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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택(56회) 칼럼/향원(鄕原)과 사이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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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鄕原)과 사이비
지용택 칼럼 /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공자가 위대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 진정한 까닭은 인간사의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의 첫 장 「학이(學而)」편이 가장 적절한 예일 것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공자의 이 말은 일종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무리 속에 섞여 어렵게 살아가더라도 자기 자신의 존엄과 실존적 가치는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70 평생 동안 천하를 주유하면서 제후들에게 인(仁)으로 해설하고, 통치하도록 설득하였다. 제자들에게도 각자의 성격과 심성에 따라 그리고 때와 장소에 따라 '인'의 개념을 달리 설명했다.
사람마다 이해의 정도가 다르고, 처해있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더욱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공자는 이렇게 항상 구체적이지만 우회적으로 비유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이런 공자도 견디지 못하고, 분노하여 "도덕을 해치는 놈(鄕原德之 賊也)"이라고 직설적으로 욕을 퍼부은 대상이 있으니 '향원'이다.
향원이란 말은 『논어』 「양화(陽貨, 13)」편에 나오는데 이를테면 지역사회의 사이비 군자를 칭한다. 지금의 시각으로 말하자면 표리부동한 지식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다산 선생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서 "옳고 그름을 주관 없이 세상 흐름으로 판단하여, 옳은 줄 분명히 알면서도 사람들이 그르다 하면 자기도 그르다하고 검은 줄 분명히 알면서도 사람들이 희다하면 자기도 희다한다"고 주관없는 지식인들을 크게 질책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소리없이 이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장본인들이다.
행실이 좋지 않다고 알려진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알고 각자 경계해 나가면 되지만 교언영색(巧言令色)하고, 교활한 향원들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들은 기만당하기 마련이다.
"덕인 듯 하면서도 덕이 아니며 도리어 덕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공자는 향원을 미워했다"고 주희가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설파한 그대로이다.
「자로(子路, 24)」편에서 사랑하는 제자 자공(子貢)이 향원에 대해서 공자에게 묻기를 "만약 어떤 사람을 마을 사람들이 모두 훌륭하다고 칭송한다면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하자 공자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답한다.
자공이 또 묻기를 "모든 사람이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는 "그는 나쁜 사람만은 아니다. 부화뇌동하지 마라. 마을 사람 중에서 좋은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나쁜 사람이 그를 싫어하는 것으로써 좋고 나쁨을 단정할 수 있는 것만 못하다"고 가르친다.
공자로부터 2천 6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밝은 판단과 심장으로부터 솟아나는 힘이 보이는 말이다.
향원들은 지역사회 실력자의 주위를 맴돌면서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달콤한 조언을 서슴지 않아 이익도 챙기고 때로는 지위도 얻어낸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획득한 기반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여론을 호도하는 죄악까지 범한다.
공직자는 오도된 여론의 허상을 분별하지 못한 해 그대로 믿고 판단하게 되어 그 결과는 시민들의 괴로움으로 돌아온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향원을 경계해야 한다. 힘은 들겠지만 쓴 소리를 듣고 생각하고 나서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쓴 소리는 더 잘 하라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바른 소리 듣기를 거부한 공직자와 실력자 치고 잘된 사람은 역사적으로 드물다는 것은 필히 명심할 일이다.
종이신문 : 20080821일자 1판 10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8-08-20 오후 8: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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