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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상호
작성일 : 2006.07.26 13:43
조회수 :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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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고(仁川高), 첫 동맹휴학 민족 반골정신에 투철 |
2006년 07월 26일 11:40 |
111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인천고(仁川高)는 인천의 산증인이자 인천의 자존심이다. 특히 인천고는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민족반골정신이 투철한 학교이다. 1895년 5월 10일 고종(高宗)황제는 칙령 88호의 외국어학교 관제를 공포했다. 이것이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인천지교를 설립의 모법(母法)인 학교법령이었고 오늘날 인천고등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인천고는 인천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1894년 우리나라는 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 갑오개혁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민족 최대 격변기였고, 민족정신의 절정기였다. 그해 12월 고종은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하는 홍범(洪範) 14조를 반포했다. 홍범 14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이자 갑오개혁의 기본방향을 제시했다. 고종은 1895년 2월 교육입국칙서(敎育立國勅書)를 반포했다. 이 칙서에 따라 교사양성을 목적으로 4월에 한성사범학교, 5월에 외국어학교 등의 관립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렇게 하여 인천고는 한성외국어학교 인천지교로 내동에서 개교했다. 당시 인천항은 서울의 관문이자 서구문물의 선구지(先驅地)였다. 인천 화도진(花島鎭) 언덕에서 1882년 미국 영국 독일과 수호통상조약(修好通商條約)을 체결했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자 서구의 문물들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각국 공동조계가 설정되었으며, 영사관들이 들어섰다. 오늘날 인천고가 야구를 받아들여 지난 100년을 꿋꿋하게 지켜온 데는 이러한 영향이 컸다. 인천항 서울 관문이자 서구문물 유입 선구지
인천항에는 민족상인(客主)의 진출은 물론 외국상사의 진출도 활발했는데 독일계 ‘세창양행’과 미국계 ‘타운선상회’가 대표적이다. 광목, 석유(램프), 세창표 바늘, 성냥, 비누 등이 들어와 개화기 우리 민중에게 생활의 편익을 가져왔다. 인천항에는 상인 뿐 아니라 각국 외교사절과 개화파인사들은 물론 선교사들이 맨 먼저 도착했다. 그래서 1885년 7월 19일 아펜젤러가 처음 종교집회를 가졌는데 이곳이 내동 내리교회로서 개신교의 시초이다. 죤스 부부는 1892년 인천영화여학당이라는 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영화여학당은 훗날 김활란 이화여대총장을 비롯해 김애마, 서은숙, 김영의 박사 등 우리나라 여성근대화에 큰 기여했던 걸출한 인물들을 다수 배출했다. 1895년 6월 27일 문을 연 인천고는 주로 일본어를 가르치며 학생 수는 20~30이었다. 그해 8월 명성황후가 일본 미우라(三浦梧樓)공사에 의해 시해 당하자 일본인에 대한 증오와 저주, 울분이 전국에서 메아리쳐 학교는 휴교상태에 들어갔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천고는 1898년 9명의 첫 졸업생을 시작으로 2006년까지 3만1,02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인천고의 민족 반골정신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에서 처음 드러냈다. 김삼(金三)과 이원옥(李元玉), 이장춘은 그해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을 듣자 등굣길에 교문에 있던 당시 바뀐 교명인 인천일어학교(仁川日語學校)라고 쓴 간판을 때려 부셨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반 학생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이 판국에 일본어를 배워서 무엇 하겠느냐”며 “우리가 일본의 노예가 되려고 일본말을 배우겠느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3학년은 졸업을 앞둔 시기여서 그대로 수업하고 1, 2학년이 수업을 전면 거부했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 학교 간판 부수고 전면 수업거부
