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독후평] 이원규(65회) 저 <마지막 무관생도들> (푸른사상)(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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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평] 이원규 저 <마지막 무관생도들> (푸른사상)
‘역사(history)’는 한 마디로 얘기하면 ‘이야기(story)’다. 정치사든, 왕조사든, 불교사든, 음악사든, 상고사든, 세계사든 마찬가지다. 분야가 시대가 다를 뿐 모두 이야기인 것은 매 한가지다.
그런데 기존에 나온 대부분의 역사책은 별로 재미가 없다. 필자가 쓴 책도 예외는 아니다. 왜일까? 짐작컨대 영웅사, 사건사, 시대사 위주로 쓰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야기 하듯 쉽게 쓰면 될 것을 괜히 무게를 잡고 어깨에 힘을 주면서 경직된 자세로 쓴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소설가 이원규 선생이 책 한 권을 보내왔다. 이 선생과는 약간의 인연이 있다. 필자가 서울신문에 잠시 일할 때 선생과 함께 동북3성의 항일유적지 취재를 같이 간 적이 있다. 선생은 독립전쟁 현장답사기를 비롯해 <김산 평전> <조봉암 평전> <약산 김원봉> 등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여러 권을 쓴 바 있다.
이원규 저 <마지막 무관생도들> 표지
이번에 선생이 보내온 책은 <마지막 무관생도들>(푸른사상)로 대한제국 마지막 무관생도 45명의 삶과 이력을 추적한 내용이다. 짬짬이 읽다가 마침내 책장을 덮고서 든 감회는 “참 재미있게 썼구나!”였다. 푸른사상에서 ‘소설로 읽는 역사’ 시리즈의 첫 번째로 펴낸 것으로 시리즈 제목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싶었다.
유주현의 대표작 <조선총독부>(전 5권)는 실명과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썼다. 줄거리는 사실(fact)에 가까우나 완벽한 소설(fiction)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갔다. 실제인물과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여 팩션(faction)으로 전개한 방식이 독특하다. 소설임에도 주요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간간히 본문 하단에 각주를 단 것도 이채롭다. 책을 덮고 나면 마치 한 권의 소설을 읽은 것 같은데 사실은 구한국 시대 무관생도들에 관한 역사책을 읽은 셈이 된다. 작가적 상상력이 팩트와 너무도 잘 버무려져 있다.
한 예로 이응준이 김희선(전 임정 군무부 차장 출신으로 변절함)의 조카딸 김명순과의 연애담이 그것이다. 이응준은 추정 이갑의 고명딸 이정희와 혼담이 오간 사이였다. 이갑은 독립운동에 나서면서 이응준에게 딸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응준은 일본 육사재학 시절 도쿄에 유학중이던 ‘신여성’ 김명순과 애정행각을 벌인 것으로 책에 나온다. 이 이야기는 저자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당시 <매일신보>에 이들의 애정행각이 보도돼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을 근거로 썼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우선 무관학교 생도 출신으로 노백린, 홍사익, 이석규, 이응준, 추정 이갑, 이희두 장군, 이호영, 염창섭, 신태영, 윤상필, 지석규(나중에 지청천으로 개명), 김석원, 이종혁, 김현충(나중에 김광서, 김경천로 개명), 유승렬, 이응섭, 이종혁, 박승훈 등이 있다. 그 밖의 인물로는 영친왕, 의친왕, 이광수, 송진우, 김명순, 홍범도, 안공근, 최재형, 이형근, 김학규, 한상룡, 조병상 등등. 하나 같이 역사책 어디에선가 들어본 이름들이다. 그들이 항일투쟁가든 친일파든.
광복군 총사령을 지낸 지청천 장군
1908년 8월 대한제국 무관학교가 폐교될 당시 마지막 무관생도는 1학년 23명, 2학년 22명 등 총 45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일본행을 거부했던 김영섭(후에 친일목사가 됨) 한 명을 뺀 44명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육사에 진학했다. 물론 이들 가운데 11명은 중도에 자퇴 혹은 탈락했으며, 최종적으로 33명이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됐다. 이들의 이후 행보는 어찌 됐을까? 결론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극소수 10%는 일제시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나머지 대다수는 황군장교로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았으며, 이들에게는 ‘친일군인’이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여러 등장인물 중에서 집중적으로 부각된 인물은 이응준, 지석규(지청천), 김광서(김경천), 홍사익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네 명 중 지석규와 김광서는 일본군을 탈출,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변신하였다. 일본육사에서 배운 군사지식을 조국 광복을 위해 쓰기로 한 것이다. 지석규의 아내가 의암 손병희의 밀명을 띠고 남편을 찾아간 얘기며, 두 달도 채 안된, 강보에 싸인 딸과 아내를 두고 망명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김광서는 훗날 만주지역 항일투쟁에서 전설적 인물로 불린 ‘김일성 장군’의 실제 주인공으로, 일명 '김경천'으로도 불렸다.
