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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괴한 특별지자체 논리/ 조우성(시인)(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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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5. 11.21)
해괴한 특별지자체 논리
/ 조우성(시인)
인천은행(仁川銀行) 설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1967년 3월이었다. 인천상공회의소 의원들로 구성된 추진위원들은 은행 설립의 배경을 밝힌 취지문을 내외에 공표하는 한편, 당시로서는 거액인 1억 5천만 원의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말할 것도 없이 설립 취지는 ‘지역 자본을 집대성하여 지역 사회 개발과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금의 구성과 수익성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설립 추진을 ‘당분간 유보’해 2년여 간의 공백기를 보낸 후인 1969년 7월에야 발기인 총회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영업 구역을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하고자 은행명을 ‘경기은행(京畿銀行)’으로 바꿔 설립 인가 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금통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원에서도 극비리에 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어 ‘경기은행’이란 명칭을 인천 쪽에서 쓸 수 없게 됐다는 이유에서였다. 금통위 당국은 은행명을 ‘인천은행’으로 바꾼다면 허가해 줄 수 있다는 언질을 추진위 측에 전했고, 그에 따라 설립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1969년 12월 8일 인천 경제사상 최초로 ‘내 고장 은행’인 인천은행(仁川銀行)의 문을 열었다. 그 3년 뒤인 1972년 6월 ‘인천은행’은 은행명을 ‘경기은행’으로 바꿨다.
iTV 인천방송(仁川放送)이 지역사상 최초의 TV 전파를 발사한 것은 1997년 10월 11일이었다. 토요일 12시 10분, 시민들은 TV 앞에 앉아 ‘개국 특집 뉴스’를 보며 우리도 이제 방송을 갖게 됐다는 자긍심과 함께 그동안 메이저 방송의 횡포에 얽힌 여러 가지 불쾌한 기억들을 단숨에 날려 보냈다. 그러나 개국(開局)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메이저 방송과 시청 권역이 같은 iTV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TV 안테나를 추가로 달 필요가 없는 송출 방식이어야 하는 데도 방송위는 UHF로 고집해 결국 iTV는 원천적으로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다. 거기에 메이저방송의 광고 시장 잠식을 염려해 시청 권역도 인천시 일원으로 국한시켜 말이 ‘지역 방송 시대의 개막’이었지, 사실은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난산(難産)이었다.
더구나 iTV는 메이저 방송의 프로를 재송신해 연명하는 부산, 광주, 대전 등지의 지역 방송과는 애초부터 그 운명이 달랐다. 편성권의 자율을 누리는 어엿한 ‘독립국(獨立局)’으로 출발해 많은 기대를 모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막대한 자체 프로그램 제작비 등을 감당하기에는 모든 여건이 불리해 결국 ‘부실(不實) 경영’이라는 원천적으로 강요된 멍에를 지게 됐던 것이다.
그 전말이야 어떻든 시민의 숙원 사업이자,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던 ‘인천은행’과 ‘인천방송’은 호적에 올린 이름까지 ‘경기은행’, ‘경인방송’으로 개명해 가면서 운명을 바꿔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허가권자인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운영 중에 ‘퇴출’과 ‘방송 정지’라는 모욕의 구정물을 뒤집어쓴 것이어서 자존심에 상처받은 인천사람들은 그 사건을 내내 곱씹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가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자신들이 ‘관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무슨 낯으로 인천에 대고 그런 말을 뻔뻔스럽게 할 수 있는지 아연할 뿐이다. 인천을 도와주겠다고? 광복 후 서울의 뒷치다거리로 일관한 역대 정부의 정책에 의해 인천사람들의 삶의 질이 전국 최하위권으로 전락한 지가 이미 오래고, 이제 겨우 어렵사리 없는 살림에 상을 차려 놓으니까 왜 염치없이 숟가락을 들고 덤비는가?.
지난 20여 년 간, 인천사람들은 많은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줄곧 정부가 외면해 온 내 고장을 21세기에는 기필코 ‘동북아의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신도시 프로젝트를 지지해 왔다. 그 세세한 내용을 여기서 소개할 수는 없으나, 최근 부산 APEC에 참석한 세계적인 물류회사 FedFx와 DHL의 총수들이 “아시아의 허브 인천에 투자할 것”이라고 한 발표는 ‘인천 허브론(論)’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안으로는 경악할 ‘퇴출’과 ‘정지’를 사상 최초로 당해 망신(亡身)한 인천이지만, 세계적으로는 ‘허브’로 떠가고 있는 인천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인천시와 인천 시민들이 힘들여 만들어 가고 있는 미래의 성적표이다. 우리는 지난날의 얼룩진 성적을 거울삼아 이 정부가 입만 열면 강조해 온 ‘지방 분권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우리가 모색하는 우리의 길을 가려는 것이다. 아무리 인천의 정치력, 경제력이 허약하다고 해도, 또 다른 의미의 ‘퇴출’과 ‘정지’일밖에 없는 ‘특별지자체‘란 해괴한 논리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 같은 철학 부재의 정책에 한두 번 속은 인천시민이 아니다.
종이신문정보 : 20051121일자 1판 4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5-11-20 오후 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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