사실상 우리나라 첫 동맹휴학인 셈이다. 마침 일본인 학감인 암기(岩崎) 선생이 “정말 나라와 민족의식에서 우러난 참다운 일”이라며 칭찬하는 등 그의 지사형 선비 탓에 모두 처벌받지 않고 무사했다. 이러한 인천고의 민족 반골의 기백은 면면히 이어져 3.1운동 때는 17명이 체포됐다. 인천의 한국인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고 철시, 왜경들이 협박하면 잠시 열었다가 다시 닫아버리는 등 일제에 철시항쟁을 계속했다. 인천 사람들의 31독립만세운동은 3월 내내 계속되었고, 이들에게 독립운동의 전형으로서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천고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인천에서 유일하게 동참, 200여명이 동맹휴학과 만세시위를 벌여, 16명이 검거되고 12명이 퇴학처분을 받았다. 인천고의 독립운동과 민족정신은 1940년 ‘독서회’ 비밀결사조직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이들은 학병반대, 창씨개명 반대를 위해 24명이 부처산(石佛이 88개 있었던 곳)에 모여 대한독립과 우국충정, 항일정신을 북돋았다. 이들은 졸업 후 1944년 일경에 적발되어 창씨개명에 끝까지 반대했던 정구택(鄭龜澤) 동문을 시작으로 24명이 구속되었다. 이들은 모진 고문과 영양실조로 가재연(賈在衍:서산), 정태윤(鄭泰潤:인천), 고윤희(高允熙:개성), 김여수(金麗洙:강화) 등 4명이 옥중에서 요절했다. 그후 광복이 되어 풀려난 나머지 동문 11명도 감옥살이 휴유증에 시달리다 일찍 숨졌다. 이처럼 인고인 24명이 대동아전쟁을 일으켜 일제의 발악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민족구국운동을 펼친 것은 목숨을 내건 대단한 용기가 아니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민족정신의 발로였다. 민족구국 ‘독서회’ 비밀결사조직 4명 옥사 20명 옥고
인천고 39회 동문들은 조국을 위해 몸 바쳤던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86년 교정에 추모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새겼다. “여기 오랜 역사와 전통의/ 찬연한 빛이 머물고/ 이제는 미움도 싸움도 없는 대화가/ 맑은 바람과 더불어 지나가는/ 모교의 교정// 본교 39회 동창생 일동은/ 일제하 재학시절부터 졸업후에까지 민족적인 자각으로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마침내 일경(日警)에 24명이 체포되어 그중/ 가재연, 고윤희, 정태윤, 김여수등 4명이 옥사하였고/ 출감 후에도 일경의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11명이 원통하게 호국의 넋이 되었다// 민족의 자유를 찾기 위해/ 한을 품고 가신님들의 기백(氣魄)과 정신/ 우리 모두 그 뜻을 기리며 돌에 세우니/ 풍우(風雨)다 지나간 하늘에/ 영겁(永劫)으로 뻗는 웃음 되어/ 조국과 모교의 미래에/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힌다.// 인고인들은 1944년 태평양전쟁 막바지 야외군사훈련에도 저항하다 학생 전원이 자갈밭에서 3시간 동안 무릎 꿇고 벌 받는 등 꿋꿋하게 민족반골정신을 발휘했다. 가용현(賈龍鉉) 인천고 교장 선생은 이러한 불굴의 민족정신 전통이 인고정신(仁高精神)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고는 정의와 용맹을 나타내는 호랑이가 상징물입니다. 즉 약한 사람을 도와주며 정의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의기를 상징합니다. 인고인들은 일제에 항거하며 전국에서 처음으로 동맹 휴학을 했고, 민족구국운동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퇴학을 당했으며, 비밀결사를 조직해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속에서 인고정신은 면면히 이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명품 인천고, 불굴의 민족정신 전통이 인고정신
