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신용석의 지구촌] '인천 소년병 6·25 참전기'의 감동/이경종(53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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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21.12.10)
[신용석의 지구촌] '인천 소년병 6·25 참전기'의 감동/이경종(53회)
/신용석 언론인
“전쟁은 지도 위에서 전략과 전술을 생각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과 그 명령을 국가와 민족의 명령으로 알고 피 흘리며 전쟁터에서 직접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인간의 역사이다… 민족의 연속성은 정치 지도자나 장군들의 공이 아니다… 6·25 조국수호 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의 많은 중학생들이 참전의 의미를 알 수도 없는 나이에 조국과 인천을 지키기 위해 1950년 12월18일 인천을 떠나서 20일간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하여 전쟁터로 갔다.” 인천 소년병 6·25 참전기 편찬위원회 이규원 위원장이 쓴 서문의 일부다.
▶“이경종(이규원의 부친) 할아버지는 중학교 3학년 16살의 나이에 소년병으로 참전했습니다… 인천 출신의 소년병 300여명은 6·25 전쟁의 아픈 현실과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입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아서 가슴에 묻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존경받아야 할 인천 소년병들의 용기가 우리 마음속에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천 소년병 참전관 정아현 학예사의 글이다.
▶<인천 소년병 참전기>라는 제명의 46배판의 총 898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책자를 받아든 필자는 우선 1996년부터 참전 소년병 300명의 기록작업을 꾸준히 해왔던 이경종 당시 소년병과 그의 장남 치과의사 이규원 박사의 애국심과 동료애와 효심과 집념 등 모든 상념이 동시에 연상되는 감동을 받았다. 25년 전부터 쉴 틈도 없는 분방한 개업 의사는 아버님을 모시고 중학생 신분으로 참전했던 전우들과 선배들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녔다. 아버지는 큰아들과 함께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용감했던 동료 소년병들을 만나서 당시의 기억과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을 담아냈고 사진과 기록 등 자료들을 찾아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인천 소년병 6·25 참전관이 탄생했다. 이규원 박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15년부터 인천일보에 소년병 6·25 참전기를 전면으로 연재하여 45회에 이르고 있으며 서울신문(31회), 조선일보(11회),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각 1회씩 참전기를 소개해왔다. 이 시대를 살고있는 인천 시민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천 소년병들의 애국심과 이를 숭모하는 후대의 효심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
▶인천 소년병들이 동인천에 있던 축현초등학교를 떠나서 부산으로 걸어가던 비슷한 시기에 창영초등학교 3학년생이던 필자는 가족들을 따라서 인천항에서 일본 화물선을 타고 부산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엄동설한의 겨울에 굶주려가면서 먼 길을 걸어서 부산까지 가서 입대했던 선배들의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안락한 생활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천 소년병 참전기를 받아서 읽어본 다음날 필자는 중구 우현로의 참전기념관을 찾아 감사의 묵념을 드렸다.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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