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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人터뷰](15)서정화(58회)前 국회의원(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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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9.24)
“평범한 시민의 삶 즐기며 인천 발전 마음으로 응원”
[인천人터뷰](15)서정화 前 국회의원
“4선 국회의원으로서 그동안 국제공항을 영종도로 유치하고 송도국제도시 매립 계획을 성사시킨 것, 그리고 수도국산 일대를 전국 최초로 공영개발 형식으로 재개발 한 일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시 저를 비롯한 지역 국회의원들의 노력이 오늘날 인천이 우리나라 중심 도시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18일 오후 동구 금곡동 인천세무서 뒤 자택에서 만난 서정화 전 의원은 올 해로 고희(古稀·70세)를 맞았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젊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국회의원도 현직을 떠나면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야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4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면서도 지역에서 정치를 시작한 후 자리 잡은 현 동구 금곡동 집에 20년째 살고 있다는 서 전 의원. 요즘 열리고 있는 장관 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 불법으로 주민등록까지 옮기며 투기를 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거론하며 ‘아직 집값이 싼 동구를 떠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우리는 부동산은 모른다”고 껄껄 웃었다. 주변에서는 서 의원을 가리켜 ‘청렴한 정치인의 전형’이라고 칭송한다.
무엇보다 지역구를 지키는 서 의원의 모습은 선거구만 인천이고 지금도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는 인천지역 일부 정치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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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경기도 양평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천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게 된 계기는.
▲양평 용문사 부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인천으로 이사 오면서 동명초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아버님이 만주에서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하다 팔을 다쳐서 농사를 짓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천 배다리 근처에서 장사를 시작, 동구에 터를 잡게 됐습니다.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특별한 동기는.
▲사실 저는 서울대 공대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수학을 잘 했고 손재주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당시 육사에 특차지원이 있었는데 학비가 들지 않는다는 소리에 원서를 냈고 특차 전형에 합격했습니다. 이 일이 학교 내 경사가 돼 서울대는 원서도 내지 못하고 육사에 진학했습니다.
-군에서 그것도 보안부대에서 중령으로 제대하고 정치에 나서 정치군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10.26사태(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가 나기 2년 전에 보안사에서 중령으로 예편했습니다.
군인으로서는 아무 부족함이 없는 자리였지만 이렇게 편하게 지내다 장군이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있었고 특히 사회에 나가 사회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진 전역을 하고 돈을 벌고 있었는데 민정당이 창당되면서 당에서 군 출신 중 깨끗한 사람을 물색하다가 저를 택해 총무부장 자리에 앉히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따라서 다른 정치군인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그는 월남전에도 참전했으며 2사단 교육대장(대위) 시절에는 신병들에게 최초로 자율급식을 시작해 전국 훈련소로 확산시켰다고 한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보안부대장을 112일 만에 자의로 사직했다. 당시 군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던 하나회 출신도 아닌데 조직 관리에 모범을 보여 민정당 조직국장을 두 번이나 지냈다.)
-12대(1985년)부터 국회의원이 됐는데 이때의 활동이 지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육사에 들어간 후 군 생활에 매달리면서 인천에서 활동할 시간도 없고 해서 지역구를 정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처음에 전국구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13~14대까지 중·동구 지역에서 연속 3선을 했는데 국회의원으로서 자랑할 만한 업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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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하면서 군에서 제대할 때의 꿈인 사회사업을 한다는 마음으로 일에 매달렸습니다. 특히 14대에 건교위원장을 맡으면서 많은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제공항이 거의 시화지구로 결정되려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이재창 인천시장과 함께 이를 인천 영종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그 때 인천의원들이 모두 한마음이었지요.
또한 송도국제도시가 매립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많은 힘을 썼습니다. 당정협의 과정에서 육사 선배인 건교부 장관이 이를 반대, 상을 엎은 적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때 앞으로 인천이 발전될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대구 정치권이 이를 반대해 청와대를 자주 찾아다닌 결과 결국 송도 매립을 성사시켰습니다.
