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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조우성(65회) 시인(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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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8. 9. 3)
"잠시 잊었던 시 창작 매진" / 조우성 시인
지난달 29일 교직 명퇴 … 향토사 연구활동 지속
인천일보 창간 멤버 기자활동 "산문의 힘 느껴"
조우성(60) 시인이 지난달 29일 정들었던 교직을 떠나 명예 퇴임했다.
조 시인은 각 공공기관과 지역단체에서 지역 향토사 강연을 수십 회 진행했는데, 이 때문에 시인보다는 향토사연구가로 더 잘 알려졌다. 조 시인은 1975년 박목월 시인이 만든 잡지 <심상>을 통해 등단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중앙문단에 연간 시 20∼30편을 발표할 만큼 활발한 시작을 해온 시인이다. 시인에서 교사로, 교사에서 신문기자로, 신문기자에서 향토사연구가로, 그리고 다시 교사로 활동의 지평을 넓히는 이력을 밟아왔는데, 그 이력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박목월 선생이 저더러 너는 학교 선생과 신문기자 절대 하지 말거라 했습니다. 그런데 박목월 선생이 작고하시고 제가 덜컥 신문기자가 됐죠. 1988년 인천일보 창간 멤버로 들어와 기자 일을 하면서 시를 버리고 산문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촉망받는 시인이 산문, 그것도 신문기사에 빠져든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세상에서 시 언어가 가장 힘이 센 줄 알았습니다. 신문사에 가서 보니 산문의 힘도 강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신문이라는 현세적 힘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어서 시를 잊었던 거지요."
조 시인은 인천일보에서 문화부장, 경제부장, 부국장까지 지내다가 8년 만에 원래 직장이었던 광성고로 복귀했다. 언론사 기자 생활 동안 그는 인천의 독립운동사와 향토역사에 대해 탁월한 지식을 쌓았다. 지역 향토사에 매진하게 된 데에도 재밌는 사연이 얽혀있다.
"제가 기자 생활할 때 모 교육감께서 일선 교사들을 모아놓고 인천은 3·1운동 때 만세운동 한 번 안한 도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국 각처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고서점 등을 뒤져 인천의 독립운동을 조사하기 시작했죠. 조사해보니 인천에서는 3월 6일부터 한 달 내내 만세운동을 했고 그 시발지가 창영초교란 걸 밝혀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3·1절에 이를 기사로 썼죠."
조 시인은 정들었던 교직을 떠나 아쉽지만 "지역사 연구를 지속해 이를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쉽고 재밌게 전달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며 "잠시 잊었던 시 창작에도 매진하고 그 동안 수집해놓은 역사사진들을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는 홈페이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조혁신기자 blog.itimes.co.kr/mrpen
종이신문 : 20080903일자 1판 13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8-09-02 오후 9: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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