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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를 만나다-(4)김병찬(75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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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를 만나다-(4)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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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광고등학교를 찾았을 때는 방학중이라 교정이 조용했다. 건물 5층에 있는 미술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실내는 온통 동자상 조각과 나뭇가지로 가득 차 있었다. 미술교사는 그중 동자상 하나와 연결된 루미나이트 등을 연성 껐다 켰다 하며 빛에 따라 변환하는 모습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덧 중진의 자리에 있는 김병찬(52) 화가다.
광목천에 먹 작업으로 실험적 모색을 해오던 그였기에 재료가 상당히 낯설어보였다. 얼마전부턴가 그룹전에서 심심찮게 평면에 입체를 더하고 빛의 효과를 살린 작품을 내놓았던 사실을 기억해내기까지 약간의 텀이 필요했다.
“전부터 공간에 대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테라코타로 입체를 만들었던 적도 있었지요.” 의외적인 시도가 아님을 환기시킨다.
지난 여름부터였다. 화가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화두는 ‘나는 무엇일까’. 재료와 장르의 확장이 필요했다. 합성수지에 야광 안료를 더해 동자상을 만들어나갔다. 나뭇가지에 형광색을 칠했다. 이들 재료에 빛을 투과시켰다. 빛에 따라 형상이 달라져보이는 것이 아닌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나는 나였으면 합니다. 그림도 그랬으면 더할나위 없구요.”
# 빛을 쏘다
“1년 6개월전 개인전에서 작품을 사간 이가 지나가는 말로 벽에 걸어두고 불을 끄면 안보여 아쉽다고 하더군요.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불현듯 캄캄한 곳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 꽂혔습니다. 야광처럼 작품에서 빛을 발하면 가능하겠지요.”
‘이제부턴 나를 찾는 작업을 하자’ 결심한 뒤 재료공부를 시작했다. 루미나이트라는 비가시광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합성수지에 현광·야광안료를 섞어 조형물을 빚은 뒤 빛을 투과시켰다. 순간 조형물의 존재감이 크게 부각됐다.
2000년 개인전 당시 테라코타로 설치작업을 하면서 동자승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빛에 따라 주변환경이 바뀌는 재료를 찾다보니 합성수지에 도달했다. 합성수지 동자승이 탄생한 배경이다. 나뭇가지도 오래전에 쓴 재료다. 큰 나무를 움직일 수 있을만한 크기로 잘라 신목(神木)의 이미지로 사용했다. 크기는 그정도로 하되 표면에 형광과 야광물감을 칠했다. 불을 끈 뒤 빛을 비추자 역시나 형상이 살아났다.
평면작업도 변화를 주었다. 광목천에 먹으로 배경화면을 만들고 강렬한 유채색을 입혀 의도된 형태를 그려나갔던 그간의 방식에서 과정을 그대로 가되 유채색 단계에 형광·축광안료를 섞었다. “불을 꺼도 드디어 작품이 발광을 하게 됐습니다.”
이번 겨울에 큰 작업을 해내려한다고 말한다. 전시회다운 전시회를 한번 해보려는 결심에서다. “설치와 평면 각각 한점씩 2점으로 전시를 하려고 해요. 대략 50m에서 80m에 이르는 작품을 만들려구요. 고민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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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청년예술제’를 키우다
그의 역할이 혁혁하게 드러났던 시절이 인천청년작가회 회장으로서 ‘대한민국청년예술제’를 살려냈을 때다. 그의 말을 빌자면 ‘망치부대’로 궂은 일 마다 않고 일꾼처럼 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젊은 작가들이 모여 인천청년작가회를 결성, 열성으로 전시회를 도모했다.
“기획전을 열면서 인천이라는 마당이 너무 좁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천의 좋은 작가들을 외부에 소개하고 다른 지역 작가도 불러와 자극을 받는 것이 필요했어요.”
예산이 문제였다. 기금마련 전시를 열어 종자돈을 마련했다.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면서 실력있는 작가들을 선별했다. ‘평론가가 선정한 작가’라는 시상제도도 만들었다. 전국규모의 ‘대한민국청년예술제’ 위상을 세운 것이다.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이라는 용어 대신 ‘지역’작가라는 말을 처음 썼습니다. 서울도 지역이라는 개념으로 다가간다는 것이죠. MBC 9시 뉴스에 행사가 소개 됐어요.” 이어 방송매체가 다투어 예술제를 다뤘다.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혼신을 쏟은 행사가 몇년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민간 단체가 치르기에는 힘에 부칠 수 밖에 없었다. 그간의 성과와 기획서를 싸 들고 인천시를 찾아갔다. 시는 예술제의 가치를 높이 샀다. 문제는 예산 지원이 가능한 경로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 청년작가회가 (사)인천미술협회 산하로 들어갈 경우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을 얻어냈다. 그 방법을 따랐음에도 그 다음해 예술제는 열리지 못했다.
“몇몇사람이 기획해 치른행사였으며 예산이 부족할 수도 있고 시대에 따라 컨셉이 바뀔수도 있으므로 충분히 다른모습, 다른명칭으로 치러질 수 있지요. 그런데 아예 없어진겁니다.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인천의 젊은 작가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전시가 사라졌다는 아쉬움때문이지요.”
# 재료의 물성을 고민하다
새파란 작가시절의 고민은 똑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내용적으로 우리 것을 담아내야 한다는 데 머물러있었다. 이는 그후 전통적 의미가 깃든 주제나 소재를 작품의 의미망으로 끌어들이고자하는 작업의 바탕이 됐다.
재료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있었다. 후배 이강화 작가의 화실을 방문했을 때 재료의 다양한 접목을 목격하게 된다. “강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이후 재료가 가진 물성을 어떻게 접목시킬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황토다. 이후 금박, 은박을 거쳐 먹으로 나아간다. 이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합성수지를 고르고 빛의 성질에 대해 골몰하는 것도 그래서다. “새로운 재료로 내가 의도하는것을 이뤄내면 알아나가는 재미가 특별합니다.”
끝없이 몰두하는 이유를 물었다. ‘결국은 나 찾기’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좋게 평가해서 근본적인 것을 일관성있게 갖고 왔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내 것이 무엇이라는 질문엔 선뜻 답을 못할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것이 죽을 때까지 없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더 다져야지요.” 올해의 목표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를 벌이는 일이라며 화가는 어느새 팔을 걷어붙인다.
글·사진=김경수기자 ks@i-today.co.kr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입력: 2008-01-28 20:02:36
댓글목록 0
이창재(75)님의 댓글
전재수 전회잔이 한 말씀 하시죠?
전재수님의 댓글
아~ 작품에 몰두하느라 동창회에 두문 불출 하셨군... 이창재 직전회장님! 어제는 기흥 KMW (김덕용/장관덕)에있는 친구들이 일부러 술한잔하러 몰려왔는데.. 본인은 몸이 시원찮어서 참석을 못했다우~ 글로벌 사업가와 화가중에 누가 더 바쁠까?
崔秉秀(69回)님의 댓글
KMW 회사 좋은 회사지요... 주가가 이마넌은 넘어야 하는 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