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웃 동산동문]인컴창작집 찬조원고
작성자 : 이성현
작성일 : 2006.03.24 10:44
조회수 : 963
본문
3월 24일 아침 KBS 2 "행복한 아침 정한용,왕영은 입니다"에 방송됨
동산고 김효식님 원고로 동산고동창회 홍보부장을 맡고있습니다.
=======================================================
원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제목 : 숯 공장 체험기
아침부터 수선을 떨었다.
몇 번의 약속을 번복한 끝에 오늘 숯가마 공장체험장에 가는 날이었다.
동네 할머니가 당뇨병으로 인하여 발 저림 현상이 심한데, 숯가마가 효험이 있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으신 모양이다.
승용차로 이동하기에는 자세가 불편하여 발 저림이 더 심할까봐 장모님한테 여러 번 부탁을 한 것 같다.
내차가 승합차라 좌석이 넓고 편해 내가 바쁘지 않는 날을 아마 기다리신 것 같다.
나도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가 간신히 시간을 내었다.
동네 아주머니 몇 분과 집사람도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갈곳이 원주 치악산 산기슭에 있는 곳이라는 막연한 정보만 가지고 그곳을 향해 출발하였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가다가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고 원주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원주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 요금을 계산하면서 그곳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그곳이 많이 알려진 덕택인지 쉽게 정보를 알아냈다.
"치악산 이정표 된 곳으로 쭉 가세요" 그러면 어느 지점인가에 "제일 숯가마 공장" 이라는 안내판이 나올 겁니다...이것이 안내원이 가르쳐준 것의 전부다.
그러나 생각보다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아주 작은 푯말이 그 이정표의 전부였으니... ㅠㅠㅠ
어쨌든 비포장도로를 따라 언덕길로 올라와 이곳 저곳을 헤메다 보니 산기슭에 폐광촌 같은 허물어 져 가는 듯한 숯 공장이 보였다.
와~~~실망 그 자체였다.
이런 곳을 오려고 몇 시간을 차로 왔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기막혔다.
그러나 소문이 났다더니, 관광버스 몇 대가 정차해 있었고 자가용도 여기저기 꽤 많이 널려져 있었다.
산바람이 싸늘한 허허벌판에 아줌마들은 때를 지어 사우나 복 비시무리한 가운과 수건을 머리와 얼굴을 감싸고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시설이 없었다.
숯 공장 터 그대로와... 포장된 숯과 음식을 파는 매점...그리고 유일한 투자는 나무로 아무렇게 만들어진 화장실 몇 개가 그곳의 시설의 전부였다. 그러나 입실 가격은 1인당 5,000원...
그러나 나는 싫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곳을 가고 싶어했던 그 할머니가 미안해 할까봐...
우리 일행은 내 차안에서 준비된 츄리닝으로 갈아입었다.
집사람은 내 츄리닝도 가져왔으니 갈아입고 같이 들어가자고 하였다.
나는 단호히 거절하였다. 창피하게시리...
나를 뺀 일행은 황토로 지은 허술한 움막이 있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나는 차안에서 길게 누웠다. 30년 만에 와본 치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높았다.
옛날 친구들과 이곳에 왔을 때 추억을 되새겨보았다.
벌써 30년이 흘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팔팔, 발랄 그 자체였던 우리 친구들은 50대로 접어들어 어느 듯 머리는 하얀 서리 가 내리고, 자식 뒷바라지에 허리 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들이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찍찍되며 하나 둘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같이 따라갔던 여대생들은 그때 우리보다 더 큰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추억을 더듬는것도 잠시 애엄마가 이곳까지 와서 그냥 가면 억울하지 않냐고 나를 설득했다.
그 말도 맞는 것 같아 창피를 무릅쓰고 그곳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나는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애 엄마가 준비한 대형 타올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움막으로 들어갔다.
2~3평정도 밖에 안되는 움막에는 할머니 및 아줌마 60~70명 정도가 쭈글릴 틈도 없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애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확보해준 조그만 공간에 최대한 움크리고 앉았다.
70여명 되는 아줌마들은 팔도 사투리를 다 쓰면서 왁자지껄 거렸다.
