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2월의 풍경은 잿빛이고 사람들은 내내 우울한 얼굴로 봄을 기다리게 됩니다 잿빛 유리창 너머에 희망은 아직 흐릿하고 봄 노래는 아직 들려 오질 않습니다 2월에 마지막날 잿빛 장막을 걷어내려는 듯 눈이 내렸고 3월이 시작되는 아침에도 눈은 야속하게 흩날렸습니다 사방에 눈 덮인 경치를 바라보며 봄이 열리는 3월 첫날에 눈이라니 이것이야말로 봄이 더디 오고 백설이 내려 꽃처럼 피어있다는 춘설(春雪)이 아닌가? 하고 혼자 중얼거려봤습니다 아참 오늘은 3.1절이네 하며 처마 밑 깃대에 태극기를 꽂고 뒤돌아서니 눈보라 자욱한 들판에는 눈송이송이마다 그 날에 대한독립만세라는 함성인 듯 내렸습니다 그래도 3월인데 봄인가 싶어 마당에 내려가면 또 찬바람이 불고....몇 번 망설이다가 오후에 집 근처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20분쯤 올라갔을까. 골짜기 겨울나무들은 가지에 쌓인 눈들을 조심스럽게 털어 내고있는 것이 보였고 나는 역사라는 무거운 명제를 생각하며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해 한 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그리고 독도문제등.... "일본은 인류양심에 맞게 행동해야" 20분쯤 더 올라 농다치 고개에서(해발 600미터쯤) 다시 왼쪽 능선을 타고 목적지인 노루목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능선의 매서운 칼바람은 얼굴을 스치고 추위에 얼얼한 입가에선 기어코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배워 왔고, 어른이 되어서도 읽었던 여러 가지 역사에 관한 책들이며 살아오면서 체험했던 그 역사 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우리들 또한 인류의 역사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기나긴 투쟁의 여정이며 역사란 진보하는 것이다 라는 보편적 의견에 동의하리라고 믿습니다 어떤 이는 인류역사의 원동력을 인간의 자유의지로, 어떤 이는 경제적 토대로, 어떤 이는 과학의 발달로....등
그러나 어쨌든 역사하면 나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을 쓴 철학자 칼 포퍼(1902-1994. 영국)의 글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라 말할 때에 그것은 학교에서 배운 정치권력의 역사이고 그 정치권력의 역사란 국제적 범죄와 집단학살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역사책이란 장군들과 독재자들과 왕의 감독아래 역사학 교수들이 쓴 것에 지니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란 없다 오직 있는 것은 한 인간 한 인간의 삶의 모든 양상에 관한 무수한 역사들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 한사람 한사람의 희망과 투쟁 그리고 수난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노루목 반환점 에서 돌아 능선 길을 내려오니 매서운 찬바람은 여전히 얼굴을 때렸으며 발아래 멀리 마을에선 그 날의 비명과 아우성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번 중국의 한나라 때 사기열전을 쓴 사마천의 (BC145-BC86?) 글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의로운 자가 망하고 불의한 자가 흥하는 현실 세계에서 하늘의 도는 과연 옳은가 (天道是耶非耶 천도시야비야)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건 차가운 얼음장 밑을 흐르는 역사의 비명소릴 듣는 것이다
그런 역사의 절망 속에서도 봄은 동백보다 붉은 생명의 꽃으로 피어나고
우린 이제 완성될 수 없는 혁명 같은 건 잠시 내려두고
꽃에 취하여 모자라면 술에 취하여 봄이 순정처럼 피어나는 매화 만발한 남도로 떠나보자
저마다 냉이 꽃 가슴 봄날 가고 꽃잎 하나 둘 떨어질 때 어떤 꽃잎 하나 말하길 역사는 결코 의롭지 않다
아마 이건 한번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히지 않는다는 이 세상 역사에 대한 나의 냉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월초의 함성도 눈보라도 갔고 벌써 3월의 중순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기의 따듯함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으며 작은 새들은 여기저기 봄 노래로 지저귀고 있습니다 경운기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누군가가 밭을 갈고 있습니다 괜히 덩달아서 밭을 한바퀴 돌아보다 앗 언제 이렇게 원추리 싹이 올라왔지 구절초와 목단도. 오 땅에서 솟아오르는 저 생명의 기쁨이여. 나무도 한번 둘러보아야지 일일이 나무 앞에 서서 인사를 나눕니다. 겨울 잘들 지냈지 백당나무와 설중매가 싹을 튀우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허 목련과 꽃 사과..등은 물이 오르기 전에 가지치기를 해줘야겠군 삽을 가져다가 밭에 푹 눌러보니 삽이 쑥 들어갑니다 음...빠른 시일 내에 밭에 덤불들을 모아 태워야겠고 제일먼저 작년 초겨울에 땅속에 묻어 두었던 튜립을 파내어 꽃밭을 만들어야지 봄은 행복하게 다가올 동경이며 우리들 삶 속에 따듯한 위로입니다
| ( 위 글은 66회 윤 광규 선배님이 야사모 :야생화를 사랑하는 모임 ; 에 올린 글를 퍼 왔읍니다. |
댓글목록 0
유재준님의 댓글
좋은 내용의 글 읽을 수 있어서 감사 합니다 윤 선배님 최 한규 동문님 두 분 모두에게..자주 게재 해주시죠
최한규님의 댓글
유 재준 선배님 감사 합니다! (꾸벅 꾸벅). 좋은 하루 되세요!!1!
이순근님의 댓글
한규군 오랜만일세, 요즈음 무얼 하시는가 도통 보이질 않으니. 시산제에서나 얼굴봄세. 활짝핀 목련앞에서 포즈좀 함께 잡아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