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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불패론’ 유감 /조우성(65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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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불패론’ 유감
지난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필자는 마침 일본의 '눈과 온천의 고장'인 니가타 현 유자와(湯澤)에 있었다. 거기서 그들이 '토리노'에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줄곧 '노메달'이었다. 대회 막판에 아라카와 시즈카가 금메달을 따내자 신문들은 저마다 '피겨스케이팅 동양인 첫 금메달'이라는 제목으로 호외까지 냈고, TV는 우승 장면을 하루 종일 재방했었다.
두 차례의 동계 올림픽을 치른 일본은 72년 삿포로에서 금메달 1개, 98년 나가노에서 금메달 8개를 거뒀지만, 이번에는 10위권은 고사하고 '한국'의 턱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락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평소 한국을 얕잡아 보며 '야스쿠니 신사'를 충군애국(忠君愛國)하는 일본 정신의 본향이라고 떠받드는 극우들은 자존심께나 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맥락에서였는지, 어떤지 WBC 한중일 예선전을 앞두고 일본의 야구 간판스타 '이치로'가 느닷없이 '30년 불패'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웃나라인 한국과 중국에 뼈아픈 과거사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섣부른 언설에 대해 박찬호 선수는 '그렇게 하려면 일본 자신이 30년간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점잖게 되받아 넘겼다.
결과는 '이치로'의 망신으로 끝났다. 승리를 예상했던지 이례적으로 왕세자 부부까지 관전한 한일전에서 이치로 자신은 9회 말 플라이를 날려 스타일을 구긴 반면, 한국 선수들은 발군의 실력으로 화려한 역전극을 펼쳤다. 떨떠름한 표정의 왕정치 감독이나 썰물 빠지듯 일시에 도쿄 돔을 비운 관중들은 심기가 불편한 듯싶었다.
토리노에서는 그랬다 치고, 홈그라운드인 도쿄 돔에서 야구까지 후진 한국에 졌다는 것을 그들은 큰 불명예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치로'는 또다시 “13타수 3안타에 그친 치욕을 반드시 갚겠다”며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쏟아냈고, “30년, 어떻게 된 거야. 분하다”는 통분파 팬들이 속출하는 등 일본 열도가 충격에 싸였다는 소식이다.
그런 차에 또 이변이 일어났다. 아라카와 스즈카가 '동양인' 최초로 피겨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법석을 떤 게 며칠 전인데, 한국의 16세 여고생 김연아가 한국 피겨 사상 최초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우승 후보 아사다를 꺾고 당당히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이치로' 식으로 말한다면, 일본은 내리 '3연패의 치욕'을 당한 셈이었다.
그 후 13일, 일본으로서는 끝내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벌어졌다. WBC에서 일본팀은 미국 심판의 횡포로 어이없게 승리를 도둑맞은 반면, 다음날 한국은 야구 종주국 미국을 7대3으로 눌러 세계를 경악케 했다. 그것도 일본전을 겨냥해 에이스 박찬호 선수를 아예 등판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30년 불패 선언'은 이쯤에서 어쭙잖은 '해프닝'이 되고 만 느낌이다. '공은 둥글다'는 말처럼 모든 승패가 끝내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임에도 일취월장, 괄목상대하는 중진국 한국과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을 아직도 식민지배적 우월감에 젖어 바라보면서 스포츠에서의 일패(一敗), 일패를 '치욕'으로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일본의 치욕'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부터라도 일본은 '탈아(脫亞) 콤플렉스'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 땅덩이를 끌고 유럽으로 '국가 이전'을 하지 않는 한 아시아 국가로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면서 같은 입으로 '30년 불패'를 운운하고 그에 그 국민들이 동조한다면, 일본은 스포츠, 이웃도 다 잃는 '아시아의 고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 우 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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