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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과 인천·(11)이을규(13회)·정규(14회)형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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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인일보(19. 5. 2)
[독립운동과 인천·(11)이을규·정규]일제에 맞선 형제 '아나키스트 투쟁'
1910년 나라의 명이 다하자 많은 사람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온 집안이 독립운동에 나선 경우도 많았다. 전 재산을 팔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일가와 서대문 형무소 1호 사형수로 기록돼 있는 의병장 허위 가문 등이 대표적이다.
인천에도 독립운동에 나선 형제들이 있다. 이을규(1894~1972)·정규(1897~1984) 형제다.
인천 장봉도에서 태어난 이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한 1910년대 인천공립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에는 독립운동을 했다.
이을규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망명 사건에 참여했다. 그는 경성에서 중국 안둥현(현 단둥시)까지 의친왕의 망명 여정을 최측근에서 호위했다.
당시 최고의 아나키즘 사상가로 평가받았던 이정규는 형 이을규, 우당 이회영과 함께 아나키스트 단체를 조직했다.
형제는 의열단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 최전선에서 일본과 맞서 싸웠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을규는 1990년 독립유공자 애족장 서훈을 받았고, 이정규는 생전 본인의 뜻에 따라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천 지역에서는 이들의 독립운동 행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인천시는 '인천시사'에 나온 인천 지역 인물 409명을 홈페이지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을규·정규 형제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이을규의 본적이 충남 논산으로 돼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을규·정규 형제는 생전에 인천 장봉도 출신임을 분명히 밝혀 왔다. 인천에서 이들 형제의 행적을 연구하고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나오는 이유다.
약산 김원봉 서훈에 따른 논쟁이 불거지면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을규·정규 형제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기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발행일 2019-05-02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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