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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水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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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곳은 아주 조그만 한 곳이 였다. 우리는 코 묻은 손잔 등의 옷깃을 여미며 같은 또래의 후배들을 향하여 답사를 하였다. 내용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느덧 교실 칸막이를 때어내 임시 졸업 式場으로 만든 그 곳은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서 답사를 하는 학생도 듣는 학생도 선생님도 같은 線上에 있었다. 다만 남학생은 그래도 남자라고 소리만 낮출 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 졌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왜 그렇게 모두들 서러워하였을까? 그것은 단순한 離別 때문만이 아니었고, 가난한 시골 학생들은 중학교엘 가지 못하고, 힘든 사회생활로 뛰어 들어야 하는 그 들의 처지가 더 서러웠을 것이다. 졸업장을 받아 쥐고 校門을 나서서는 우리는 차마 서로 헤어지지를 못하였다. 가까운 애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하고는 그 집까지 함께 가서 점심을 얻어먹고는 집을 나왔다.
그 애도 다음 애의 집까지 바래다준다며 따라 나섰다. 결국은 이렇게 하여 학교를 중심으로 산골 동네를 2일간에 걸쳐 일주를 하게 된 셈이었다. 각각의 집집마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남겨 두었던 자반고등어랑 ,또 어떤 집은 달걀 무침이랑 , 또 어떤 집은 그 냥 콩가루 묻힌 시래기 국과 무만 썰어 넣은 된장찌개와 콩 나물 무침. 그래도 그것은 달콤한 사탕이었다. 달 빛 훤한 산골 동네 동구 밖에 모여서 환호를 하고 노래를 같이 불렀던 그 때가 지금 생각 해 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제일 행복한 한 때 엇단다. 벌써 이곳을 떠난 친구가 있어서 섭섭하지만……. 시리도록 훤한 달 빛 아래서 그 때의 동무를 생각하고 해질 무렵의 먼 산 넘어 살고 있을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닫힌 시골의 소우주에서만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세상의 전부 인줄 알았었다.
그 때는 부끄러워 서로 말 한마디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안아보고 싶었던 순간의 꿈을
수 십 년이 지난 8월 여름 어느 날, 참 뚱뚱하고 무거웠지만 만나서 서로 안아 보았다, 그렇게 하여도 부끄럼이 없고 오히려 서로에 대한 안스러움이 떠오른다. 세월은 流水라고 그리고 추억은 세월만큼이나 빠르게 쌓여만 가고 떠오른다. (99/8/20) <그 후 오늘까지 우리는 해마다 한 번씩 만난다> (2007.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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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0
李聖鉉님의 댓글
선배님 이 글 창작같아요.작품집에 싣을까요?
최영창님의 댓글
죄송합니다. 창작할 실력이 못됩니다. 죄송
李聖鉉님의 댓글
선배님 모두 아마추어지요--신변잡기에 창작 한 편 올려주세요.추억 얘기일수록 좋지요.
오윤제님의 댓글
선배님 왜 가만이 있는 사람을 울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