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충격을 접하면서 남한에서는 통일이 더욱 멀어질 거라는 견해가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
북한의 ‘핵실험 성공’ 발표 직후인 지난 9일 오후, 권위 있는 한 전문가로부터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중국도 제재에 동참할 것이다. 북한은 혹독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고난을 앉아서 당하기만 할까. 체제에 중대 변화를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고, 한반도 정세도 격동을 거칠 것이다.”
공교롭게도, 서울보다 8시간 늦은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권위지 더타임스도 10일 사설에서 비슷한 견해를 폈다. 중국이 대북 제재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본 이 사설은, “북한의 엘리트들 가운데는 인민들의 고통과 김정일 개인 숭배에 심사가 뒤틀린 사람들이 있고, 중국은 그들이 누군지 안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북한의 ‘체제 변화’(regime change)를 주저하겠지만, 그래도 위대한 영도자를 밀어내고(edge out) 개혁적 실용주의자들이 들어서는 것은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설은 “미스터 김이 권좌를 떠나는 것이 가장 모양 좋게 위기를 탈출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사태는 누구도 단언키 어렵지만, 핵실험이 통일의 문제를 다시 생각케 하는 것은 틀림없다.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여러 정책·방안이 있어왔지만, 압축하면 3가지 정도의 길뿐이다. 우선 전쟁에 의한 통일과 평화 통일이라는 상반된 두 길이다. 1950년 김일성(金日成)은 전쟁으로 통일하려고 남침했고, 수백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 비극을 피하는 길이 곧, 언젠가 협상과 합의로 통일을 이룬다는 이상(理想)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약이 없을 뿐더러 정치적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단히 비현실적인 꿈이라는 한계가 있다. 남쪽에선 선출된 권력이 임기를 마치면 물러나지만 북쪽에선 세습 정권이 유지되니, 통일은 불가능하다. 2300만 북한 주민의 고통 해소도 마냥 지연된다.
제3의 길은, 어느 한쪽(북한)의 체제 붕괴로 다른 한쪽(남쪽)이 원하든 않든 통일을 맞이하는 경우다. 앞서 인용한 한 전문가의 견해나 더타임스의 사설은 결국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이 제3의 길 또는 그에 가까운 형태에 이를 수도 있는 전조(前兆)를 예견한 것이다.
물론 그런 사태가 왔을 때, 남쪽이 져야 할 부담과 고통은 엄청나다. 남한 사회 안에는 이미, 북한 체제의 존속에 목을 맨 주사파(主思派) 외에도, ‘북쪽 동포들이 고생하건 말건 우리가 왜 통일의 짐을 떠안겠나, 그냥 따로 살지’라는 통일 기피론자들도 꽤 있다. 또 그런 부담을 당장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북한을 지원해서 개혁과 변화를 유도하자는 게 지난 8년간 햇볕정책의 논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북한의 핵무기와 더욱 벌어진 남북 격차뿐이다. 남쪽이 져야 할 잠재적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으니, 북한 정권을 연명시켜온 8년간 햇볕정책의 결산서는 이제 뻔하다.
어치피 갈수록 큰 짐을 져야 할 거라면, 힘들더라도 차라리 지금 지는 게 낫다. 우리는 북한이 붕괴한다면 끌어안고 통일 초기의 고통을 견딜 각오를 해야 한다. 북한 인구는 남한의 절반이다. 남쪽의 두 사람 또는 두 가정이 북쪽의 한 사람 또는 한 가정을 도와 함께 산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전교조 선생님들부터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물론 붕괴에 의한 통일이 곧 다가오리라고 들떠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일 유망한 통일 가능성을 애써 회피하고 분단상황을 연장·고착시키려는 무리들이 ‘통일세력’인 양 설치며 진짜 통일세력을 ‘반(反)통일세력’으로 뒤집어씌우는 세상인지라, 새삼 근본을 일깨워보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김창기 · 편집국 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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