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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출신 국민가수 박상규(59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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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둥글 '조약돌' 고향품에 안기다
인천출신 국민가수 박상규
"건강 허락하는 한 관객 만날것"
인천이 고향인 국민가수 박상규(66)가 고향에 돌아왔다. <조약돌>이란 히트곡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지난 3월 연수구 옥련동에 '덕박사'란 식당을 열고 고향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머잖아 거주지도 인천으로 옮기고 '둥글둥글한' 조약돌처럼 살아갈 생각이다. "나이 먹으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타지에 사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람은 늘 고향에 대한 꿈을 꾸게 마련이거든요." 중구 신흥동이 고향인 박 씨는 "신흥동에서 가까운, 지금은 송도 쪽인 낙섬에 대한 추억이 많다"며 "앞으로 고향과 인천시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태어날 때만 해도 고향은 온통 갯벌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도 달라져서 정신이 얼얼할 정도이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고향에 있을 때는 송도에서 아르바이트로 인명구조 활동도 했었는데…."
동무들과 어울려 수시로 미역을 감고 망둥어를 잡던 자리에 개념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유비쿼터스가 구축되고 있으니 그로서는 입이 딱 벌어질만 하다.
창영초, 남인천중, 인천고를 나온 그는 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연세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졸업한 뒤 65년 'KBS 전속가수'로 데뷔한다.
10여년 간 무명이던 그를 '뜬 별'로 만든 것은 <조약돌>. 이 앨범은 당시 100만 장이 팔려나갔다.
"70년대면 엄청 어려운 시기였잖아요. 노랫말을 보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둥글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담겨있습니다."
'내 마음은 조약돌 / 비바람에 흩어져도 / 둥글게 살아가리 …'란 가사에서 보듯 <조약돌>은 삶이 신산하게 느껴질 때 부르는 노래였다. <조약돌>은 가난한 삶을 위무하고 상처를 보듬으며,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는 군인들에게까지 애창되는 당시 불후의 명곡이었다.
"조약돌의 인기는 6개월 간 상승하고 6개월 동안 내려오면서 근 1년 간 애창곡으로 불려졌지요."
물론 그의 히트곡이 <조약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야 친구> <둘이서> <영마> 등도 그가 무대에 설 때면 어김없이 '앙코르!'를 받는 곡 들이다.
박 씨는 이후 20여년 간 가수로, 또 방송인으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97년 IMF가 터지면서 사실상 방송에서 손을 놓았고 그 때부터 사업에 전념했다. 현재 서울에서 그는 '돈킹'이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래는 안 하는 것일까.
"무슨 말씀이세요? 얼마전에 공연차 호주 시드니에 다녀왔어요. 임희숙, 채은옥과 저희 다이나믹스 멤버인 장우, 김준, 차도균이 함께 가서 1천700명 앞에서 노래를 했어요. 오는 20일엔 미국 뉴욕에서 단독 공연이 잡혀 있지요."
가수 고 현인씨를 좋아한다는 박 씨는 "가수라면 영원히 무대에 서는 것이 꿈"이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관객들을 계속 만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뒤늦게나마 귀향한 그를 친구들은 반갑게 맞아줬다.
"수십년 만에 왔는데도 친구들이 바로 어제 만났던 것처럼 반겨주는 겁니다. 영원히 변치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고향 친구들의 우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천고 59회인 그는 '2014 아시아경기대회' 유치위원장인 신용석씨와 동기동창이며, 유치위원인 장창선씨와 친구이기도 하다. 고향의 환영과 친구들의 우정을 위해 그는 무엇이든지 주어지기만 하면 팔을 걷어붙이겠다고 강조한다.
"홍보대사도 좋고, 공연도 좋고 그 밖에 무엇이든 아시안게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안게임이 아니더라도 고향 인천을 위해 무엇인가는 꼭 하고 싶습니다."
고향에 대한 강한 애향심을 내비치는 박상규. 그의 실제 나이는 60대 중반일지 모르지만 마음나이는 스무 살이다. 가운데로 세워올린 헤어스타일과 빨간 무늬의 티셔츠, 왼쪽 귓불에서 반짝이는 링이 그것을 말해준다.
/글=김진국·사진=정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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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정보 : 20070514일자 1판 9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7-05-13 오후 9: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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