“저는 명품 인고를 강조합니다. 우리 학교는 민족정신 전통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학생들과 3만여 졸업생들이 긍지와 보람 속에 한마음으로 뭉쳐 있습니다. 훌륭한 선배들의 실력과 민족정신을 이어받아 명품 인고를 이어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천고의 교훈은 성실(誠實)이고 ‘세계로 미래로 약진하는 창의적 인고인’육성이 교육목표이다. 인천고가 추구하는 인간상은 도덕인, 자주인, 창조인, 건강인 양성이다. 먼저 도덕인(道德人)은 인간을 서로 존중하며 공동체에 헌신하는 덕망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고, 자주인(自主人)은 적성과 소질에 맞게 스스로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성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창조인(創造人)은 21세기 창의적 사고력과 태도를 가진 실력 있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고, 건강인(健康人)은 심신이 조화롭고 강인한 체력을 기른다는 의미이다. 가 교장 선생은 인천고의 자랑으로 첫째, 인천을 빛내는 실력 있고 유능한 동문들이 유난히 많고, 동문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인천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부 감찰요원을 지낸 1회 졸업생 이근호와 조흥은행 전무를 지낸 이용인을 필두로 첫 동맹휴학을 주도했던 이원옥 인천고 교장, 최진하 조선일보 기자, 김은호 화백, 정우 인천교육계 산증인, 이명호 시의회 의장, 원인상 경기도의원, 이을규 독립운동가 겸 감찰위원, 이정규 성균관대 총장, 김태성 인천실업계 대부, 권석신 제일은행장, 조광원 성공회 신부 및 독립운동가, 이승엽 남로당 2인자, 송재붕 경기도의원, 권정석 인천상공회의소 회장, 주원기 보이스카우트 사무총장, 정용복 경기도체육회장, 신태환 서울대총장 겸 경제기획원 장관, 강영흔 국민은행 상무, 함세덕 희곡작가, 임근수 서울대 신문학교수, 한상억 시인, 김재길 인천상의 사무국장, 송찬규 서울상의 부회장, 김선웅 야구 감독, 윤희창 철도청 기획관리실장, 유제국 경기은행장, 이운성 독립운동가, 이승윤 경제부총리, 신능순 경기도 교육감, 심정구.서정화 의원, 오광철 경인일보 편집국장, 안병태 해군 참모총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전국적인 인재 다수 배출, 끈끈한 동문 인맥 형성
가 교장선생은 인천고 출신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가 인천고와 인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 그러한 명예를 지켜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동문들의 자발적인 후원에 의해 야구부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동문회장학회가 활발히 움직여 해마다 100명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둘째, 야구 명문으로서 야구를 통해 인천고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에는 축구와 함께 야구도 맨 먼저 도입됐고, 특히 야구 경기는 1899년 인천고 출신 일본 학생들이 즐겼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인천고의 역사는 야구의 역사라고 할 만큼 인천고 야구는 한국야구근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야구가 인천고의 교기(校技)이자 인성교육의 산교육장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동문들이 한데 똘똘 뭉친 인고 야구는 단순한 야구 경기가 아니라 인천고의 혼과 민족정신이 담겨있다는 것. 인천고 야구는 조선신궁대회에서 2차례 우승한 것 비롯해 일본 갑자원 본선에 세차례나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해방이전 인고 야구는 민족 울분을 달래는 청량제였고,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폭제였다. 1950년대 인천고 야구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전국무대 3관왕을 휩쓸었고, 서동준, 김진현 등이 주축이 되어 중앙무대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이후 인천고는 35만인 1989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4년 대통령배를 품에 안았다. 드디어 인천고는 야구 명문답게 2005년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최우수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임을 입증했다. 이로써 인천고는 제2의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다. 100주년 기념 야구 우승, 90년대 들어 제2 전성기 구가
