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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폭동 15주년 컬럼 (74회 장태한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소수인종학)
본문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1992년 4월 29일 우리는 그 날을 사이구
로 부른다.
올해는 버지니아 텍 총기 사건으로 사이구 폭동 15 주년의 의미를 되새기
며 기억하는 노력이 퇴색된 느낌이다. 다만 한미연합회 주최로 폭동의 의미
를 기억하고 후세들에게 전해주는 걷기 대회가 개최되어 후세들도 사이구
폭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또한 한인 대학생 컨퍼런스 (KASCON)에서
도 거의 매년 사이구 폭동을 주제로 연사를 초빙하여 강의를 듣고 토론하
여 사이구 폭동의 중요성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
다.
그러나 사이구 폭동을 경험한 이민 1세들은 사이구 폭동의 고통을 빨리 잊
으려고만 할 뿐 후세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한 것같다.
사이구 폭등의 교훈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우선 사이구 폭동은
미국 사회에 한인의 존재를 알려준 사건이었다. 중국계 또는 일본계가 아시
안을 대표해왔는데 사이구 폭동을 계기로 한인의 존재가 미국인의 의식에
각인되었다.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위기 상황에서 누구도 한인 사회에 관심
을 갖지 않았다. 그들의 무관심속에 한인 사회는 피해자였다. 정치인 누구
도 우리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번 버지니아 텍 사건에는 한인
사회가 비교적 차분하고 신속하게 대처하여 이 사건이 인종 문제로 번지지
않은 것은 한인 사회의 정치력이 그만큼 신장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
직도 전국적인 네크워크가 결성되지 못했고 민권 단체 또는 압력 단체로 한
인 사회를 대변할 조직이 없는 것은 과제이다.
역설적으로 이번 버지니아 텍 총격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집단적 죄의식을
느끼고 사죄를 했다는 점은 아이로니컬하다. 이번 사건은 한국 정부나 한국
인들이 나설 문제가 전혀 아니다. 문화적인 차이와 편협한 시각 특히 폐쇄
적 민족주의가 낳은 과잉 반응이라고 생각된다.
사이구 폭동으로 “코리안 아메리칸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을 하게 되었
다. 미국화를 추구하면서 한인 사회를 떠나려했던 1.5세와 2세들은 방화와
약탈의 엄청난 시련을 겪는 1세들을 목격하면서 오히려 1세 이민자들의 눈
과 입이 되어 한인 사회의 입장을 대변했다. 버지니아 텍 사건 대처도 역
시 1.5세와 2세들의 몫이었고 현재 미 의회에 계류 중인 위안부 결의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바로 1.5세와 2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
다.
그러나 1세와 2세간의 간격은 이번 버지니아 텍 사건을 계기로 확연히 드러
났다. 1세들은 같은 한인이 저지른 범죄라고 아연질색하고 깊은 슬픔과 죄
의식에 빠진 반면 1.5세와 2세들은 한 개인의 행동에 왜 우리가 책임을져
야 하는지 항변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 정부와 1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으며 화가 난다는 글들을 많이 올렸다.
다인종 다민족 사회의 일원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
는 방법을 깨우쳐 준 사이구 폭동. 이제 한인 사회는 고립되지 않았으며 보
다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15년이 지난 현재 한인 사회는 폭동의 상처를 이겨내고 교훈을 하나씩 실천
에 옮기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미흡한 점 많다. 우선 아직도 사이구 폭동
을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후세에게 물려 줄 유산이 될 만한 상징물이
한인 타운에는 없다는 점 지적하고 싶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지지 말고 맹목적 성적위주의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
는 자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이민 1세 부모들의 역할임을 깨닫고 그러한 교훈을 실천에 옮기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댓글목록 0
오윤제(69회)님의 댓글
" 조" 사건에 대한 견해는 복합적인 문제가 결부되겠지요. 미국에 있는 한민족의 미국인 미국에 있는 미국에 적을 두려는 한국인 그저 미국에 있는 한국인 한국에 있는 미국인(한민족) 미국인이 되고자하는 한국인 순수 한국인 다 다른 생각을 가지겠지요. 이런 사건이 미국아닌 우리보다 못한 곳에 낳다면 어찌 하였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