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썰물밀물]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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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밀물]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오래 전 얘기다. 1978년 7월 친구들과 함께 전남 신안군 내 홍도를 찾았다. 우리나라 섬 중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기론 으뜸이라고 해서 가게 됐다. 과연 과장이 아닐 정도로 섬 전체가 아름다웠다. 섬 여기저기를 둘러본 후 작은 몽돌이 널린 해변에 텐트를 치고 캠핑에 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옆에 한 중년 남자와 여대생으로 보이는 몇몇이 텐트를 쳤다. 무슨 관계인지 궁금증을 자아내던 터에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습니까?” “인천에서 왔는데요….” 그러자 “나도 인천사람인데, 김찬삼이라고 해요”라며 반가워했다. 그 때 어렴풋이나마 '세계 일주 여행가'를 떠올렸고, 나중에 그한테 여러 나라 얘기를 듣고 설렜던 기억이 난다.
“가슴을 펴고 세계를 바라보라. 그리고 거침없이 나아가라.” 인천이 낳은 유명 소설가 이원규는 인천일보(2008년 11월25일자)에 김찬삼(金燦三·1926~2003) 선생을 기억하며 이런 내용의 칼럼을 썼다. '세계의 나그네'로 불리는 김찬삼을 기리는 기고문은 당시 주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찬삼은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지만, 본적을 중구 내동 162번지로 둘 만큼 뿌리 깊은 '인천인'이다. 인천중과 서울대 졸업 후 인천고와 숙명여고 지리교사로 일했다.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원 지리학과를 수료하고, 세종대와 경희대 등지에서 지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김찬삼은 1958년 전쟁 복구로 어수선했던 무렵,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 일주를 떠난 국내 1세대 여행가다. 아무도 꿈을 꾸지 못한 길을 개척한 그를 '한국의 마르코 폴로'라고 부를 만한 까닭이기도 하다. 그는 3차례 세계 일주와 20여회 테마여행을 다녀왔는데, 160여개국을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67살이던 1992년엔 실크로드~서남아시아 ~유럽을 잇는 7만3000㎞의 장정에 올랐다가 열차 사고로 머리를 다쳤다. 그 후유증으로 언어가 어눌해질 때까지 가족들은 병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2년간 누워 있다가, 그는 결국 하늘로의 긴 여행을 떠났다.
김찬삼과 더불어 지낸 딱정벌레차 '우정2호'가 부활돼 관심을 모은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지난 11일 '김찬삼 동반차' 개막식을 열고, 박물관 1층 로비에 상설전시 중이다. 그는 1960년대 말 유럽 여행 중 독일인에게 폭스바겐 선물을 받고 우정2호란 애칭을 붙였다. 이 차는 그의 세 번째 세계 여행에 동반할 정도로 '애마' 구실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차는 선생 서거 후 10년 넘게 방치돼 폐차 상태로 있었다. 차 복원엔 (사)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나서 수천만원의 비용을 댔다는 후문이다.
김찬삼은 '작은 거인'이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꿈과 도전정신을 심어주는 불세출의 여행가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곳곳을 누비며 나그네의 길을 걸으소서.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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