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마을
눈사람
작성자 : 자작나무숲
작성일 : 2007.02.01 11:36
조회수 : 2,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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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가로등과 검은 감나무위로 내리는 밤눈은 눈이 부십니다 사내는 맨발로 보리밭을 즈려밟듯 눈길을 걷습니다 해진 구두는 구두끈으로 동여매 허리춤에 걸었습니다 눈보라가 얼굴을 덮고 눈안으로 들어와 눈물을 만듭니다 발바닥의 시린 눈송이가 실핏줄을 타고 심장을 얼립니다 검단 사거리 쪽으로 어둡던 길이 눈부신 환한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허리춤의 구두속으로도 목화솜처럼 하얀 눈송이들이 가득찼습니다 사흘을 굶었어도 눈을 뭉쳐먹으며 배를 불립니다 한 길로는 옹골찬 젊은날이 걸어가고 또 맞은편 길로는 중년의 로맨틱한 날들이 갑니다 물론 중앙 분리대로는 지천명 세월이 걸어갑니다 서곳 길가 어디쯤 고향 포도밭이 있었는데 지금은 휘황찬란한 풍차 카페들로 요란합니다 낡은 구두를 허리춤에 꿴 사나이는 눈 내리는 날엔 천천히 미쳐 갑니다 폐장한 동물원에서 외눈박이 원숭이를 찾으며 서성거리고 골짜기 산숲 저수지앞 눈쌓인 벤취에서 원앙의 물놀이에 넋을잃고 축령산 잦나무숲 무거운가지 눈을 어깨에 짊어지고 눈발속에 떠난 어느이에 흔적을 쫒습니다 눈속에 핀 바람꽃의 자태에 정신을 놓고 보리밭 위를 걷듯 눈내리는 길을 미쳐서 헤메 다닙니다그렇게 눈내리는 날에 눈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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