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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인천" 김경기(오마이 뉴스 기사 펌)
작성자 : 동산 22 김효식
작성일 : 2007.03.24 17:15
조회수 :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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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인천'이란 별명, 황송할 따름이죠" | |||||||||||||
[오마이뉴스 2007-03-24 14:42] | |||||||||||||
[오마이뉴스 고동현 기자] 한국 프로야구에는 전설적인 스타들이 많이 있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부터 '무쇠팔' 최동원, '헐크' 이만수까지. 이 외에도 많은 스타들이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갔다. 하지만 이들 대스타조차도 자신이 뛰었던 팀의 연고지역명이 붙은 애칭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비록 앞에서 언급한 선수들의 선수시절 기록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그에게는 '미스터 인천'이라는 멋진 애칭이 언제나 따라 다녔다. 바로 김경기 SK 와이번스 코치. 김경기는 1990년 태평양 돌핀스로 데뷔해 SK 소속으로 2002년 개막전에서 은퇴식을 할 때까지 통산 1182경기에 출장해 타율 .275, 138홈런, 598타점을 기록했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인천에서만큼은 어느 대스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후 1년. 2005년까지 입었던 SK의 파란 유니폼은 어느새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감독도, 수석코치도 모두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김경기도 어느덧 머리숱 걱정을 할 나이가 됐다. 하지만 그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을 반겨주는 인천팬들이 있었고, 2군 타격코치 시절 자신의 제자였던 김강민, 박재상 등이 1군에 올라와 활약하고 있으며, 선수시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등번호 '00번'을 올시즌부터 다시 달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그를 21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경기 코치와의 인터뷰 전문. "팬 여러분 덕분에 빨리 복귀하게 돼 행복" -1년만에 SK로 복귀했는데 소감은? "우선 비록 1년간이었지만 이 곳이 무척 그리웠다. 유니폼을 빨리 입고 싶었는데 팬 여러분 덕분에 빨리 복귀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 -인천팬들에게 '김경기'란 이름은 다른팀 프랜차이즈 스타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다면? "아무래도 아버지(전 삼미 슈퍼스타즈 김진영 감독)의 후광도 있고 다른 선수들에 비해 인천색이 짙어서 그런 것 같다. 인천에서만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프로야구 선수 생활도 했고... 그리고 팬들 머리 속에 '오랫동안 잘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선수생활을 한 선수'로 남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미스터 인천'이란 별명이 있다. 마음에 드는지? "정말 마음에 들며 황송할 만큼 좋은 별명이다. 때문에 이 별명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항상 노력한다. 선수 시절 활약에 비해 너무 과분한 별명이라고 생각한다." -문학구장에서는 아직도 선수 못지않은, 아니 선수보다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때로는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아직도 팬 여러분들이 사랑해주니 고맙고 실망을 끼치지 않기 위해 행동 하나 하나에 조심을 기하게 된다." -1년간 미국에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 "2002년 은퇴를 한 후 한 차례 연수를 갔다. 그리고 지난해 다시 갔는데 지난해에도 많은 것들을 배웠다. 애틀랜타 지역에 있는 대학팀에서 코치 역할을 수행했는데 문학구장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데뷔 첫 해(1990년)에는 등번호가 37번이었다가 이후 00번으로 바뀌었다. 번호를 바꾼 사연은? "아마추어에서는 나름대로 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프로 첫 해에 이룬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비운다는 뜻으로 00번을 선택하게 됐다. 00번을 단 선수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 다시 00번을 달게 됐다. 2002년 은퇴 이후 올해 달게 됐는데 기분은 어떤지. "감독(김성근 감독, 38번)님부터 시작해서 수석코치(이만수 코치, 22번)님까지 '스포테인먼트'의 일환으로 번호의 이미지화가 이뤄졌다. 구단의 반강제(?)에 의해 다시 받은 00번이기는 하지만 워낙 좋아했던 번호였기 때문에 만족한다. 다만 너무 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은퇴를 비교적 빨리한 편이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2001년을 끝으로 은퇴를 했으니 33살에 은퇴한 셈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다른 이유가 아닌 실력이 떨어져 은퇴를 했다는 점이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고 다른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에 대해 아쉬워 할 단계는 지난 것 같다." "1998년 첫 우승당시의 팬들 눈물 아직도 못 잊어"
"단연 1998년에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다. 인천팀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했는데 한국시리즈 6차전(현대-LG)이 끝난 후가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승을 한 후 우승기를 들고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관중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 광경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2000년 중반 현대에서 SK로 트레이드됐다. 이적 이후 첫 타석에 오를 때의 기분은? "트레이드되기까지 사정이 있어 2군에서만 생활을 했다. 무엇보다도 다시 타격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2군 코치 시절 같이 생활했던 김강민, 박재상이 최근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데 보람을 느끼는지? "이렇게 2군에 있던 선수들이 1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 당시 함께 생활했던 선수들이 지금 많이 있는데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다는 점도 좋고 그 선수들이 가끔씩 타격에 관한 사항들을 다시 물어올 때도 정말 기쁘다. 선수가 나를 인정해주고 찾을 때 나를 찾을 때가 가장 좋고 보람도 느낀다." -1군 타격코치에는 김경기 코치 이외에도 오오타 타쿠지 타격코치가 있다. 각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오오타 코치가 메인 타격코치다. 아무래도 나는 오오타 코치를 돕는 처지다. 오오타 코치가 일본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선수 장단점 파악 같은 것이 어렵기 때문에 선수들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하기도 한다." -지도자로서 타격에 관한 자신만의 신조가 있다면? "타격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려고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살리는 쪽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점을 보완하려고만 하다보면 자신만의 야구색깔이 흐려질 수 있고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올해는 SK가 지난해보다는 성적이 좋을 것 같다. 포스트시즌 진출은 실력만 있다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우승에는 팬이 있어야 가능하다. 선수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모든 노력을 하고 있고 프런트도 많은 팬들을 모시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SK가 첫 우승을 하는데 팬 여러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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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聖鉉님의 댓글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