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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괴롭고 있으면 더 괴로운 요물(妖物) 휴대전화 (펌)
본문
- ▲ 일러스트 이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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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강습회 1박2일/ 첫날 저녁 때 교육원 숙소/ 휴게 코너 기둥 뒤에서 누군가/ 전화 거는 젊은 목소리/ ―오늘은 엄마가 집에 없으니까/ 아빠하고 자야지/ 이 닦고 발 씻고…/ 저 여성 강습생은 조그만 핸드폰 속에/ 온 가족을 넣고 다니는구나/ 부럽다 어리고 작아서 따뜻한 가정.’
- 김광규 ‘핸드폰 가족’
젊은 엄마가 시를 배우러 하룻밤 집을 비우고 강습회에 나와 있다. 그러나 마음은 가족을 떠나지 못했다. 시인은 엄마가 어린 딸에게 이르는 얘기를 들으며 휴대전화 속에 가족을 담고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차가운 기계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낀다. 휴대전화는 이기(利器)다. 가족과 친지와 사랑하는 이와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다. 없었을 땐 어떻게 살았나 싶다.
휴대전화는 마물(魔物)이다. 예전 호출기 삐삐의 미덕은 ‘받지 않을 자유’에 있었다. 호출이 와도 하던 일을 덜 방해받는다. 응답할지 말지 생각할 여유가 있다. 짜증스러운 스팸전화 공해로부터 자유롭다. 휴대전화는 그러나 받지 않곤 못 배긴다. 당장 안 받으면 뭔가 놓칠 것 같은 ‘잠재적 상실효과’를 뿌리치지 못한다. 휴대전화는 ‘가장 싫은 필수품’이다.
‘삐리리릭 잠깐만 응 난데 어디야/ 한국은 지금/ 애도 어른도/ 몽땅 통화중// 새로 생긴 전화인간/ 학명은 텔레포니쿠스/ 휴대폰을 차고 도시의 빌딩숲을 헤매는/ 21세기형 신유목민에겐/ 휴대폰은 생존을 위한 병기(兵器)라나/ …/ 삐리릭 소리가 들려야 막혔던 기가 풀리고/ 정신이 확 드는/ 저마다 저지르는 소리가 가벼워진 만큼/ 거동도 가벼워진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도처에 삐리리릭 소리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삐리리리 소리를 만들려고 번호를 누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 류근조 ‘전화인간’
새 인류 ‘전화 인간’ ‘텔레포니쿠스’가 출현했다. 거리엔 온통 경례하듯 휴대전화를 귀에 모시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물리적인 선(線)은 없어졌지만 휴대전화는 그 어떤 유선전화보다 더 사람을 옭아맨다. ‘전화수갑’ ‘전화족쇄’다.
휴대전화는 쓰는 사람의 염치를 마비시키는 요물(妖物)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승객들은 어느 동네 어느 미장원 값이 싼지, 어느 집 식구는 오늘 아침밥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어느 회사 납품사정이 어떤지 따위를 원치 않아도 훤히 알게 된다. 별의별 시시콜콜한 남의 개인사를 듣고 앉아 있어야 하는 ‘간접 통화’의 고통은 ‘간접 흡연’보다 짜증스럽고 그래서 정신건강엔 더 해롭다. 그래도 말리는 이가 없으니 참 너그럽기도 하다.
요즘 미국 사람들은 더는 못 참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 휴대전화 통화를 방해하는 전자장치를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담뱃갑만한 검정색 장치의 버튼을 눌러 방해전파를 쏘면 10m에서 수십m 내 모든 휴대전화가 불통된다. 불법이고 값도 수백 달러까지 만만치 않지만 한 달에 수백 대씩 수입된다. 일반인뿐 아니라 카페나 미용실 주인, 대중 연설자, 극장 매니저, 버스 기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라디오도 잡히지 않는 곳/ 석회암이 앙상한 두 개의 산 사이/ 수달이 어름치를 잡아먹는 강이 흐르고/ 읍내엔 일백 오십 호 주민들이 삽니다/ 아이가 어른 같고/ 어른이 아이 같은 그곳에선/ 시간이 황종류석처럼 더디게 자라고/ 조폐공사에서 찍은 돈은 쓰이지 않습니다.’