일본군 대좌(대령) 출신의 이응준
당초 이들과 함께 탈출하기로 했던 이응준은 끝내 경성역(서울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애국지사인 추정 이갑의 사위였던 이응준은 현역 시절 도산 안창호 등과 교류를 이어가면서도 일본 군복을 벗지 않았다. 그는 김석원과 함께 우쓰노미야 일본군 사령관의 회유에 넘어가 일본군에 남아서 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하였고 훈장도 받았다. 그는 창씨개명을 하고 경성 부민관에서 징병제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나라가 망한 후 아모야마 묘지에서 모여 뒷날 독립전쟁에 나서자고 했던 생도 시절의 결의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일제 패망 후 전범으로 처형된 홍사익의 얘기는 더러 알려진 바 있다. 그는 일본 육사시절부터 우수한 성적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민족의식이 투철했다. 1920년 12월, 홍사익은 일본 육사 졸업생 중 10%미만이 입교 가능한 일본 육군대학에 입교했다. 고급장교가 된 홍사익은 지석규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민족진영과 고리를 이어갔다. 1940년 9월 충칭에서 광복군 총사령이 된 지석규(지청천)는 당시 일본군 육군 소장으로 팔로군 토벌부대장을 맡고 홍사익 장군에게 밀사를 보냈다. 광복군 진영으로 건너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사익은 “수천 명 부하를 거느린 장군은 죄인이 되더라도 길을 바꿀 수 없네. 숙명으로 알고 나의 길을 가겠네.”라며 응하지 않았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할 후 홍사익은 필리핀 포로수용소 소장으로 임명돼 거기서 패전을 맞았고 이후 연합군이 주최한 도쿄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 조선인으로서 일본군 장군이 된 사람은 왕족인 영친왕 말고는 그가 유일했다.
전범으로 처형된 일본군 중장 홍사익
해방 후 역사의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이응준과 같은 배를 탔던 대한제국 무관학교 출신 상당수는 일본군 복장으로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이응준은 해방 후 처벌받기는커녕 ‘창군의 아버지’로 불리며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현역 시절 춘천 8연대 월북사건으로 잠시 군복을 벗었던 그는 다시 입대해 육근대학 총장과 논산훈련소장을 지냈다. 예편 후에는 체신부장관, 반공연맹 이사장을 지내며 군의 원로로서 96세까지 천수를 누린 후 국립묘지에 묻혔다. 독립운동가도 못 누린 영화를 그는 누렸다.
이응준의 사위 이형근(한국군의 군번 1번), 김준원의 아들 김정렬(전 총리), 신태영의 아들 신응균, 백홍석의 사위 채병덕 등은 모두 대를 이어 일본 육사 출신들이다. 이들은 해방 후 국군 창군 당시 중심인물로 활동했으며 이후 군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역대 국방장관, 육참총장, 합참의장 가운데 독립군(광복군) 출신은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을 지낸 이범석 한 사람 뿐이다. 참으로 기막히다. '배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만주의 항일영웅 김광서(김경천) 장군
마지막 ‘에필로그’는 이 책의 핵심이다. 11명의 자퇴 혹은 중도 탈락자들을 비롯해 하급반 출신(일본육사 27기) 22명, 상급반 출신(일본육사 26기) 23명의 중요한 행적을 기록했다. 이들에 관한 기록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이 책뿐이다. 전체 45명 가운데 상당수는 친일군인으로 정식 이름이 올랐다. 항일투쟁에 나선 사람은 지석규, 김광서 등 고작 5명에 불과하다. 저자 이원규 선생은 서문에서 “다섯 분 지사들을 쓸 때는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눈물 흘릴 자가 어디 이 선생뿐이랴.
100년도 넘은 시절의 얘기를 쓰자면 자료 찾는 게 책 집필의 절반이다. 보나마나 몇 해를 걸쳐서 자료를 찾았을 것이 분명하다. 내년이면 70줄에 드실 이 선생님의 노고에 그저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신간소개/독후평 2016/06/08 10:00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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