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뭐때?............
작성자 : 조원오
작성일 : 2009.10.10 07:33
조회수 : 990
본문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사는 것이 좀더 안온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모든 것이 안정되고,마음의 평화가 가득하였으면 합니다.
뭐때?
난데없는 말이지요.뭐때?
50년대,60년대에는 우리에게 특별난 기업도 산업도 없고 오로지 가지고 있는 근력으로 살아가던 시기라 할까요.?
그당시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도 국가소유였었지요.
주안염전,소래염전,군자염전,남동염전이 인천에 있던 것들인데 전매청에서 인삼,담배와 같이 전매청에서 운영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리고 요즘처럼 근로기준법이니,노동조합이니,복무규정이나 이런것들도 없던시절이라 할까요.나가라면 나가고,와서 일하라면 일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이지요.
저의 부친도 그당시 남동염전에서 최말단으로 일하시던 시절이라 그곳 관사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그 덕으로 오늘까지 살고 있지요.
수인선이 하루에 세번 다니고,그나마 곳간차(소나 돼지,짐을 실어 나르던....),그것도 빼먹기 일수인 기차를 타고 배다리 학교를 다녔지요.걸어서 다닌 것도 부지기수..............
그당시 염전일은 겨울철은 쉬고 봄이 막 시작되면서 부터 염점 바닥에 항아리 깨진 조각들을 깔고,염전을 보수하기 시작하면서 소금을 만들어 가곤 하였지요.
염전현장에는 염부장,염부,빠따(염전물고를 책임지며 갈고리가 달린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나무로된 물가로판을 들어놨다 내려 놓았다 하는 소리가 원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라는 계급이 있었다고 기억 합니다.
염부장은 고용직이고 나머지는 비고용직이라 나오라면 나오고,나오라는 소리가 없으면 실업자가 되는 시절이지요.
자,그럼 뭐때에 대한 말씀을 간단히 올리겠습니다.
그당시 전매청 남동염전 사무소 앞에 카부턱(Curve 턱)이라 불리던 곳에 잡화점 비슷한 것이 있었지요
소금을 실은 화물곳간차가 이곳 레일위에 멈추어서 소금을 내려 놓고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고 잠시 카부턱 가게에서 요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다시 고난한 일터로 집으로 가곤 하던 곳이지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어떤 아저씨 한분이 거나하게 술을 한잔하시면(그당시에는 워낙 먹는 것이 시원찮아서 조금만 드셔도 술이 오르기 마련이었지요) 온 동네가 떠나가게 중얼거리고 소리를 치시는 겁니다.
뭐때.....뭐때......뭐때........
거의 매일 그러시는 겁니다.
어린 우리는 무슨 구경꺼리가 생겼다고 주위를 서성거리고 재미나하고......뭐때.....가 무슨 말인지 궁금했었지요.
뭐때........가 뭐예요?하고 어른들에게 물으니 혀를 끌끌 차시면서 매년 염전 염부로 일하고 먹고 살았는데 금년부터는 불러주지 않아서 뭐때문에 나를 부르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소리인데 술이 취해서 뭐때문에,무슨이유로 나를 고용하지 않느냐는 끝소리는 워낙 작아서 뭐때 까지만 크게 들려서 그런거라는 말을 듣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뭐때......뭐때......여러분!
지금도 이런 소리를 하는 애절하고 비통한 여러 소리들이 들리지 않나요?
IMF 때 퇴출이 되면서(그것도 불법으로)
나도 술에 취하면 길거리를 헤매이면서 그랬습니다.
뭐때....뭐때....뭐때.............
앞으로는 더이상 뭐때......라는 소리가 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봄니다.
사는 것이 좀더 안온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모든 것이 안정되고,마음의 평화가 가득하였으면 합니다.
뭐때?
난데없는 말이지요.뭐때?
50년대,60년대에는 우리에게 특별난 기업도 산업도 없고 오로지 가지고 있는 근력으로 살아가던 시기라 할까요.?
그당시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도 국가소유였었지요.
주안염전,소래염전,군자염전,남동염전이 인천에 있던 것들인데 전매청에서 인삼,담배와 같이 전매청에서 운영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리고 요즘처럼 근로기준법이니,노동조합이니,복무규정이나 이런것들도 없던시절이라 할까요.나가라면 나가고,와서 일하라면 일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이지요.
