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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홀릭’ 최광천(85회)·김은영 부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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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2.19)
“살면서 닮아가니 가족이죠”
[별난세상 한길가족]〈4〉 ‘야구홀릭’ 최광천·김은영 부부
세상을 살다보면 별별 닮은꼴도 많지만 ‘피는 못 속인다’라는 말처럼 가족만큼 닮은 모양새도 없다.
부부가 닮아가듯 얼굴을 맞대고 살다보면 생김새까지 비슷해 지기도 하고, 매일 같은 식단에, 습관과 말투까지 닮아가는 자녀들을 보면서 살아가는게 우리네 평범한 인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운동이건 사업이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같이 한길을 가고 있다면 그건 선천적인 영향이 클까 후천적인 영향이 클까.
최광천(44)-김은영(45)씨와 아들 3형제도 바로 그런 몇 안되는 닮은꼴 가족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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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선수 출신의 아빠와 25년 간 프로야구 아나운서와 기록원을 거쳐 인천시야구협회 간사로 활동 중인 엄마. 그리고 초·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셋까지 모두 야구선수다. 말 그대로 보기드문 오리지널 ‘짠물야구’ 가족인 셈이다.
현재 건설회사에 재직 중인 아빠 최광천씨는 서림초에서 야구를 시작해 대헌중, 인천고를 거쳐 원광대를 졸업하던 지난 1990년 당시 김경기와 함께 프로야구 태평양돌핀스에 1차지명으로 입단한 거물급 포수출신.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촉망받는 선수로 활약 중이던 최씨는 태평양 입단 후 프로에서 3년간을 활동하며 치열한 주전경쟁에 교통사고까지 겹치면서 결국 1993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야구 글러브를 놓는다.
최씨의 외삼촌도 국내 프로야구 출범 당시 삼미슈퍼스타의 코칭스태프로 활동하던 이충근 코치다.
여기에 야구경기 기록에 관한 한 ‘달인’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부인 김은영씨의 야구관련 이력도 만만치 않다.
동상이 걸린 채 흙먼지 날리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기록을 배워가며 1985년 인천시야구협회에 발을 들여놓은 후 프로야구 삼미와 청보, 태평양을 거쳐 지난 2005년 인천시야구협회에 복귀하기까지 25년을 야구와 함께해 왔다. 그가 지금까지 인천지역에서 기록한 야구경기 기록지만 수천장 분량.
이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이들 부부의 3형제도 나란히 숭의초에서 자연스럽게 야구를 시작했다.
장남 지혁(동인천중3)이는 “공부와 운동 중 어느걸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운동을 선택했고, 둘째 지원(동인천중1)은 형이 운동하는걸 보고 그냥 좋아서 따라 시작했다. 여기에 막내 지민(숭의초3)이까지 지난해 형들을 따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선수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엄마 은영씨는 야구를 제일 좋아하는 건 가장 늦게 시작한 막내라고 귀띔한다. 둘째는 근성을 사줄만 하고 첫째는 무엇보다 듬직하다는 것.
이러다보니 야구대회라도 있는 날이면 아침마다 온 집안은 전쟁터다.
지혁·지원·지민이의 아침준비에 유니폼과 장비까지 챙기다보면, 어느새 5년째 3형제의 자동차 등굣길까지 엄마 몫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스스로 장비를 챙기는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데다 바쁠때마다 유니폼을 순서대로 정렬해 내놓으시는 시아버지의 지원도 큰 힘이 된다.
“매일 아침 한바탕 홍역을 치르지만 좋은 점도 있어요. 아이들도 하나 둘씩 경기 기록법을 배우다 보니 몸으로 하는 야구보다 머리로 하는 야구를 익히는게 빠른 것 같아요.”
아이들 모두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땐 각자 팀에서 기록원 역할을 하다보니 상황을 보는 눈도 당연히 빨라진다는게 김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3형제가 야구를 시작하기까지 가장 많은 반대를 했던게 바로 아버지 최광천씨다.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프로선수 생활이었기에 그 험한 길을 잘 알고 있는 아버지 입장에서 권하고 싶지 않은 것도 어찌보면 이해가 갈 만하다.
