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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포구의 황혼>/이원규(65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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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대는 관광객 뒤로 멈춰선 소래철교가 …
12 소설 <포구의 황혼>
80년대는 암울한 시대였으며 우리나라 근현대사 왜곡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또한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 상황에서 전두환 정권의 집권 시기인 80년대는 유신정권에 이어 반공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물론 이 시기에 분단과 반공이데올로기에서 맞서 수많은 기층 민중들이 저항을 했고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80년대 초중반 분단과 이데올로기라는 금기를 깬 소설이 바로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이 가져온 정치·사회·문화적 후폭풍은 거셌다. 조정래는 '분단문학'에 있어서 독보적 존재였다.
<현대문학> 창간 3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소설 <훈장과 굴레>로 당선된 소설가 이원규는 조정래가 구축한 분단문학의 지평을 영·호남 지역 외에 인천과 서해 도서 지역으로까지 확장시킨 작가다. 인천 출신의 이원규는 인천과 서해 5도를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전쟁 이후 벌어졌던 이념적 갈등과 역사적 질곡을 휴머니즘에 입각해 접근해 들어가며, 분단과 관련한 빼어난 단편들을 발표했다. 그 중 1987년 <한국문학>에 발표한 단편소설 <포구의 황혼>은 단연 수작에 속한다. 이원규의 동국대 선배이기도 한 조정래는 이원규의 소설들을 접하고선 "분단을 다룬 작품들은 나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니….
소래옛길
<포구의 황혼>은 소래를 무대로 하고 있다. 이원규가 <포구의 황혼>을 썼을 당시에 소래는 주말에 생선회를 맛보러 오는 관광객들과 새우젓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평일에는 결코 번잡스럽지 않았다. 소설은 소래의 한적한 풍경을 그리며 시작한다.
'나는 어선 통제소 건물을 나서자마자 선착장 쪽을 바라보았다. 봄바람이 바다 쪽으로부터 비릿한 갯냄새를 몰고 와 품안으로 달려들었다. 선착장은 물에 잠기듯이 깊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소래는 하루 24시간 술집과 횟집 네온간판이 불을 뿜고, 어선들이 옆구리를 맞댄 채 물결에 이리저리 몸을 섞었던 선착장의 고즈넉한 풍경은 좌판과 술손님들이 난장을 친 어지러운 풍경으로 뒤바뀌었다.
한때 소래를 상징했던 수인선 철교에는 협궤열차가 달리지 않은지 오래됐다. 열차가 끊기자 소래역사도 버려졌다.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이 허물어지자 70년대에 시멘트 블록을 쌓아 어설프게 모양만 갖춘 소래역사는 보존가치가 없기 때문에 어구 창고로 전락했다가 지금은 쓰레기더미 속에 묻혀있다.
사실 갯고랑 건너 월곶과 주변 염전, 논과 밭이 매립되고 택지로 개발되며 과거의 소래는 목숨을 다한 것이다. 소래를 상징했던 철교가 관광용 다리로 탈바꿈하면서 소래의 바다 사나이들과 실향민들은 잊혀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래 포구는 잊힐 수 없는 우리나라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한국전쟁 직전만 해도 소래포구의 원주민 중 바닷일로 생업을 잇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한 주민은 "초등학교 시절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소래에 먼저 정착했고, 이후 화수동 등에 정착했던 실향민들이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황해도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소래 주민의 삼분의 일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연유로 <포구의 황혼>의 주인공의 고향이 황해도인 것은 당연한 설정이다. 아니, 치밀한 현장취재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창작을 하는 소설가 이원규의 스타일로 볼 때 <포구의 황혼>의 주인공은 실존 인물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38선 바로 이남인 황해도 연백군 해룡면의 한 포구에서 두 척의 중선배를 가진 선주의 외아들로 자랐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그곳이 갑자기 인공 치하가 되고, 아버지는 배를 몰수당했다. 그리고, 하급 선원들을 착취했다는 명목으로 처형당할 위기에서 단신 남쪽으로 내려왔다.'
주인공은 처자를 버리고 북에서 쫓기듯 남으로 내려왔지만 남에서도 핍박을 받게 된다. 고기잡이 중 납북돼 일 년 반만에 겨우 인천으로 돌아왔지만 바로 정보기관에 끌려가 석 달 동안이나 고문을 받는다.
황혼이 질 무렵 철교 한가운데에 섰다. 비닐을 길게 펼쳐놓은 것 같은 갯골 수로를 따라 멀리 바다에 시선을 던졌다. 관광객들이 어깨를 치고 지나가선지 내 눈에 파고든 바다의 풍경은 술에 취한 듯 흔들렸다. 삶은 참 모진 것인가…? 수십 년 동안 이곳 실향민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을 테고, 신기루처럼 놓인 북쪽 고향 섬이 못이 박히듯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뱃머리를 돌리고 고향을 등졌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황혼이 붉게 포구 전체를 물들일 무렵에 소래 포구로 돌아왔다. 방조제, 포구를 가로지르는 철교, 부두로 밀려가 철썩거리는 바닷물. 예전에는 무심하게 보이던 것들이 정겹게 가슴에 안기듯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나는 긴 세월 동안 가슴에 맺혀 나를 지배해 온 덩어리들이 한꺼번에 녹아서 빠져나가 이제는 텅 비었다는 느낌과 함께 알지 못할 비애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삶이 모질기만 한다면 이 질곡의 세월을 견뎌내지 못했으리라. 삶은 모질지만 또한 그만큼 질기지 않은가?
소설 포구의 황혼 은
북쪽가족 그리운 아버지 바다에 편지를 띄우는...
황해도 연백면 한 포구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을 받던 주인공은 처자식들을 남겨두고 단신으로 월남한다. 그는 군산에서 선원으로 고깃배를 탔고 결혼도 해 새 가정을 꾸린다. 인천 소래포구로 흘러든 주인공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납북이 되고 일 년 반 동안 북에 머무른다. 그곳에서 헤어졌던 가족들을 재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과는 연고가 없는 선원들을 위해 인천으로 돌아온다.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정보기관에 끌려가 석 달 동안 고문을 받아 말도 못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폐인이 된다. 이 소설의 화자인 아들은 학교를 포기하고 폐인이 된 아버지를 대신해 뱃일을 시작한다. 뱃일을 시작한 아들의 마음 속에는 북쪽 가족을 못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늘 가득하다.
어느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고기잡이를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고 아들은 선원수첩도 없는 아버지를 몰래 배에 태우고 연평도 앞바다까지 배를 내몬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담은 플라스틱병을 몰래 배에 실었고 이를 바다에 던지려고 한다. 아들은 남쪽의 해군이나 해경에게 발각되면 자신의 어업권마저도 빼앗길 것이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는 삼월달 해류는 북으로 흘러간다며 애원하며 납북됐을 때 북쪽 고향의 처자식들을 만났다고 고백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편지가 담긴 병을 바다에 던지고 다시 소래포구로 뱃머리를 돌린다.
/글·사진=조혁신기자 blog.itimes.co.kr/mr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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