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마을
나의 일그러진 영웅
작성자 : 자작나무숲
작성일 : 2008.04.27 10:57
조회수 : 2,154
본문
나의 일그러진 영웅
맏딸을 여위는 예식홀 입구에서그를 만났다
반백의 구차한 얼굴 표정위로
쓸쓸하고 스산한 바람이 지나간다
아직도 과년한 두딸을
더 출가 시켜야하는 대업(大業)앞에
무기력하고 초췌해 보이는 그와
재회의 손을 맞 잡은후
나는 이내 피로연장으로 내려와 버렸다
강 남쪽 예식홀의 부페음식은
그의 옛 명성처럼 예외없이 풍성하고 화려했다
의외로 마누라와 남은 두딸의 모습은
화사하고 평온했다
불편한 그를 매일 마주하고 사는 그들이기에
세월은 그에게 이처럼 습관처럼 무감각해져 있었다
그렇지...곁에서 늘 붙어사는 사람이다 보면
지아비가 어찌 변해가는지 어떤 지경인지 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께야
준비해온 축의금 봉투를 다시꺼내
지갑속 잔돈까지 탈탈털어 다시 봉투에 밀어 넣었다
이제와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이랴 만은
다소라도 내 마음을 위로하고 편케하려는
내 이기적인 한 방편쯤 이라고 말해두고 싶을 뿐이다
부페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보니 목이 메여온다
카스맥주 한병을 따 거품채로 마셨다
그런다고 메여 막힌것이 시원하게 뚫릴리는 만무하다
아직도 한참 나이인데...
자식을 두엇쯤 더 낳을수도 있는 능력있는 나이인데...
옛 영웅은 이미 권좌에서 밀려나
멀리 비껴져 버림받아 있었다
젊던 한시절
그의 결혼식장 맨 앞자리에서 내가
환호의 박수를 치던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제 자식의 결혼식장에 서있는 그는
흡사 유령같아 보였다
음주 유흥 가무에 절대적 달인같던 그도
세월앞에 힘없이 쓸어지고
그만이길 다행이라고 혀를차는 군상들 그 가운데
영웅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와 마지막 만난지도 어느새 2년
그간에 그는 소리소문도 없이 혼자 쓸어져서
死境(사경) 헤멨고
우리 나이엔 2년이 2주와도 같이 살같은 것이려니
너무 무심하고 소원했다는 자괴감에 마음 한켠이
시리고 편치 않았다
70年代末
'테헤란로'에서 '봉천동'사거리까지 누비던
그 활달하고 생동감 넘치던 한량(閑良)은
2년전 마지막 만남에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버렸고
초로의
노쇄한 노새같은
이빨 다 빠지고
온통 주름 투성이인 그가
내 앞에 망연히 서 있다
내 영웅은
그렇게 세월앞에 무참히 일그러져 있었고
불세출(不世出) 영웅도
이렇게 말라 비틀어진 낙엽처럼
덧없이
허망하게
지고 마나 보다......
(나는 부페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며 빙신처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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