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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65회) 문화칼럼/기슈마루의 맹세(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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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슈마루의 맹세
이원규 문화칼럼
다시 광복절이 지나갔다. 그날 저녁, 월미산에 갔는데 인천항을 굽어보다가 문득 연락선 기슈마루(義州丸)와 황실 특파유학생들이 생각났다.
1904년 봄, 고종황제는 기울어진 나라를 일으킬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고 판단, 일본유학생 파견을 명했다. 일본 학비는 매우 비쌌다. 도쿄의 쌀 한말 값이 1.8원인데 분기별 납부금이 15원, 기숙사비가 65원, 그밖에 책값과 피복비 15원, 한달 평균 30원이 필요했고 50명을 합하면 매달 1,500원이었다. 재정이 빈약한 대한제국 황실로서는 큰 짐이었으나 유학생 파견을 결정했다. 일본도 환영했는데 유학생들을 식민통치의 전위로 만들려는 계산 때문이었다.
양반관리 자제 4,500명이 지원했고 700명을 서류전형으로 걸러 체력검사와 논술시험으로 50명을 선발했다. 무려 90:1의 경쟁을 한 것이다. 불합격한 김광서라는 소년이 사비생(私費生)으로 합류해 인원은 51명이 되었다. 그들은 1904년 10월 8일 밤을 인천감리서에서 묵고 다음날 기슈마루를 탔다. 그 배는 그 해 여름 인천·바칸(馬關. 시모노세키下關의 옛 지명) 항로에 취항한 800t짜리 최신식 정기 연락선이었다.
당대의 최고 엘리트인 유학생들은 항해 도중 조국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일본에 순치당하지 말자고, 일본을 배워 일본을 이기자고 눈물로 맹세했다. 리더는 선발시험 수석합격자인 14세의 최남선과 차석인 28세의 최린 등이었다.
다음해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도쿄 제일부중에 재학하던 그들은 전원 자퇴를 감행했다. 그러나 청년의 열정과 현실은 다르기 마련이다. 대부분 부형의 설득을 못이겨 각서를 쓰고 복학했고 그 후 와세다와 게이오 등 명문대학에 진학했다. 복학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개는 부형의 부담으로, 혹은 고학으로 일본에서 대학에 다녔다. 일본 세상이라 일본유학을 해야 출세한다는 공리적 계산을 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래야 나라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때는 더 많았던 것 같다.
결국 그들은 어떤 인생길을 걸었는가. 대부분 총독부, 재판소, 검찰청, 은행 등에 자리를 얻어 군수, 판검사, 은행지점장 등으로 승진하며 엘리트로서의 생애를 보냈다. 일본이 준 꿀 바른 떡을 받아먹으며 산 것이다. 동맹 휴학과 자퇴 투쟁을 주도했던 최남선과 최린은 3·1운동때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해 33인이 됐으나 뒷날 친일로 변절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그것만으로 끝났다면 우리 역사가 얼마나 부끄러울까. 대부분이 그렇게 살았지만 조소앙은 메이지대학 법대를 나와 판검사가 되는 길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했다. 유일한 사비생 김광서는 일본육사를 나와 기병장교로 복무하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탈출해 독립전쟁의 큰 별이 되었다. 두 사람의 선명한 실천자인 조소앙과 김광서, 두 사람의 선명한 변절자 최남선과 최린, 그리고 일제에 타협하거나 눈치보며 살았던 40여명, 역사는 냉정하게 그들을 평가한다.
그들에 대한 자료를 추적하다 보면 분노를 느끼게 되지만 동정심이 들기도 한다. 강제 합병을 당하지 않았다면 조국을 일으키기 위해 애썼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조국 광복을 갈망했고 번민한 흔적들도 있다. 역지사지의 자문을 하기도 한다. 내가 당시의 아버지라면 아들에게 자퇴하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유학생이라면 부모의 간청을 뿌리칠 수 있었을까. 꿀 바른 떡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들을 보낸 고종황제의 비원을 생각하면 동정심은 사라지고 맹세를 지키며 거룩한 생애를 보낸 조소앙·김광서선생에 대해 더욱 고개가 숙여진다.
다가오는 국치일(8월 29일)에 4,000여 명이 수록되는 친일인명사전 출간이 예고되어 있다. 기슈마루를 타고 인천항을 떠난 유학생들도 태반이 명단에 들어 있다. 억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므로 편찬위원들이 모든 친일 혐의자들을 단순한 이분적 심판이 아니라 충실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신중히 평가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63년이나 늦은 친일파 정리가 좋은 매듭을 짓기를 기대해 본다.\
소설가 이원규
종이신문 : 20080819일자 1판 10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8-08-18 오후 7: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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