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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여신’ 숭상 받다 버려지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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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7월4일 보도〉)
살아 있는 여신(Living Goddness)인가, 비운(悲運)의 여인인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중심부 더르바르(Durbar) 광장의 남쪽, 나무로 된 작은 창틀이 유난히 많아 보이는 ‘ㅁ’자 모양의 3층짜리 건물이 눈에 띈다. 쿠마리 사원(Kumari Bahal)이다. 입구엔 비둘기들이 모이를 찾아 잔뜩 몰려 있고 주변엔 사탕을 파는 노점상들이 앉아 있다. 사원의 입구에서 가이드 등을 통해 1~2달러 정도를 건네면, 3층 방에서 짙은 화장을 한 앳된 어린 소녀가 2~3초 동안 잠시 얼굴을 내비친다. 그때 기분에 따라 웃기도 하고 무표정하기도 한다. 그가 바로 쿠마리이다.
힌두교와 불교 신자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네팔에서 쿠마리는 종교와 무관하게 국민적인 추앙을 받는 여신. 쿠마리의 기원은 힌두교 신화에서 출발한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탈레주’란 힌두 여신(힌두교에는 3억 3000만명의 신이 있다고 함)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네팔(카트만두 왕국)에 나타난 적이 있다고 한다. 빼어난 미모에 반한 왕은 여신을 극진히 모시던 중 그만 이성을 잃고 여신을 범하려 했다. 그러자 탈레주 여신은 크게 분노해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뒤늦게 잘못을 크게 뉘우친 왕은 여신이 돌아올 것을 하늘에 빌었으나 그 여신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된 왕의 간절한 기도에 감복한 여신은 그에게 초경을 겪지 않은 순수한 어린 여자아이를 선택해 그녀를 자신의 분신으로 섬기기를 명령했다. 왕은 여신이 제시한 조건에 따라 어린 여자아이를 뽑아 여신으로 섬기기 시작했다. 이 여자아이가 바로 쿠마리인 것이다.
- ▲ 미국 방문으로‘쿠마리’의 지위를 박탈당한 10세 소녀 사자니 샤키아. 그녀의 이마에는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와 법을 꿰뚫어본다는 신성한 눈‘티카’장식이 있다. /AP
- ◆왜 쿠마리를 믿나
네팔 사람들은 쿠마리가 국가는 물론 개인의 미래와 운명에 대한 예언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쿠마리가 접견한 사람을 보고 크게 울거나 웃으면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암시한다고 한다. 또 눈물을 흘리거나 눈을 비비면 그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표시이고 갑자기 부르르 떨면 죄를 지어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한다.
반면 쿠마리가 조용히 있거나 침착하다면 이는 소원이 받아들여졌음을 뜻한다. 특히 현재 국왕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쿠마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외(스위스)로 나가거나 사냥에 나섰다가 큰 병을 얻고,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쿠마리의 선정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부처님과 같은 성(姓)인 샤카 종족(불교 신자들도 숭배하는 이유인 듯함) 중 4~5살의 어린 소녀에서 한 명을 뽑아 초경이 시작될 12살 안팎까지 7~8년간 쿠마리로 숭배한다. 쿠마리는 32가지의 조건이 맞아야 하는데, 태어난 이후 몸에 상처가 없어야 하고, 부모가 모두 살아 있어야 하고, 몸 생김이 예뻐야 하며 머리와 눈은 반드시 검은색(검은색이 신성한 색이라고 믿음)이어야 한다. 힌두 경전에 의하면 쿠마리의 몸은 보리수 같아야 하며 허벅지는 사슴 같고, 눈꺼풀은 소와 같아야 한다.
쿠마리는 모두 3명이다. 카트만두 분지에는 파탄(Patan), 박타푸르(Bhaktapur), 카트만두 등 3개의 도시가 있는데, 1769년 독립 전에는 저마다 왕국을 이루고 살아 쿠마리 역시 제각각 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쿠마리는 박타푸르의 쿠마리다. 가장 대표적인 쿠마리는 카트만두의 쿠마리다.
◆왜 쿠마리는 비운의 여인인가
쿠마리가 사원에 있을 때는 교육, 의료, 생활비 모두를 국가로부터 지원받는다. ‘비의 신’인 인드라를 섬기는 8~9월의 ‘인드라 자트라’ 축제 등 1년에 13번 정도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고 나머지 시간은 사원 내부에서 경전을 배우는 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다 초경을 하게 되면 쿠마리는 사원을 떠나야 한다.
사원을 나오는 순간 그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된다. 쿠마리가 돌아오면 집안이 망한다거나 쿠마리와 결혼을 하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속설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도,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사창가 등을 전전하다 죽어간 경우도 많다.
하지만 최근엔 쿠마리가 되더라도 가족들을 사원으로 불러 함께 살거나 이번에 문제가 된 박타푸르의 쿠마리처럼 학교도 다니고 영어도 배우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쿠마리는 원래 하루 1~2번 일정한 시간에만 사람들을 만났다. 그의 미소는 행운의 상징이었다. 이제는 관광객들이 몰려오면 하루에도 수차례 얼굴을 내민다. 점점 상업화에 물드는 것이다. 더욱이 여성단체나 인권단체에선 이를 아동학대 문제로 보고 있다.
네팔대 사회학 박사과정의 니르 구룽(38)씨는 “원로들은 네팔의 전통을 상징하는 존재로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제 쿠마리를 신으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특히 쿠마리의 강력한 지원세력이었던 국왕이 각종 추문에 시달리며 그 권위가 땅에 추락하고 있다. 쿠마리가 ‘여신’의 지위에서 네팔의 전통 종교 상품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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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열님의 댓글
세상은 참 신비한것도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