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이경호(전 총동창회장 67회)/[신용석의 지구촌]-993회 남동공단의 노블레스 오블리제(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21. 6.25)
- 신용석
- 승인 2021.06.24 16:25
- 수정 2021.06.24 17:38
- 2021.06.25 19면
- 댓글 0
기라성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처음으로 본 것은 1965년 대학 졸업반 때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의 편집장 때 미국 정부 초청으로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각지를 방문하고 있을 때였다. 필라델피아 일대를 순방하면서 반스(BARNES) 재단 미술관에서 본 모네, 르누아르, 드가, 반 고흐, 피사로, 고갱 등의 화려한 색채와 생동감 나는 화폭들은 압권이었다. 제약회사 대표로 거부가 된 알버트 반스가 1910년대부터 유럽에서 사들인 작품들은 미국 독립의 도시인 필라델피아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워싱턴에서 가까운 볼티모어 미술관에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들이 많았다.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학예사에 따르면 볼티모어의 부호였던 콘씨 집안의 두 자매가 유럽에서 반스 씨와 비슷한 시기에 사들인 미술품이 3000여점에 달한다는데 이중에서 앙리 마티스의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만도 1200여점이나 된다고 했다. 마티스가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보다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두 자매의 지원에 힘입었고 결과적으로 볼티모어 미술관은 프랑스를 포함 세계에서 마티스 작품이 가장 많은 미술관으로 꼽히고 있었다.
▶당시 파리에서 미국의 문필가로 화가들과도 가깝게 지내던 거트루드 스타인 부인은 반스와 콘 자매와 가까운 사이로 미술작품 구입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파리에서 만나 프랑스에 있던 문필가나 화가들과 함께 문화 예술이 빈약한 미국의 대도시에 수준 높은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제(특권과 책임)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인식했다. 당시 스타인 부인 파리 저택에는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작가인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F. 스컷 피츠제럴드도 출입하고 있었다.
▶방대한 규모의 이건희·홍라희의 컬렉션과 이의 행방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시점에서 우리 고장 인천의 남동공단에 있는 영림목재 본사에서는 '영림생명 갤러리'가 확장 개관되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이경호 회장이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던 3층에 인천 출신 김병종 화백의 작품으로만 채워진 별도 전시관이 공개된 것이다. 서울대 미술대 학장을 지낸 김화백을 계속 지원하고 빛나게 하고 싶다는 이 회장은 900호가 넘는 대형 작품을 위시하여 '생명의 노래 풍죽', '송화춘' 등 대표작 15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예술을 공유하고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기업의 사회적 책무라며 중소기업 중앙회의 초대 문화경영위원회장직을 맡아 왔었다. “갤러리는 항상 개방되어 있으니 남동공단에서 일하는 분들은 물론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다”는 이경호 회장은 “틈이 있을 때는 제 자신이 직접 안내를 맡겠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단에 세계 최초로 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실천인 셈이다.
/신용석 언론인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