가지 않았다. 어머니에겐 실력이 없어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졸업 후 완 전히 이 길로 뛰어들었다.
# 어머니에게 칭찬 듣는 게 소원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탈춤을 배운 사람만 10만명 쯤 될 거라 어림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인재개발원과 연수원 등 그를 부르는 곳이면 먼 타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고 공연했지만, 어머니는 그를 제자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연 습에 매진했다. 이런 모습에 어머니는 그의 춤사위를 하 나하나 짚어주고 지적하며 탈춤의 정수를 전하기 위해 애썼다. 몇 년 후, 어머니는 결국 그가 자신의 대를 잇는 다는 것을 인정했다.
“소원이 하나 있었어요. 어머니한테 칭찬 한 번 듣는 거였죠. 매섭게 지적은 해도 단 한 번도 잘한다는 말씀 을 해주신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의외의 순간에 그는 어머니로부터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한테 치매가 왔을 때였어요. 제가 출연한 공연 이 끝나고 같이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어머니가 ‘아까 사자춤 참 멋들어지게 잘 추더라. 누구냐?’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 그거 저예요’라고 말했죠.
그 다음부터 또 아무 말씀이 없으셔요. 제가 흐트러질까봐 일부러 칭 찬을 안 하신 어머니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는 전수자와 이수자 과정을 모두 거친 뒤 2003년 은 율탈춤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인간 문화재가 된 흔치 않은 경우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은율탈춤 이수자로 선정됐고, 딸도 탈춤 공연 기획자로 일 하며 은율탈춤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은율탈춤보존회에선 입회비 2만원(학생 1만원)과 월 회비 5000원을 내면 회원 자격을 준다. 회원이 되면 토 요일마다 열리는 탈춤 강습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탈춤을 배우면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요. 탈춤 이 음악과 춤, 미술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거든요. 또, 전신을 움직여야 해서 다른 운동은 필요 없을 정도예요” 그의 탈춤 사랑은 끝이 없다.
# 전수교육관 인천시 직영은 문제 있어
그는 올해 초 사단법인 인천시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인천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여섯 종목 과 인천시지정문화재 스물여덟 종목 등, 모두 서른네 개 종목이 있다. 그는 문화재 보유자들 가운데 80세가 넘은 고령자가 많고 이수자나 전수자마저 60세가 넘은 경우 가 허다한 데다 전승자가 없는 경우도 꽤있어 단절의 위 험이 있다고 걱정했다.
“전수자로 시작해 이수자가 되고 전수조교를 거쳐 보 유자가 되지요. 그런데 인천에 무형문화재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이를 알리고 교육하기 위해 무형 문화재 전수교육관(문학동 소재)을 지었지만, 제대로 역 할을 못하고 있어요” 그는 전수교육관을 시에서 직영하는 것이 가장 큰 문 제라고 지적했다.
“인천문화재단 등에서 지원을 받아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은데, 시에서 직영 하고 있어 아예 지원 자격이 없어요. 시에서 받는 예산으 론 할 수 있는 사업이 거의 없고요. 있던 예산도 깎이고 있어요. 시에선 전수교육관을 관리만 할 뿐 제대로 운영 한다고 볼 수 없어요” 차 선생이 바라는 건 무형문화재총연합회에서 전수교육관을 위탁 운영하는 것이다.
“무형문화재를 잘 아는 사람들이 전수교육관을 운영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 한지 시에선 하나도 몰라요. 위탁운영만 되면 정말 제가 춤을 추고 다닐 것 같아요” 그는 지난해 무형문화재 전승자 워크숍을 처음 열었 다. 올해 두 번째 워크숍도 준비 중이다. “점점 잊히고 있는 무형문화재가 잘 전승되면 좋겠어 요. 우리 삶이고 우리 역사인데 사라지면 안 되잖아요? 평생을 해온 일이니 저도 최선을 다하려합니다. 많은 관 심 가져주세요”
출처 : 시사인천(http://www.isisa.net)
은율탈춤은 황해도 은율지역에 전승돼온 탈춤이다. 200∼300년 전 섬에서 난을 피하려고 뭍으로 나온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탈을 쓴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세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춰야하는 백사자 춤으로 시작해 양반에 대한 조롱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남녀처첩간의 갈등과 무속의식까지 전체 여섯 과정 속 에 옛 서민들의 생활사가 흥겨운 한판 춤으로 펼쳐진다.
1인 1역을 맡을 경우 악사를 포함해 서른 한 명이 등장하는 큰 규모의 공연이다. 은율탈춤보존회에선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1년에 단 한 번 은율탈춤 전 과정을 공연한다. 1978년 1회 정기공연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5월 22일 수봉공원 입구 은율탈춤보존회 야외공연장에서 오후 1시부터 북청사 자놀음의 축하공연에 이어 오후 2시부터 고사와 길놀이로 은율탈춤의 시작을 알린다. 공연은 두 시간 동안 이어진다. 부대행사로 탈 그리기와 연 만들기, 달고나 만들기, 제기차기, 투호 등 다양한 즐길 거리도 마련한다.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문의ㆍ은율탈춤보존회 032-875-9953)
심혜진 시민기자
승인 2018.05.1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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