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마을
어머니 전상서
작성자 : 윤용혁
작성일 : 2006.04.21 11:45
조회수 :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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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전상서
글/ 윤 용 혁
부활절 시골성당에서 어머니
걸을 힘조차 없으셔서
제 손을 잡고 내려오시던 손은
그 옛날 수천 평 농사 홀로 짓던
강인한 어머니의 손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그때 기억나세요?
가물어 논바닥이 갈라질 때 밤을 새며
산골짝의 보를 위부터 터내려 가시며
남정네들 물리치고 가까스로 물줄기 대어
모내기를 무사히 마치실 때의 기억말입니다
보호 장비 없이 분말 농약가루 치시다
폐포가 망가져 평생 해소천식으로
안부전화 기침으로 대부분 마치고
몇 년 전 대수술도 잘 견뎌 내시더니
오늘 야윈 뺨 만지다가 그만 눈물 흘렸습니다
차라리 농사꾼의 아내였다면
월급쟁이 선생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세 아들 교육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이렇게 지쳐 병들어 있지 않겠지요?
힘없이 흔드는 당신 모습에 아내 몰래 울었답니다
새벽기도 가는 길도 잊으시고
이제 멍하니 인생의 뒤안길에
혹시나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하는 가하는 불효막심에
눈물이 앞을 가려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었답니다
댓글목록 0
유 재준 (67회)님의 댓글
강화 갑곶리 들판 그리고 대산리 들녘이 회상 되는구료 농사도 모르고 국화리 할아버지댁 벼 베는 날 새참 얻어 먹던 생각도...관청리 250번지 성당도? 지금은 지방 문화재로 지정 되었다 하더이다 가장 강인한 딱 한분 우리의 어머님이십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선배님 저의 둘째 어머니 온화한 인상에 참 마음 너그러우셨는데요. 세상에 태어나 여름날 둘째 어머니가 강화읍에서 가져오신 수박 처음 먹어 보고 동생은 아쉬어 껍질까지 먹었답니다.
강화성당에서 86년에 풍금에 맞춰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유선배님 혹시 저의 장인어른 기억하실런지요.강화중에서 생물선생이시던 곽
윤용혁님의 댓글
재자 기자 이신데요. 서울약대를 나오셔서 개업않고 강중과 강화여중에서 교편을 잡으셨죠. 혹시 유선배님이 강화중학교 출신이시면
기억하실까 해서요.학생들 사이에 유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ㅎㅎㅎ
선배님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