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미추마당/淨, 熱 그리고 교육/배상만(65회)(퍼온글)
본문
미추마당
淨, 熱 그리고 교육 /배상만 인천남부교육청 교육장
연평! 어느 시인은 옛날의 그 곳을 일러 '별 조차 안고 스러지는 섬' 이라 했다.
모습이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의 형상만큼 평평하다 해서 이름 붙여지기도 한 섬 '연평'. 몇해 전 서해교전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던 접적지. 최근 그 연평도를 향해 길을 나섰다.
연평학교 방문은 2008학년도 인천 남부 교육의 큰 그림에 우선적으로 그려 넣었던 장학계획으로 도서벽지 교육현장을 찾아 그 곳 교직원들을 격려하고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자 이뤄진 것이다.
날씨가 안좋아 안개와 바람으로 험한 파도를 헤치며 가야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출발하는 아침에 서해바다는 봄 햇살의 화사함을 누리려는 것처럼 잔잔하게 그 품을 열어 하늘빛까지 담은 바닷길을 순하게 내주고 있었다.
교육당국과 모든 교육현장이 바쁜 3월을 피해서 나선 이 길이, 혹시라도 해당 학교의 학사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염려하던 마음을 하늘도 알아준 것인지 떠나는 날부터 오는 날까지 날씨가 좋았다.
연안부두를 출발한지 2시간40분 남짓 지나니 배가 당섬 포구에 도착했다. 그 먼 거리를 3시간도 걸리지 않고 왔으니 예전의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파도 속에 흔들리며 건너야'했고, 계속되는 멀미로 인해 '별들조차 붉게 물들어 보일 만큼' 힘들고 지치던 고생길은 단지 추억과 상상 속으로만 길어지는 지도 상의 거리였을 뿐.
섬에 발을 내딛는 일행과 방문자를 마중 나온 이들이 서로를 향해 건네는 인사말. 그리고 반가운 웃음소리가 포구의 물결 위에, 또 푸른 섬 하늘 위에 잔잔하게 아롱진다.
돌담과 측백목으로 둘러싸인 연평학교의 첫 인상은 정(淨).
깔끔하고 쓸모있게 정리돼 있는 시설을 돌아보며 인원이 많지 않은 교직원들이 이렇게 좋은 교육환경을 가꾸기 위해 쏟았을 노고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안에서 뛰어놀고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연평학교는 소규모 학교의 통합 정책에 따라 연평초등학교와 연평중·고등학교가 지난 1999년 통합돼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초등과 중등교육은 교육과정과 여러 가지 운영 방식의 차이 탓에 물리적 통합에 따른 갈등과 애로가 많이 발생할텐데도 이 곳의 현명한 교사들은 이를 잘 조율하고 화합해서 보람 있는 교육적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유치원생부터 고교생에 이르기까지 각 학령에 맞게 계획된 교육과정이 충실히 운영되고 유기적으로 연계됨으로써 학생들이 보다 심도 있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음을 확인하게 돼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통합학교의 특징을 살려 전 교사가 참여하고, 주민과 군인들이 참여해 이뤄지고 있는 '방과 후 학교 교육활동' 은 기대 이상이었다.
유·초·중·고교의 우수한 교사와 지역 및 군의 인적자원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관계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방과 후 학교를 알차게 운영해 나가고 있었다.
초·중·고교가 연계해 운영하고 있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은 학원 등 사교육기관이 없어 모든 교육이 학교에서만 이뤄질 수밖에 없는 지역적 조건을 고려해 다양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이뤄져 나가고 있음에 감탄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교과 관련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하면서 추가로 e-스쿨과 EBS 교육방송, 군 인사를 활용한 주말 외국어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는가 하면 교육청과 옹진군이 협조 지원한 초·중학생 대상 원어민 영어교육이 학부모들의 전폭적인 환영과 신뢰를 받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었다.
방과 후 학교에 대한 안내를 받은 후 각 교실을 참관하면서 받은 두 번째 인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열(熱)이다.
먼저 간이 골프연습장을 참관했는데 학생, 주민, 군인, 지역기관의 직원들이 프로골퍼의 지도를 받으며 진지하게 공을 치고 있었다. 다목적실에선 주민과 군인들로 구성된 배드민턴부 회원들이 땀 흘리며 교습활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야간도서실'에선 학부모 도우미의 봉사를 받아 학생들은 물론 주민들까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이 곳에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학생만의 것은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기타 연주가 흐르는 '주부교실'에서 못하는 실력이나마 필자가 '사랑해'를 노래한 것은 아마도, 연평학교의 지칠 줄 모르는 배움의 열정에 전염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교가 지역사회 생활의 중심이 되고 행복한 미래의 안내자가 된다는 것은 오직 바르고 튼실한 교육을 수행할 때만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연평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음에 틀림 없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연평학교가 교장, 교감 선생님의 헌신적인 리더십과 전 교직원들의 희생적인 열정으로 알차게 가꿔가는 교육공동체의 표본이자 지역사회에서의 교육적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며 연평도의 미래를 밝혀주는 등댓불임을 확인할 수 있어 뿌듯했다.
돌아오는 뱃머리에서 기억나는 싯귀를 들춰내다가 문득 이렇게 적어본다.
'조기파시로, 꽃게파시로 이름 날리던 연평도의 삶에 또 하나의 비전을 심은 현장…. 곧 연평의 교육(敎育)이다.'
종이신문 : 20080527일자 1판 12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8-05-26 오후 8:04:40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