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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기/조우성(65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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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기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우리나라에 야구가 들어온 것은 1899년 인천을 통해서였다. 일설에 황성기독교청년회(현 서울YMCA)의 총무를 맡았던 미국인 질레트가 1905년 그 회원들에게 보급한 것이 효시라고 하나 이는 인천 지역사에 어두운 일부 스포츠 사가(史家)들의 주장이다.
최근 인천고ㆍ동산고ㆍ제물포고 총문회가 ‘한국야구100주년’을 기념해 공동 발행한 ‘인천 야구 한 세기’에는 인천고의 전신인 인천영어야학교 1학년 생도 후지야마 후지사와(藤山藤芳)의 일기를 전재해 그 같은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
“3시 근무가 끝난 다음 4시부터 중상(中上) 군을 불러내어 일연종(一蓮宗ㆍ옛 신흥초등학교 옆의 절) 앞 광장에서(중략) 함께 ‘베이스 볼’이라는 서양식 공치기를 하고 5시경에 돌아와 목욕탕엘 갔다.” 이 일기는 ‘베이스 볼’이란 용어가 등장하는 국내 최초의 기록으로 질레트보다 6년 앞선 일이다.
그로부터 인천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야구는 학생 팀인 인상(仁商ㆍ인천상업학교)과 사회인 팀인 한용단(漢勇團)이 주축이 되어 명성을 날렸고, 광복 후 그 맥을 이어 탄생한 것이 유완식, 박현덕, 김선웅 선생 등이 멤버였던 ‘전인천군(全仁川軍)’이었다.
‘전인천군’은 1946년부터 인천에서 열린 최초의 야구대회인 4도시 대항 야구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후배들인 인천고(仁川高)와 동산고(東山高)도 그 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전국을 제패해 구도(球都) 인천의 명성을 지켜왔고, 후발 제물포고도 와신상담 분투해 왔다. 그러나 전 국민이 열광하던 그 옛날의 고교 야구열이 최근 부쩍 식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인천시, 대한야구협회, 인천일보사가 공동 주최하는 제4회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28일 숭의구장에서 개막됐다. 전년도 우승팀인 충암고, 올 전국 대회 2관왕인 장충고, 덕수정보고 등을 비롯한 전국의 야구 명문 16개교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일 전망이다. 해를 거듭해 열리고 있는 이 대회가 전국적인 고교 야구의 붐을 부활시키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종이신문정보 : 20060830일자 1판 4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6-08-29 오후 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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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님의 댓글
문자중계하고 있네요.[이번대회엔 올시즌 성적이 좋았던 장충,덕수,북일,안산공고는 저학년 테스트용으로 임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