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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대회/조우성(65회)<객원논설위원>(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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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고교야구대회
일본 효고(兵庫)현 니시노미야(西宮) 시 고시엔 야구장. 매년 여름 그 곳에서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린다.
1936년 여름 전 조선 대표로 인천고(仁川高)의 전신인 인상(仁商)의 '나인'들도 사상 처음 그 구장(球場)을 밟았다. 장영식(張榮植), 김선웅(金善雄) 선수가 포함된 원정 팀은 그 해 8월 16일 정오 평안중학교와 첫 경기를 벌였는데,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제 기량도 펼쳐보지 못한 채 17대0 이라는 믿기지 않는 스코어로 대패하고 말았다.
인상은 38년, 39년에도 그 대회 본선에 진출해 인천 야구의 활성화에 기여했고 36년에 출전했던 김선웅 선수는 광복후 모교인 인천고에서 감독을 맡아 동산고와 함께 인천 야구의 최전성기를 일구는 주역으로서 활동했었다.
그 고시엔 대회가 금년에도 어김없이 열렸다. 인천에서는 한국판 '고시엔 대회'가 될 미추홀기 쟁탈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현재 숭의야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전국고교야구대회'를 대하는 한일 간의 양상은 천양지차였다.
일본에서는 '1승이 꿈'이라던 사가키타(佐賀北)고가 우승해 전 매스컴이 떠들썩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황금사자기·봉황기·미추홀기 같은 전국고교야구대회가 방송 미디어와 상대지(相對紙)로부터 외면당하기가 일쑤인 것이다.
필자는 미추홀기 3, 4일째의 주야간 경기를 관전했다. 젊음이 약동하는 열전들이었다. 그러나 스포츠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대회 외적인 환경들에는 기성세대로서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인천 야구의 전통을 살려나가기 위해 묵묵히 고행의 길을 가고 있는 인천일보사와 전국 고교 야구 관계자들에게 성원이 있어야겠다.
/조우성<객원논설위원>
종이신문정보 : 20070828일자 1판 8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7-08-27 오후 8: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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