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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65회) 작가 '민족혁명가 김원봉' 북콘서트(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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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인일보(19.11.27)
약산, 해방후 건준 군사부장 지목… 남한 초대 국방부장관 됐을 수도
이원규 작가 '민족혁명가 김원봉' 북콘서트
이원규 작가가 26일 오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민족혁명가 김원봉' 북콘서트에서 김원봉의 숨은 에피소드를 설명하고 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한국선 설자리 잃고 북한선 숙청
공적 좌우 대립구도로 봐선 안돼
인천 출신 이원규 작가가 14년 전 쓴 항일투사 김원봉(1898~1958)의 일대기를 최근 전면 개작해 다시 펴내면서, '서훈 논란'이 있는 김원봉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26일 오후 6시 30분 인천아트플랫폼 내 인천서점 2층 다목적실에서 이원규 작가와 함께하는 '민족혁명가 김원봉' 북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최용규 인천대학교 이사장을 비롯해 청중 50여명이 북콘서트에 참석했다.
이원규 작가는 약산 김원봉의 일대기를 쓴 '민족혁명가 김원봉'(한길사)을 최근 펴냈다. 2005년 쓴 평전 '약산 김원봉'(실천문학사)의 증보판이다.
이원규 작가는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가 꾸려지고, 김원봉이 군사부장으로 지목됐기 때문에 건준 중심으로 건국됐다면 김원봉은 남한의 초대 국방부 장관이 됐을 것"이라며 "김원봉이 북한으로 간 것은 이승만 캠프로 오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미군정의 회유도 거부하면서 남한에서 설 자리를 잃었던 이유가 컸다"고 말했다.
김원봉은 무수한 암살·파괴 공작으로 일제가 가장 두려워 했던 '의열단'과 독립군 '조선의용대'를 이끈 항일투사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 좌익·우익 연합을 위해 분투하다 결국 북한으로 넘어갔다. 북한에서 장관인 국가검열상과 노동상까지 지냈지만, 1958년 김일성에게 숙청됐다. 김원봉이 남북 양쪽에서 잊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참석자들은 김원봉의 공적을 좌익·우익 대립구도로 봐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최용규 인천대 이사장은 "민족이 암울한 위기에 처했을 때 몸 바쳐 싸운 사람들에게 좌익이 어디 있고, 우익이 어디 있었겠느냐"라며 "좌익·우익으로 나누는 어리석은 평가가 항상 아쉬웠는데, 이원규 작가가 명쾌하게 정리했다"고 말했다.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은 "사람에 대한 평론을 쓴다는 것은 돌 속에 있던 것을 영롱한 보석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며 "약산, 죽산, 김산, 김경천을 찾아서 보석으로 만들어 낸 이원규 작가의 노력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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