가 교장 선생은 인천고는 야구를 통해 동문 재학생이 하나로 뭉치고 일체감을 형성한다며 야구야말로 현대적 인고정신의 발로하고 강조했다. 셋째, 인천고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상업시절 인천 뿐 아니라 전국을 대표해 뛰어난 인재들을 수많이 배출했던 인천고가 1951년 인문계로 전환하고 라이벌 제물포고가 설립되면서 잠시 주춤거렸다는 것이다. 인천고는 80년대 개교 90주년부터 ‘실력 있는 명품 인고 만들기’ 기치를 내걸고 학교, 학생, 학부모, 동문들이 일체가 되어 실력배양에 전력을 쏟은 결과 90년대 다시 정상을 탈환했다고 한다. 인천고는 당시 제2의 도약을 꿈꾸며 ‘인고학생의 맹세’를 정해놓고 매일 다짐했다. “ ‘오늘 하루가 일생을 지배한다’는 진리를 마음깊이 새기고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도록 하며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1, 오늘도 나라와 부모님, 고마운 분들께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남을 돕겠습니다. 1, 오늘도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과 시간을 바치겠습니다.1, 오늘도 좋은 생각, 좋은 행동, 좋은 습관을 갖겠습니다.” 학력, 인격 향상에 역점을 둔 ‘인고인의 맹세’는 90년부터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1990년 서울대 13명과 인하대 수석합격, 91년 11명, 92년 17명, 94년 14명 등 해마다 일류대에 60명이상을 합격시켰다. 2006년에도 서울대 10명, 연. 고대 36명, 의. 한의대 6명, 경찰대 사관학교 8명 등 60명을 합격시켜, 진가를 발휘했다. 신태환,이승윤,심정구,서정화,한영수,이택돈,홍두표,최동호,홍건표,어윤덕 등 즐비 가 교장 선생은 “인천고의 상징나무인 밤나무는 번영, 창조를 의미하며 합리적인 정신과 리더십을 갖고 확실한 인생을 꿈꾸는 사람을 상징 한다”며 “인천고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리더십을 육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그루터기’와 전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과학반 등 25개 상설 동아리들의 활발한 활동이 인성교육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며 “논술 토론능력 강화, 독서평가, 과학인재 육성, 1인 1도우미 활동하기를 학교특성화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고 출신으로는 이상억 전하와이대 교수, 조동필 고려대 정경대학장, 노봉환 고려대 이공대학장, 윤능선 미래사회연구원회장, 김희배 전 인성상호저축은행 사장, 서기원 전 경인리스사장, 이정환 용인정신병원 이사장, 강태석 정 대생기업 사장, 이기상 인천시의회 의장, 최동호 전 KBS부사장, 손홍근 인천한의사회장, 유덕택 인천일보 회장, 최락구 변호사, 이인돈 전 서울여대학장, 이택돈 전 국회의원, 인천 교육위원회의장, 임규운 전 서울고법원장, 홍두표 전 KBS 사장, 김정만 전 서울동물원 동물부장, 이헌기 전 노동부장관, 김진춘 경기도 교육감, 나근형 인천시교육감, 남정우 전 인하대부총장, 서성옥 서울시교육위원회의장, 조건호 전 옹진군수, 백석기 협성대학총장, 한영수.조한천.하근수. 양문희 전 국회의원, 김규한 전 인천지검장, 추건희 인하대 대학원장, 안길원 무영건축회장겸 현인천고 총동창회장, 홍건표 부천시장, 전기철 애경유화 대표이사, 박봉식 중장, 박인규 인천 도시개발공사 사장, 어윤덕 인천시 기획관리실장, 김인규 인천시 자치행정국장, 이기문 인천변호사회장 등이 있다. “먼저 학교의 공원화 추진과 e-러닝시스템을 통해 최첨단 교육인프라를 구축하겠습니다. 그리고 미래 인천은 동북아 관문이자 중심도시가 될 것입니다. 이에 대비, 외국어 정보통신 교육 강화, 동문장학재단 설립, 우수학생 수월성 교육 강화, 중국 일본 미국 고교와 자매결연 및 교류를 통해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겠습니다.” 가 교장 선생이 밝힌 ‘인고 비전 2010’에는 비상하는 인천고의 꿈과 희망이 담겨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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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성(70회)님의 댓글
이곳엔 인사동이란 인천고를 사랑하는 싸이버모임이 있는데...李家들의 골동품이 무진장 매장되 있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