이중에 남자는 몇 명인가가 나의 초미의 관심사였으니 머리는 하얗게 비어있었다.
이렇게 많은 여자사이에 나 혼자 낀 적도 없지만 도무지 적응도 안되고 쑥스러움에 내 머리는 바닥에 닿아 있었다.
후끈후끈한 열기가 등에 와 닿을 때는 몸에 있는 이상한 균들이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숯불의 효험에 의해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 할 것 같은 공상도 했다.
땀이 온통 범벅이 되었을 때, 우리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온 아줌마들의 공통점은 한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가 힘드니깐...
가능한 많은 시간 버티는데...내가 힘들어하니깐 배려 차원으로 나온 것이다.
땀이 식으면서 감기 걱정이 되었다.
물 한 컵 마시고 다시 쑤시고(?) 들어갔다.
두 번째는 약간의 여유가 생겨 주위도 살피면서 애엄마 뒤를 쫒아 들어갔다.
남자는 서넛명 이였는데 모두 할아버지였고, 내가 제일 영계(?)였다.
어느 입심 좋은 아줌마가 영계 들어오네 하고 너스레를 떠니깐 모두 와~~~ 웃는다.(이그 쪽 팔려...)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동네 아줌마가 잡아준 한구석에 앉았다.
대게 이렇게 사람이 모인 곳에는 이곳에 대한 무용담이 화두에 올랐다.
어떤 말기 암 환자가 20일 이곳에 와서 숯가마에 불을 몸을 지지고 암이 많이 낫아 건강을 찾아 간다는 얘기를 어떤 아줌마가 하니깐,,, 숯은 어디에 좋고 뭐가 어떻고 끝없는 숯 예찬론이 뒤를 이었다.
그때 나는 디지털 카메라 가져왔으면 특종 한 컷 할 텐데 생각 ...돈벼락을 맞은 숯 공장 사장의 인상이 어디가 좋은가 꼭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 우리 야산에 참나무가 많은지 확인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 현실적인 생각으로 아까 와는 달리 머리에 꽉 차있었다.
우리 일행은 두 번의 고행을 끝난 후 차에 가서 밥을 먹었다.
집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고 귤과 오이 몇 개를 손에 지고 움막으로 향했다.
나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아주 자연스럽게 타올로 몸을 감싸고 동네 아줌마가 정해준 곳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내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이제는 쭈그리지도 않고 양반자세로 앉고, 내가 떠들지는 않았지만 아줌마들의 수다도 같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그곳에 동화되고 있었다.
여자들이 한쪽으로는 부럽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억세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느 작가는 여자 나이 40이 넘으면 무법자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동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여자라는 이유로 제한이 많았는데, 나이가 먹으면서 인간 본능 그 자체로 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니 그들은 이렇게 조그만 움막에 때지어 쭈글리고 앉아 그 동안 살았던 한에 대해 아무 사심없이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에 남자들이 이런 곳에 떼지어 쭈그리고 있다고 상상을 해 볼 때...우리는 쉽게 정답을 얻을 것 같았다.
그들은 서로 엉키고 설키며 입심 좋게 살아가는 얘기를 화제로 삼지만 ... 영악한 나는 경제적 손익에 대해 얼마나 머리를 굴렸는지 머리가 다 아프더라...
어째든 평일에 올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는 여자가 부럽고, 단순한 화두로 재미있어 하는 여자들의 순수함이 부럽고...이런 곳의 조그마한 것도 행복으로 느끼는 여자가 부러웠다.
나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가 된 후 그곳을 나왔다.
치악산의 바람이 내 몸을 휘어잡았다.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올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잠시나마 희한한 경험을 체험한 오늘이 무척 상쾌했다.
동산고 김효식님 원고로 동산고동창회 홍보부장을 맡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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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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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숯 공장 체험기
아침부터 수선을 떨었다.
몇 번의 약속을 번복한 끝에 오늘 숯가마 공장체험장에 가는 날이었다.
동네 할머니가 당뇨병으로 인하여 발 저림 현상이 심한데, 숯가마가 효험이 있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으신 모양이다.
