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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56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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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새얼아침대화 20주년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우공이산'의 정신, 인천여론 견인
*愚公移山 : 쉬지 않고 꾸준히 한가지 일을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한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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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쉼없는 작은 문화운동
시민 비판과 사랑 부응
지역사회 일익
‘새얼아침대화’가 1986년 4월8일 첫 대화를 나눈 이래 오늘로 꼭 20주 년을 맞았다.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오전 7시면 인천사람들은 한 자리에 모여 강연을 듣고 토론을 나눴다. 새얼아침대화에선 정치인을 제외한 문학, 사회, 경제 등 분야에서 권위 있는 사람들이 강연을 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단 한 차례로 거르지 않은 비결에 대해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말한다. ‘90세 먹은 노인 우공이 부단한 노력으로 산을 옮겼다’는 고사성어다. 지용택 이사장을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들어봤다.
▲새얼아침대화가 20주년 240회를 맞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우공이산의 정신이다. 처음 시작은 인천의 여론을 집산하고 인천의 구심점을 만드는데 조그마한 일익을 맡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우공은 나이 90에 산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못할 게 없었다. 지금은 200여 개가 넘지만 그 당시엔 인천에 무슨 ‘단체’라고 하면 새얼밖에 없었다. 문화운동은 작게 시작해 쌓아가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변함이 없어야 한다. 후배들은 나더러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하나 하나 쌓아가는 수밖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 5년, 10년안에 끝나선 의미가 없다. 새얼아침대화도 1회 때는 30명 정도가 모인 상황에서 정석빌딩 지하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 노력하자 인천시민들의 사랑도 쌓였고 지금까지 잘 오고 있다.
▲오는 동안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또 성과는 무엇인가.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늘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새얼아침대화 프로그램은 우리 재단의 의무이자 즐거움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성과라고 한다면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으레 그 날만은 회원들이 반드시 참석해 자리를 가득 메워준다는 점이다. 또 성과라면 새얼아침대화에서 나온 얘기가 인천의 여론이 돼 시 정부나 중앙 정부에 영향을 미쳐 지역사회 개선에 일익을 담당한 점도 있다면 있을까.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많은 것으로 아는데.
-20주년이 됐으니 호텔에서 케이크를 자르고 샴페인을 터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인천이 어디로 가고 어디에 서 있나’를 점검하기로 했다. 지난 2월엔 인천지역 인사 270명이 자비로 중국을 방문해 양산 심항을 보고 소주에서는 경제특구를 봤다. 지난 3월에는 4당 대표들을 초청해 인천관심사를 질문했다. 인천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인천에 대해 공부를 안 해와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5월엔 버스 10대를 대동해 평택과 부산항을 보고 통영서 1박한 뒤 광양항을 볼 예정이다. 인천항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인천항은 민간투자인데 다른 곳은 정부가 지원해주고 있다.
▲새얼아침대화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반시민들 보다는 각계 고위층 인사들만을 위한 행사라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새얼아침대화엔 우선적으로 회원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 회원이 아닐 경우 하루 전에 얘기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장소상 한꺼번에 많이 모실 수 없는 이유도 있긴 하다. 하지만 새얼아침대화는 인천시민 모두에게 열린 공간임은 틀림없다.
▲새얼아침대화는 결국 인천을 사랑하는 인천사람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자리다. 그럼 이제 인천으로 얘기를 확장해 보자. 현 상황, 우리 나라 전체를 놓고 볼 때 인천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할 수 있는가.
-인천은 좋은 도시였으나 해방 뒤 3.8선으로 막히는 등 고립됐다. 그러나 이제 황해와 중국이 살아나고 있다. 대미 무역보다 대중 무역 비중이 훨씬 더 커지고 있다. 북한 개성이 열렸으며 신의주도 열릴 것이다. 이는 모두 인천으로 통한다. 어떤 사람은 인천을 관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체성이 없다는 소리와 같은 말이다. 관문은 중국에선 오랑케와의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천은 단순한 관문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핵심적인 중심항구 도시이다.
▲흔히 인천에 대한 정체성 얘기를 많이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천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해불양수(海不讓水)다. 바다는 어떤 물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노력하는 만큼 가져가는 도시란 뜻과 일맥상통한다. 대구 목포 전주 광주는 안되지만 인천은 문호를 열고 기회를 주는 도시다. 나는 (인천토박이들이)인천 출생을 자랑할 수는 있어도 권리, 특권을 주장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인천사람은 인천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예를 들면 강동석 장관이 본적을 인천으로 옮겼는데 그런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본다.
▲현재 인천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는가.
-지금은 만족하지 않지만 앞으로 좋은 도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인천은 중심에 있으면서도 중심 역할을 못 했다. 중국이 일어나면 한반도 중심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인천이 만들 것이다. 황해가 살아 일어서고 인천이 날아오르는 것이다.
▲지 이사장께서 즐겨 쓰시는 황해란 말은 중국의 시각이라는 지적이 있다.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의미 같은데.
-황해는 ‘공해(公海)’를 말한다. 중국도 한국바다도 아닌 것이다. 중국이 명나라 초 때 인구가 1억 이었다. 그 이전엔 8천 명 정도를 유지하다가 전쟁 한 번 치르면 5천으로 줄곤 했다. 그 인구가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살았다. 따라서 바다는 내다볼 겨를이 없었고 당시 조선과 일본만이 바다를 경영했다.
▲황해란 얘기가 나왔으니 새얼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잡지 ‘황해문화’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황해문화가 지역색이 없고 중앙지향적이란 지적이 있는데.
-인천에서만 한다면 그것은 우물안 개구리 즉, ‘정중와’가 될 수 있다. 얼마전 인천일보에 황해문화를 비판하는 글이 기고로 실린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반론을 쓰겠다고 했지만 내가 비판을 받아서 겸허히 수용하자며 말렸다. 무엇이건 인천의 것이 잘 되려면 전국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새얼문화재단이 전국화한 것은 황해문화, 백일장, 아침대화 세 개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지역의 비판은 충분히 이해하고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인천의 것이 전국화돼야 하고 인천에 한정하거나 집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천의 것이 전국화되고, 세계화될 때 비로소 인천도 빛이 나는 것이다.
▲이른 얘기이긴 하지만 후계자에 대해 여쭤 보겠다. 후계자가 없어 걱정이란 얘기가 있는데.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지금 얘기할 순 없지만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마음은 있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은 많다. 또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더 잘한다’는 말도 있다. 내가 잘하는 것 같아도 내 곁에서 함께 일하며 비판하고 보충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함께 해온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내가 더 나이를 먹으면 물러나야 할 것이고 아마도 후임자는 더 잘 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새얼문화재단 회원들이나 인천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새얼 회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새얼문화재단은 없었을 것이다. 새얼 회원들은 곧 인천시민들이다. 언제나 감사하며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앞으로도 뜨거운 사랑과 매서운 비판, 즉 새얼문화재단에 대한 애정을 계속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김진국기자 (블로그)freebird
종이신문정보 : 20060412일자 1판 9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6-04-11 오후 7: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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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헌님의 댓글
매월 두째주 화요일이 아닌.. 수요일 입니다... 오늘 갔어야 했는데, 참석을 못했습니다. 성용이를 만나기로 해 놓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