- 전윤호 ‘도원 가는 길’
강원도 정선 출신 시인은 산들이 첩첩 가로막아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라디오 전파도 닿지 않는 곳, 그래서 사람 살기 불편한 땅이 곧 천국이라고 말한다. 주변 사람 휴대전화 통화에 신경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고 휴대전화 벨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불러대는 일도 없는 곳이다. 면허증, 신분증, 신용카드, 명함…. 황동규는 현세의 짐과 끈 가운데 휴대전화를 가장 상징적인 속박의 사슬로 꼽는다.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
- 황동규 ‘탁족(濯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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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휴대전화 중독은 분명 세계 으뜸이다. 넷 중 셋은 벨소리나 진동이 울린 것 같은 환청(幻聽)을 겪는다. 다섯 중 셋은 전화가 오지 않았는데도 수시로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한다. 셋 중 둘은 배터리가 부족하거나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오면 불안·초조해진다. 절반 이상은 걸려오는 전화를 놓칠까봐 집안에서도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한 소비자 조사기관이 1만명을 조사한 결과다. 침묵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세상은 얼마나 어수선하고 강파른가.
시인 이문재는 세상을 촘촘하게 뒤덮은 디지털 네트워크로부터의 절연(絶緣)을 말한다. 세상의 전파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 속으로 도망쳐 오고서도 절교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갓 담배 끊은 사람처럼 며칠을 금단 증상에 시달린 끝에야 몸이 새로 깨어난다.
‘강원도의 산들은 높이를 버리고 초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처음 며칠간은 휴대폰 벨소리가 수시로 들렸습니다/라디오조차 들을 수 없는 오지에서 벨소리가 환청으로 들린 것이지요/혼잣말을 할 때에는 손가락으로 무릎 위를 톡톡 치기도 합니다/전원(電源)에 연결되어 있던 삶에서 벗어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환청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향기들이 기습했습니다/한 홉씩 코를 틀어막는 냄새들이라니요/아픈 몸은 후각에 흔쾌해지면서 한 칸씩 몸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 이문재 ‘서신’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산에 오르면서도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챙겼는지 확인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떨어져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랑이 더욱 애틋하고 절절한 법이다. 단절이 있어야 소통이 아름답다.
‘휴대폰 없이 산에서 지내는 동안/ 하늘색 공중전화가 있는/ 절 마당까지 뛰어갔다가 동전은 못 바꾸고/ 길만 바꿔 돌아올 때// 보고 싶은 마음 꾸욱 눌러/ 돌무지 탑 하나 올린다.’
- 고두현 ‘보고 싶은 마음’
바로바로 터지는 디지털 사랑보다 편지 띄운 뒤 며칠을 설레며 기다리는 아날로그 사랑이 향기롭다. 잉크 번져난 자국에서 그리운 이의 체취를 맡는 자필 편지 받아본 지가 얼마인가. 그 살가운 접촉이 그립다.
“네 핸드폰에/ 목소리 저장하지 않겠다/ 소중한 가슴 놔두고/ 왜 우리의 진실/ 기계 속에 끼워 넣어야 하는지// 언제 허물어질/ 가볍고 허무한/ 멀티미디어 사랑 하기 싫어/ 내 목소리 그곳에 보관하지 않겠다// 백치처럼 가여운/ 원시인이라 할지라도/ 네가 보고 싶을 때/ 바람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간절한 편지 한 장 들고/ 우체국으로/ 달려가는 게 낫겠네// 내 발자국/ 기계음보다 느려도/ 쐐기풀 같은 사랑이/ 더 진실할 것 같아서.”
- 문정희 ‘쐐기풀 사랑’
댓글목록 0
오윤제님의 댓글
핸드폰에 묻힌 애환 없으면 불편하고 있으면 성가싫고 어쪄란 말이요
이동열님의 댓글
없어도 을마든지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