승용차로 이동하기에는 자세가 불편하여 발 저림이 더 심할까봐 장모님한테 여러 번 부탁을 한 것 같다.
내차가 승합차라 좌석이 넓고 편해 내가 바쁘지 않는 날을 아마 기다리신 것 같다.
나도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가 간신히 시간을 내었다.
동네 아주머니 몇 분과 집사람도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갈곳이 원주 치악산 산기슭에 있는 곳이라는 막연한 정보만 가지고 그곳을 향해 출발하였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가다가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고 원주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원주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 요금을 계산하면서 그곳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그곳이 많이 알려진 덕택인지 쉽게 정보를 알아냈다.
"치악산 이정표 된 곳으로 쭉 가세요" 그러면 어느 지점인가에 "제일 숯가마 공장" 이라는 안내판이 나올 겁니다...이것이 안내원이 가르쳐준 것의 전부다.
그러나 생각보다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아주 작은 푯말이 그 이정표의 전부였으니... ㅠㅠㅠ
어쨌든 비포장도로를 따라 언덕길로 올라와 이곳 저곳을 헤메다 보니 산기슭에 폐광촌 같은 허물어 져 가는 듯한 숯 공장이 보였다.
와~~~실망 그 자체였다.
이런 곳을 오려고 몇 시간을 차로 왔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기막혔다.
그러나 소문이 났다더니, 관광버스 몇 대가 정차해 있었고 자가용도 여기저기 꽤 많이 널려져 있었다.
산바람이 싸늘한 허허벌판에 아줌마들은 때를 지어 사우나 복 비시무리한 가운과 수건을 머리와 얼굴을 감싸고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시설이 없었다.
숯 공장 터 그대로와... 포장된 숯과 음식을 파는 매점...그리고 유일한 투자는 나무로 아무렇게 만들어진 화장실 몇 개가 그곳의 시설의 전부였다. 그러나 입실 가격은 1인당 5,000원...
그러나 나는 싫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곳을 가고 싶어했던 그 할머니가 미안해 할까봐...
우리 일행은 내 차안에서 준비된 츄리닝으로 갈아입었다.
집사람은 내 츄리닝도 가져왔으니 갈아입고 같이 들어가자고 하였다.
나는 단호히 거절하였다. 창피하게시리...
나를 뺀 일행은 황토로 지은 허술한 움막이 있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나는 차안에서 길게 누웠다. 30년 만에 와본 치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높았다.
옛날 친구들과 이곳에 왔을 때 추억을 되새겨보았다.
벌써 30년이 흘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팔팔, 발랄 그 자체였던 우리 친구들은 50대로 접어들어 어느 듯 머리는 하얀 서리 가 내리고, 자식 뒷바라지에 허리 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들이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찍찍되며 하나 둘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같이 따라갔던 여대생들은 그때 우리보다 더 큰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추억을 더듬는것도 잠시 애엄마가 이곳까지 와서 그냥 가면 억울하지 않냐고 나를 설득했다.
그 말도 맞는 것 같아 창피를 무릅쓰고 그곳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나는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애 엄마가 준비한 대형 타올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움막으로 들어갔다.
2~3평정도 밖에 안되는 움막에는 할머니 및 아줌마 60~70명 정도가 쭈글릴 틈도 없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애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확보해준 조그만 공간에 최대한 움크리고 앉았다.
70여명 되는 아줌마들은 팔도 사투리를 다 쓰면서 왁자지껄 거렸다.
이중에 남자는 몇 명인가가 나의 초미의 관심사였으니 머리는 하얗게 비어있었다.
이렇게 많은 여자사이에 나 혼자 낀 적도 없지만 도무지 적응도 안되고 쑥스러움에 내 머리는 바닥에 닿아 있었다.
후끈후끈한 열기가 등에 와 닿을 때는 몸에 있는 이상한 균들이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숯불의 효험에 의해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 할 것 같은 공상도 했다.
땀이 온통 범벅이 되었을 때, 우리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온 아줌마들의 공통점은 한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가 힘드니깐...
가능한 많은 시간 버티는데...내가 힘들어하니깐 배려 차원으로 나온 것이다.
