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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야구 한세기 목차
본문
인천야구 한 세기
목차
제1부 플레이볼 인천야구
제1장 개항과 야구 도입기
야구, 어디서 왔나
일본의 야구 도입
우리나라 야구의 전래
야구의 전래와 인천 지역사
인천영어야학교 학생들과 야구
화제의 야구 일기장
최영업 선생이 전하는 초창기 인천야구
인천상업전수, 인천야구의 견인차
인천에 연식야구 ‘찜프’도 유행
인천야구의 매니저 이길용
제2장 웃터골 시대와 한용단
한인야구단 한용단의 탄생
한용단 야구부의 활약
한용단의 홈 그라운드 웃터골
한용단 이렇게 본다
1921년 인천의 야구 활동
전인천야구대회, 결승전서 시합 중지
제3장 고려야구단과 유소년 야구
인천공립보통학교와 영화보통학교 야구부
인천공립보통 야구팀, 연전연승
인보군, 전조선야구대회 소학단서 우승
시대일보 인천지국 주최, 소년 야구전
동아일보 주최 제1회 전인천소년야구대회 열려
제2회 전인천소년야구대회
전인천유년야구대회
영화보교 전국대회 진출
인천야구의 메카 웃터골 운동장
제4장 웃터골 시대와 인천야구
전인천야구대회
1924도 인천야구 현황
1925년 인천야구 활동
1926년 인천야구 활동
1927년 인천야구 활동
1928년 인천야구 활동
1929년 인천야구 활동
제5장 1930년대 이후 인천의 야구 활동
철도사상 최초, 야구 차표 발행
인천 팀, 해주원정 가 연승
인천부, 인천공설운동장 이전
야구 도구 어떻게 만들어 썼나
제6장 인천상업 전성시대
학생야구의 강자 인상의 활약
경룡추계야구대회
인상, 경성의학 팀과 대결
조선신궁봉납중등학교야구대회
인천에서의 야구 시합
한국인 선수 장영식 출전
인천부민들의 환호
왕년의 인상 투수 산구 씨 내인
조선신궁봉납중등학교야구대회
인상 창립 기념전
제17회 전조선중등학교야구대회
제18회 전조선중등학교야구대회
인상, 제24회 갑자원대회 출전
제14회 조선신궁봉납중등학교야구대회
제19회 전조선중등학교야구대회
결승전, 1회 1점 선취로 승리 굳혀
연전연승한 패자 인상
숙원이 쌓인 일전
인천상업, 투혼도 날아가
1939년 조선신궁봉납중등학교야구대회
제20회 전조선중등학교야구대회
1940년 조선신궁봉납중등학교야구대회
전조선중등학교야구대회
전조선야구대회와 전국중등학교 우승야구대회 중지
인상, 마지막 신궁대회 불참
갑자원대회, 총합경기에 흡수돼
제2부 인천야구재건기
제1장 모든 것이 원점으로부터
조선야구협회 출범
해방과 인천야구
야구에 대한 열망으로 급조된 ‘전인천군’
인천에서 열린 최초의 야구경기
인천야구의 숨은 공헌자 정용복
야구용구는 미군으로부터
인천야구 중흥 기수 유완식
동산야구부 창단
코끼리 박현덕 감독
인천공업중학교 창단
인천상업의 재창단
인천고 야구의 대부(代父) 김선웅
인천중학 창단
제2장 해방공간의 인천야구
해방과 야구
해방 후 최초 공식 야구대회
월계기쟁탈 전국도시대항야구대회
조미(朝美)친선야구대회
청룡기쟁탈 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제1회 청룡기대회 전(前) 이야기
인천상업, 동산, 인천공업 모두 1회전 통과
해방 후 첫 노히트 노런 제물이 된 인천상업
동산의 8강 진출, 그리고 학생야구 최초의 라디오중계
박현식-장태영의 兩脚시대 시작
황금사자기쟁탈 전국지구대표 중등야구쟁패전
인천세의 장벽, 장태영
제3부 고교야구 전국시대
제1장 5.16과 인천야구
5.16으로 인한 대한야구협회 개편
동산고, 우승인가 준우승인가
동산고 제16회 청룡기 준우승
禍不斷行, 동산고 김용우의 사망
김용우 영전에 바친 쌍룡기 대회 우승
재일동포팀을 이긴 동산고
동산고의 히어로 최관수
제15회 황금사자기 동산고 4강
동산고, 전국4대도시초청 고교야구대회 및 전국체전 우승
제2장 성인야구의 활기
인천시청팀 창단
인천고, 동산고 저력 상실
제3의 야구팀 동인천고 창단
실업야구에서의 인천 야구인
동인천고의 약진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국 우승
성광고와 노다지
작은 우승이라도 ‘우승은 우승’
제20회 청룡기대회와 계속되는 부진
제19회 황금사자기 4강 진출
경기지구고교야구 선발팀 일본원정
동산고의 힘겨운 부활
동산고 제21회 청룡기대회 우승
동산고의 준우승 행진
반짝 하고 사라진 선인고
1967년 인천의 명암
제1회 대통령배 야구대회
1.21사태로 시작한 1968년
인천고 제49회 전국체전 준우승
인천고교야구 최악의 기록실
제3장 춘추전국시대의 고교야구
연식야구협회 통폐합
계속되는 인천의 침체기
제1회 봉황기대회 개막
1972년 충암고의 등장
최관수 감독의 군산상고 돌풍
발군의 경북세
한국, 세계야구연맹 가입
영남세에 묻힌 인천의 아성
인천고, 목마른 우승갈증 풀다
인천팀의 초반탈락
회생하는 인천고
인천고의 구세주 임호균
고교야구, 대만과 첫 교류
오명으로 얼룩진 제30회 청룡기대회 예선
혈전 뒤에 찾아온 슬럼프
인천고, 최초의 실내연습장 건립
1976년 고교야구 다시 전국 군웅할거
계속되는 1회전 탈락
인호봉의 40이닝 무실점 행진
동산고, 제32회 청룡기 준우승
인천고의 준우승 계승
1978년, 인천야구 재기원년인가?
제59회 전국체전에서 인천고 우승
1979년, 인천고 4번의 준우승
79 준우승 학번의 대학 진학 에피소드
1980년 고교야구는 다시 서울세로
인천고 제2회 대붕기대회 준우승
제4부 인천야구, 다시 날아오르다
제1장 구도인천에서 준우승 전문으로
준우승 전문 인천의 오명
전인천고가 대신한 우승, 제3회 야구대제전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제물포고 야구부 창단
1983년 제37회 황금사자기대회 인천고 준결승 좌절
제물포고, 제39회 청룡기대회 결승진출
선동렬 파동으로 시작한 1985년의 한국야구
인천고 제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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