그래도 요즘은 주변의 권유로 가끔씩 생활체육 야구인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여름휴가를 어디로 가건 자동차 트렁크에 야구장비를 챙겨 다니며 아이들과 야구로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프로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야구장 조차 발을 끊던 때에 비하면 오히려 아이들의 힘으로 아버지를 다시 야구 곁으로 불러들인 셈이다.
아내 김은영씨는 인천시야구협회 간사이면서 선수의 학부모, 그리고 인천 야구를 아끼는 사람의 하나로 꼭 하고싶은 말이 있다.
“프로는 눈부시게 성장했는데 초·중등 야구는 제가 처음 기록원을 시작하던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혼자 크는 선수가 없듯이 어떤 선수이건 항상 자신의 기본이 되는 곳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김은영씨는 그래선지 타향에서 생활하며 매년 시즌이 끝나면 인천지역 초등학교 야구부를 순회 지원하며 고향사람들도 못하는 지원활동을 벌이는 SK와이번스의 조웅천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글·사진=이원구기자 jjlwk@i-today.co.kr
“쉿! 이건 비밀인데요…
시부모님 좋아 결혼 홈~인”
“살면서 닮아가니 가족이죠”
올해로 결혼 15년차를 맞은 최광천-김은영씨 가족의 맛깔나는 야구이야기는 결혼 이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내 김씨가 야구협회 기록원으로 첫 발을 내딛던 25년전. 인천 고교야구 양대 축이었던 인천고와 동산고의 지역예선 경기 중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진다.
당시 촉망받던 인천고 포수가 낫아웃 상태에서 이닝이 끝난줄 알고 공을 발밑으로 굴리며 덕아웃으로 들어가고 이를 지켜 보던 동산고 주자들은 ‘공짜 진루’에 쾌재를 불렀다.
물론 재경기가 다시 이루어졌지만 이날 경기장의 초보 기록원이 바로 아내 김은영씨, 해프닝의 주인공인 인천고 포수가 남편 최광천씨였다. 물론 이 사건은 아직도 남편이 가장 꺼내기 싫어하는 얘기중 하나다.
그 후 5년이 지난 1990년 최광천씨와 김은영씨는 프로구단인 태평양에서 선수와 직원으로 다시 만났다.
이러다보니 당시 힘겨운 시절을 보내던 최광천씨가 운동으로 고민할때마다 김은영씨는 든든한 조언자 겸 친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서로의 호감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남편보다는 오히려 시댁의 부모님들이 저를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았죠. 그때 남편과는 그동안 얘기도 많이 나누고 편한 사이였던것 같아요.”
하지만 이들 사이를 마지막으로 엮어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1993년 혼담이 오갈 무렵 최광철씨와 김은영씨가 시댁식구들과 한차를 타고 외출했다가 대형사고가 났던 것.
당시 대형트럭과의 충돌에도 다행스럽게 식구들은 무사하고 앞자리에 탔던 최씨와 김씨만 중상을 입고 나란히 병원신세를 지게 됐다.
결국 이미 치열한 프로선수들의 주전경쟁 속에서 적지 않은 고민중이던 광천씨는 이날 사고로 팔까지 다쳐 선수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심했고 대신 아내 은영씨와의 새로운 시작을 선택했다. 이것이 특별한 야구가족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처음엔 자식들 모두 야구를 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요. 하지만 엄마가 야구일을 하고 있고 아이들도 좋아하다 보니 억지로 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공연히 남편얘기까지 꺼내게 돼 나중에 혼이 날까봐 두렵다는 아내 김은영씨는 그래도 남편과 든든한 야구삼형제가 함께 있어 행복하다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
이원구기자 jjlwk@i-today.co.kr
입력: 2009-02-18 19: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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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성{70회}님의 댓글
최광천 동문과 세 아들 그리고세 아들을 야구선수로 잘 키위주고 계시는 부인 김은영씨 가족에 무한 축복이충만 하시길바람니다 김으영 여사는 야구장에서 인고운동장에서도 자주 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