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김병종(71회) 서울대 교수 퇴임 회고展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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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조선일보918. 5.15)
그림 향한 40년 외사랑… 죽음 같은 시련도 견디게 했죠
김병종 서울대 교수 퇴임 회고展 '바보 예수'부터 '송화분분'까지
"화첩기행은 글·그림의 행복한 동거… 퇴임하면 컴퓨터학원에 등록할 것"
서울대 캠퍼스에 최루탄 연기 자욱했던 1980년대, 김병종(65)은 이 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임용됐다. '예수가 만약 지금 이곳에 온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격렬한 저항의 현장에서도 바보처럼 자기희생과 사랑을 얘기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으로 시작한 그림이 그를 세상에 알린 '바보 예수' 연작이다. "'바보 예수'를 다시 걸어놓으니 만감이 교차하네요. 이 작품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거든요. 당시에는 신성 모독을 했다는 이유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비난도 받았고, 중국 진르(今日)미술관에선 종교적인 색채가 있는 그림이라며 전시가 거부됐었죠."
올여름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하는 김병종 교수가 40년 화업(畵業)을 돌아보는 회고전을 연다. 청년 교수 시절 그린 '바보 예수'부터 '생명의 노래', '화첩기행', 그리고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60여 점을 전시한다. 서울대 미술관에서 만난 김 교수는 "퇴임을 앞두고 조금 착잡하지만, 오롯이 작업에 시간을 쏟을 수 있어서 설렌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니 내가 방황을 많이 했더라"고 했다. "모교와 인연이 작가로서의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제나 기법을 변주하면서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제자와 스승, 동료들에게 끊임없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동양화 전공자로 전통과 혁신 사이를 오가며 중압감을 느꼈는데, 제자들의 그 발랄한 상상력에 자극과 용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교수 퇴임전에서 처음 선보이는 신작‘송화분분’(2018·왼쪽)과‘숲에서’(1998)사이에 선 김병종. 연노란 색점의 송홧가루는 생명력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올 하반기에 송화분분을 주제로 전시할 예정이다. /이진한 기자
김 교수가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 건 1998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한 '화첩기행' 덕이다. 신춘문예에 두 번이나 당선될 만큼 문재(文才)도 뛰어났던 그는 그림과 문학이 대등하게 만난 지면을 통해 4년간 독자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줬다. 이번 전시에도 '화첩기행' 때 그린 소품들이 걸려 있다. 김 교수는 "글과 그림이 서로 안 싸우고 행복하게 동거한 게 바로 '화첩기행'"이라며 웃었다.
김병종은 중국에서도 유명하다. '바보 예수'가 걸리진 못했지만, 2015년 진르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생명지가(生命之歌)'는 대성황을 이뤘다. 개막식을 취재하기 위해 CCTV와 인민일보 등 40여개 중국 매체 기자들이 전시장을 메웠다. 앞서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를 방문했을 때 서울대가 시 주석에게 김 교수가 그린 '서울대 정문'을 선물하면서 중국민들 사이 큰 화제가 됐다. 가오펑(高鵬) 진르미술관장은 "생명에 관한 그의 시적이고도 명상적인 고찰이 중국인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평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건 '송화분분' 연작이다. 늙은 소나무에 연노란색 송홧가루가 점점이 묻어 있는 신작. 강하고 거친 먹에 부드럽고 연약한 색이 어우러져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닥판에 먹과 채색으로 그렸다. 지난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공개 회담장에 걸린 작품 '화려강산'(2009)도 소나무가 서로 부둥켜 얽힌 모습이고, 시진핑 주석에게 선물한 그림에도 소나무 두 그루가 그려져 있다. 김 교수는 "소나무와 인연이 깊다"고 했다. 그는 전북 남원의 송동(松洞) 출신이다. 모교이자 직장인 서울대에도 소나무가 많다. 그는 "소나무의 기운과 정서가 좋다. 서로 꼬이고 감아 돌고 흩어지는 모습이 조형적으로도 느껴진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번 전시가 "중간 점검 성격의 회고전"이라며 "전업작가로서 새 출발 선상에 선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퇴임과 함께 가장 먼저 할 일로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기'를 꼽았다. "어릴 때 어른들이 그림을 못 그리게 했어요. 가난해진다고. 하지만 반대하는 사랑에 더 불이 붙듯, 그림에 허기진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그려왔지요. 그렇게 시작한 짝사랑이 이 나이까지 계속됐네요. 그림 그리고 글 쓰는 행위가 없었다면 쓰라리고 아픈 시간들을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20일까지. (02)880-9504
변희원 기자
입력 : 2018.05.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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