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조승혁(53회)/노동자를 일깨우던, 용기있던 인천 도시산업선교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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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일깨우던, 용기있던 인천 도시산업선교회
[독자칼럼] 곽현숙 / 배다리 아벨서점 대표
지난 6월27일, 오랜만에 인천일보 주필을 지내신 언론인 오광철 어르신께서 책방에 오셨다. 내가 화수동 일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시산업선교회도 없어진다고 말씀드리니 서글퍼 하신다.
“정말 그 교회가 많은 수난을 당하면서, 노동자들을 일깨우쳐 주려고 얼마나 힘썼는지... 그때 조승혁이라고 나와 인천고 동기인데 ‘도시산업선교’에서 일하면서 수없이 안기부에 끌려갔었어요! 그 시대에 그건 대단한 용기죠. 일부러 그 정신을 기려 주진 못하더라도 한 시대 인천 역사의 표상인데, 지금 남아있는 흔적을 없앤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네요!” 라고 말씀하신다.
어르신의 고교 동기인 조승혁 목사는 인천 산업선교회 1대 총무였다. 어르신은 2대 총무인 조화순 목사는 인천여고 분으로 기억해내신다.
1977년 내게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해 봄(~여름 사이) 도시산업선교라는 말을 처음 직접 들었다. 나는 1973년부터 배다리에서 헌책방을 하고 있었는데, 1977년에 책방에서 이야기 쪽지 600장을 만들어 2주에 한 번씩 주안수출공단 입구에서 출근하는 여공들에게 나누어 준 적이 있다. 이야기 쪽지는 내가 책에서 읽은 좋은 문구를 모아 B4 용지에 인쇄(가리방)하여 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과 나누어 주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것이다. 당시 숙대 다니던 신인자의 도움으로 7차례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고마워하는 노동자들의 눈빛과 무심하게 겨우 받아가는 눈빛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 ‘눈이 커다란’ 여성이 한 사람이 대뜸 “당신 도시산업선교지!” 라며 호되게 나를 다그쳤다. 그때 그렇게 ‘도시산업선교’라는 말을 만났고 뇌리에 깊게 남았다.
인천 동구에는 큰 공장들이 많았다. 저녁이 되면 가끔씩 검은 구름 같은 매연이 노을을 가렸다. 많은 나의 또래들이 각자의 살길을 위해 노동자가 되었다. 그 시절 나는 20대 중반부터 책방을 하였지만, 많은 아이들이 중학교·고등학교 대신 고된 노동 전선에 몸을 담아 살아내야 했다. 동생 공부시키려, 또는 허약한 부모님들 대신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도 헌책방을 생업으로 하기 전 공장 일을 했다. 1968년으로 기억한다. 나는 동네 아는 분을 통해 소개비로 만원을 주고 대성 목재에 취직을 했었다 2교대, 12시간 근무, 일주일은 밤일 일주일은 낮일 이었다. 한 달도 채 못 다니고 밤일하던 새벽 휴식 시간에 잠깐 졸았다. 순간 기상!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돌아가고 무언가 짚고 일어선다는 것이 뚜껑이 없는 로라를 돌리는 기계를 잡아 삽시간에 손가락들이 걸레처럼 늘어졌다.
다섯 시간 정도 꿰메어 겨우 붙었으나 일을 할 수 없으니까 당연하게 회사를 그만 두는 줄 알았다. 두 달 치료하는 동안 월급이 나와 계산해보니 만원. 소개비를 돌려받은 셈이었다. 그럼에도 회사의 처사가 당연한 듯 주위에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 사고 후유증으로 20여년은 손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는가!
당시 나의 또래 친구들은 참고 견디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었다고 믿고 부지런히 일했다. 나중에 찾아오는 피해는 그냥 노동자의 몫으로 남던 시대였다. ‘도시산업선교 교회’는 그들의 언니요, 오빠요,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해방과 전쟁이 끝나고, 반공을 국시로 삼고 사는 계엄시대, 열악한 노동 현장에 들어서서 ‘아니다’ 하는 말을 할 수 있게끔 몸으로 정신을 일깨워간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노동사역을 미션으로 인천 산업선교를 일으킨 조지 오글 목사를 비롯해 노동자를 위해 헌신하신 목사님들, 노동운동가, 대학생들이 있어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로 알게하고 권리의식을 일깨우고 민주의식을 불어넣었다. 이제라도 인천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되지 않을까.
화수동 도시산업선교회의 보존은 살아있는 인천의 역사·문화를 빛나게 드러낼 것이다. 우리는 일제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80년대까지도 전시처럼 살아 왔다. 수없는 노동의 전사들의 땀으로 오늘을 일궈왔음에 인사할 수 있어야 한다. 힘들여 오늘의 역사를 부끄럽지 않게 기록해나가야 한다.
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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