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마음으로
'응. 올 것이 왔군.'
요즘 그런 심정이다. 꺼림칙하게 이어가고 있던 불쾌한 인연들이 드디어 그 역겨운 숨결을 뿜기 시작한다. 동시에 몇 가지 지겨운 일들을 처리해야 하지만, 나는 차분하게 처리할 것이다. 배은과 망덕. 또는 야비한 욕심과 술수. 내가 속한 세상은 나를 엄청나게 어수룩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그건 실수다.
냉정함과 무자비한 정리는, 악한 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상식과 이성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자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우방이 없다. 바로 정의라는 이름의 든든한 벗. 거짓과 욕심으로 눈이 뒤집힌 자들은 절대로 보지 못하는 상식도 역시 최고의 벗이다. 혼돈 속에서 진실은 더욱 빛난다.
끈기나 용기는, 참을성이라는 거친 풀을 먹고 자란 야생마들에게나 있는 덕목이다. 늘 온실 속에서 자란 주제에 비굴한 욕심이나 부리는 자들에게는, 어미의 치마폭 같은 부드러운 무대가 필요하겠지만, 실패를 교훈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은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옳은 것은 어쨌든 옳은 것이다. 세상이 두 쪽 나도 그렇다.
그들의 요구에 따라 화해라는 답변을 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배신으로 나온다. 이미 계산된 행동이겠지. 자신의 말을 번복하며 내게 일방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쓴 웃음을 짓는다. 세상에는 순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도한 사람들 같으니...
주변에서는 내게 말한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네게 가장 이익이 되는 쪽으로 판단하라고. 그러나 그들은 내게 다른 이들과 똑 같이 적응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내가 아니다. 내가 느끼는 분노와 내 적들의 살기 섞인 악의(惡意)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이미 많은 충고를 들었고 그 결과는 늘 참담했다. 그들은 결국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모두의 판단은 결국 거기에서 거기까지다. 내가 실패한다면 아무도 책임져줄 사람은 없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병법을 아는 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운명과 싸움을 피하기만 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번 주는 내게 비상식과 굴욕을 감수하라고 큰소리치는 미물들에게 교훈을 내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세상과 상아탑이라는 온실에 숨어 세상을 농단하려는 이들에게 정의가 낮은 음성으로 진실을 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쳇바퀴 안에서 재주 피는 햄스터 같은 이들이, 껍질이 벗겨지고 실체를 드러낸 채, 세상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찬찬히 들어 보는 것은 무척 재미난 일이 될 것이다. 사상누각(砂上樓閣). 거짓과 위선의 썩은 권위 위에서 군림하는 자들에게 딱 맞는 단어다.
지금 창밖엔 무시무시한 바람이 불고 있다. 껍데기와 쓰레기를 쓸어낼 바람이다. 내일부터 한동안 발 뻗고 자기 어려운 자들에게 불어 댈 차가운 바람이다. 그들에게 어린애 같은 욕심과 치기어린 큰소리를 빼고 나면 뭐가 남는지 두고 볼일이다. 시험공부를 마친 초등학생처럼,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싸움을 기다리고 있다.
천당(天堂) 아래 분당(盆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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