땀이 식으면서 감기 걱정이 되었다.
물 한 컵 마시고 다시 쑤시고(?) 들어갔다.
두 번째는 약간의 여유가 생겨 주위도 살피면서 애엄마 뒤를 쫒아 들어갔다.
남자는 서넛명 이였는데 모두 할아버지였고, 내가 제일 영계(?)였다.
어느 입심 좋은 아줌마가 영계 들어오네 하고 너스레를 떠니깐 모두 와~~~ 웃는다.(이그 쪽 팔려...)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동네 아줌마가 잡아준 한구석에 앉았다.
대게 이렇게 사람이 모인 곳에는 이곳에 대한 무용담이 화두에 올랐다.
어떤 말기 암 환자가 20일 이곳에 와서 숯가마에 불을 몸을 지지고 암이 많이 낫아 건강을 찾아 간다는 얘기를 어떤 아줌마가 하니깐,,, 숯은 어디에 좋고 뭐가 어떻고 끝없는 숯 예찬론이 뒤를 이었다.
그때 나는 디지털 카메라 가져왔으면 특종 한 컷 할 텐데 생각 ...돈벼락을 맞은 숯 공장 사장의 인상이 어디가 좋은가 꼭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 우리 야산에 참나무가 많은지 확인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 현실적인 생각으로 아까 와는 달리 머리에 꽉 차있었다.
우리 일행은 두 번의 고행을 끝난 후 차에 가서 밥을 먹었다.
집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고 귤과 오이 몇 개를 손에 지고 움막으로 향했다.
나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아주 자연스럽게 타올로 몸을 감싸고 동네 아줌마가 정해준 곳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내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이제는 쭈그리지도 않고 양반자세로 앉고, 내가 떠들지는 않았지만 아줌마들의 수다도 같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그곳에 동화되고 있었다.
여자들이 한쪽으로는 부럽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억세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느 작가는 여자 나이 40이 넘으면 무법자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동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여자라는 이유로 제한이 많았는데, 나이가 먹으면서 인간 본능 그 자체로 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니 그들은 이렇게 조그만 움막에 때지어 쭈글리고 앉아 그 동안 살았던 한에 대해 아무 사심없이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에 남자들이 이런 곳에 떼지어 쭈그리고 있다고 상상을 해 볼 때...우리는 쉽게 정답을 얻을 것 같았다.
그들은 서로 엉키고 설키며 입심 좋게 살아가는 얘기를 화제로 삼지만 ... 영악한 나는 경제적 손익에 대해 얼마나 머리를 굴렸는지 머리가 다 아프더라...
어째든 평일에 올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는 여자가 부럽고, 단순한 화두로 재미있어 하는 여자들의 순수함이 부럽고...이런 곳의 조그마한 것도 행복으로 느끼는 여자가 부러웠다.
나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가 된 후 그곳을 나왔다.
치악산의 바람이 내 몸을 휘어잡았다.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올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잠시나마 희한한 경험을 체험한 오늘이 무척 상쾌했다.
댓글목록 0
이성현님의 댓글
부상으로 세탁기 한 대를 받는다하오니 그 이상으로 턱을 쏴야하는 것이 진리라고 했습니다.축하멘트:011-750-3488
안남헌님의 댓글
아까 기사대기실 가니까 얼핏 왕영은이 보이던데.... 일찍 알았다면 보았을것을... 아쉽네요
이환성님의 댓글
KBS에 69선배한분 계신데...지금은 이름생각안나지만...螢님이란 愛칭만이 날 울리네...
최병수님의 댓글
뾰식이는 야구중계도 안 하고 한증막이나 다니고 세월 좋네요. 제수씨가 벌써 그런 곳을 좋아 하시면 어쩌나요? 부상으로 받은 거로 제수씨께 몸 보신 좀 해 드려요...ㅋㅋㅋ...
동산22 김효식님의 댓글
병수선배님~~두 性님,남현후배 감사합니다.어째다 우리애가 올린게 매스컴을 탔네요.한잔 이거 아니래도 못삽니까??? 언제 한잔 하자구요,공식 행사때만 만나서 항상 시간이 쫒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