인천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것은 물론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 저를 비롯한 그 때 지역 국회의원들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그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헬기를 타고 영종과 시화지구는 물론 송도 매립지 일대를 둘러봤으며 영종공항과 송도 매립 모두 급박한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결정됐다고 강조했다. 국회 건설위원장, 민자당 원내총무, 국회 운영위원장을 역임, 많은 힘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인천 구도심에서 오랜 시간 국회의원을 했음에도 중·동구 구도심 발전은 여전히 지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구도심 개발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국회의원시절 주거환경개선법을 제정, 수도국산을 공영개발 방식으로 재개발하는 등 서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당시 주공이 800억원의 적자를 봤다고 알려질 정도로 원주민들이 많은 보상을 받았고 어느 지역보다 원주민 재정착율도 높았습니다.
이후 송림동 등에서 꾸준히 주거환경개선 사업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배다리 등 일부에서 보존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원주민 시각에서 본다면 보존이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한나라당 박상은(중·동·옹진) 의원과 지역 문제를 논의해 본 결과 핵심을 잘 집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경인전철 복복선 건설도 의원님의 성과로 알려져 있는데.
▲처음에 경인전철 복복선 문제를 가볍게 접근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한강에 철교를 더 놓아야 할 정도로 일이 커졌고 결과적으로 인천시민들이 출퇴근 시간에 겪던 ‘지옥철 고통’이 많이 해소됐습니다.
요즘도 전철을 애용하는 데 정말 많이 편해졌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경인전철을 인구가 많은 부평이나 주안까지만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를 하인천까지 연장, 구도심 주민들도 똑같은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당을 많이 바꾼 것에 대한 비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을 많이 옮겼다기 보다 그동안 여당의 당명이 많이 변경된 것이지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지역 개발에서 소외된 동구와 중구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당 의원으로 활동해야 큰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정치 후반기에 당적을 바꾼 것도 사실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그 결과 이만큼 동구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그는 한 때 ‘철새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낙선 대상이 된 것에 억울함을 느끼는 듯 했다.)
-16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출마, 낙선했다. 아쉬운 점은 없는지.
▲오히려 낙선돼서 건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당뇨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국회의원에 떨어지면서 병을 고칠 수 있었으니까요. 4년 간 의원을 더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건강을 유지하지 못했을 겁니다.(그는 월남전에 참전, 고엽제 피해를 본 것이 건강이 악화됐던 이유로 꼽았다.)
-요즘 특별히 하고 있는 일은.
▲전직 의원도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이란 생각으로 외부 행사에 많이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헌정회 회원으로 ‘평지걷기모임’을 만들어 활동 중인데 헌정회 여러 모임 중 가장 활성화 됐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서울 전철역을 중심으로 매주 토요일 일정 거리를 걸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천도 대공원이나 월미산, 승기천 등 걷기 좋은 공간이 많습니다.
-자녀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3남이 있는데 첫째는 미국에서 회사원으로, 막내는 사진학과 교수로 있습니다. 둘째는 국내에서 고려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인천시민들께 당부하실 말씀은.
▲외지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 인천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인천은 요즘 전국에서 가장 뜨고 있는 지역입니다. 시민들께서 자긍심을 갖는다면 우리 인천이 대한민국의 중심도시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글=김기준 정경1부장 gjkimk@i-today.co.kr 사진=김성중기자 jung@i-today.co.kr
서정화 前의원은
1939년 경기 양평 출생
학 력
인천 동명초등학교졸업
동인천중, 인천고(58회) 졸업
육군사관학교 졸
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
연세대 인하대 행정대학원 박사
경 력
12대 전국구 국회의원
13대 중구·동구 민정당 국회의원
14대 중구·동구 민자당 국회의원
15대 중구·동구·옹진 신한국당 국회의원
국회 건설위원장
민자당 원내총무
국회 운영위원장
인천고등학교 총동문회장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입력: 2009-09-20 17: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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