저의 부친도 그당시 남동염전에서 최말단으로 일하시던 시절이라 그곳 관사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그 덕으로 오늘까지 살고 있지요.
수인선이 하루에 세번 다니고,그나마 곳간차(소나 돼지,짐을 실어 나르던....),그것도 빼먹기 일수인 기차를 타고 배다리 학교를 다녔지요.걸어서 다닌 것도 부지기수..............
그당시 염전일은 겨울철은 쉬고 봄이 막 시작되면서 부터 염점 바닥에 항아리 깨진 조각들을 깔고,염전을 보수하기 시작하면서 소금을 만들어 가곤 하였지요.
염전현장에는 염부장,염부,빠따(염전물고를 책임지며 갈고리가 달린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나무로된 물가로판을 들어놨다 내려 놓았다 하는 소리가 원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라는 계급이 있었다고 기억 합니다.
염부장은 고용직이고 나머지는 비고용직이라 나오라면 나오고,나오라는 소리가 없으면 실업자가 되는 시절이지요.
자,그럼 뭐때에 대한 말씀을 간단히 올리겠습니다.
그당시 전매청 남동염전 사무소 앞에 카부턱(Curve 턱)이라 불리던 곳에 잡화점 비슷한 것이 있었지요
소금을 실은 화물곳간차가 이곳 레일위에 멈추어서 소금을 내려 놓고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고 잠시 카부턱 가게에서 요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다시 고난한 일터로 집으로 가곤 하던 곳이지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어떤 아저씨 한분이 거나하게 술을 한잔하시면(그당시에는 워낙 먹는 것이 시원찮아서 조금만 드셔도 술이 오르기 마련이었지요) 온 동네가 떠나가게 중얼거리고 소리를 치시는 겁니다.
뭐때.....뭐때......뭐때........
거의 매일 그러시는 겁니다.
어린 우리는 무슨 구경꺼리가 생겼다고 주위를 서성거리고 재미나하고......뭐때.....가 무슨 말인지 궁금했었지요.
뭐때........가 뭐예요?하고 어른들에게 물으니 혀를 끌끌 차시면서 매년 염전 염부로 일하고 먹고 살았는데 금년부터는 불러주지 않아서 뭐때문에 나를 부르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소리인데 술이 취해서 뭐때문에,무슨이유로 나를 고용하지 않느냐는 끝소리는 워낙 작아서 뭐때 까지만 크게 들려서 그런거라는 말을 듣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뭐때......뭐때......여러분!
지금도 이런 소리를 하는 애절하고 비통한 여러 소리들이 들리지 않나요?
IMF 때 퇴출이 되면서(그것도 불법으로)
나도 술에 취하면 길거리를 헤매이면서 그랬습니다.
뭐때....뭐때....뭐때.............
앞으로는 더이상 뭐때......라는 소리가 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봄니다.
댓글목록 0
劉 載峻 67回님의 댓글
그간 격조했던 동기 원오, 반갑다. 구구절절 사연이 있는 말이구나 뭐때라는 말이... 그럼 뭐때 그런 말이 다시는 없어야지. 불법 퇴직에 대한 법적 보호가 없을 시, 참으로 난감 아니 좌절 바로 그거겠구나 위로와 연민의 동기 우정을 보낸다 힘 내자 건강하고 그럴수록 절주하고 말야
정흥수님의 댓글
아하... 뭐때?? 그런 뒷 얘기가 있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
태동철님의 댓글
이 동철이도 25년간 젊음 바쳐일 한 곳에서 나가주십사 할때 ..뭐때!! 일 년간 외치며 버티다..조직의 힘으로 밀어부치니 력불급 밀려나서,,뭐때문에,자본가가아닌 설음을,, 허지만 달걀이 깨졌다고 버리지않고 그 깨진달걀을 케이크을 만들어 파이를 키우니 살만 합니다 깨진 달댤 내것으로만들어 새롭게 사는길 신이준 힘
오태성님의 댓글
하는일도 없이 바쁜척하다 홈피에들러 보니 반가우신분과 글로 재회하게되네요 반가워요형 가까우날에 시간 내서 식사한번하시죠 꼭이요
이상호님의 댓글
원오형님! 옛날 형님 학교 다니실때 호구포에선(논현동) 조씨아들(원오형님)만큼만 공부해보라던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한번 태성이 형하고 저녁식사 연락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