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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도심속 꽃 피운 8景...자! 그곳으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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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도심속 꽃 피운 8景...자! 그곳으로 떠나자 | |
청계천 볼거리 일제 강점기 다방골 기생들, 다리 밑의 걸인들, 70년대 공장 노동자들도 저마다의 흔적을 남겨 놓은 청계천. 민주화 시대가 열리고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 졌지만 여전히 삭막한 콘크리트에 덮혀 있던 청계천이 드디어 복개됐다.
청계천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 시청 뒤 청계광장에서 시작하자.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이나 1호선 시청역, 2호선 을지로 입구역에서 내리면 금방이다. 전체 741평 규모의 광장에는 하루 6만5000t의 물이 떨어지는 청계광장 수변폭포가 눈길을 끈다. 청계천 전체를 축소한 60m의 미니어처로 한눈에 물길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만남과 화합,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광장에는 그런 콘셉트에 맞춰 다양한 조형물들도 배치돼 있다. 광장 바닥은 전통 보자기 형태를 본떠 석재로 꾸몄고, 바닥과 조형물에는 각양각색의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설치해 빛과 물이 어우러진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 이곳에서 ‘청계천 아티스트’로 불리는 거리예술가들의 공연도 펼쳐질 예정이다.
광장을 지나 첫번째 다리인 모전교를 건너면 곧바로 만날 수 있는 광통교는 어가나 사신의 행렬이 지나던 중요한 교통로였다. 조선시대 최초로 도성 안에 들어선 돌다리로, 많은 시인?묵객들의 글과 노래에 등장했던 최고의 번화가이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다리밟기를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성황을 이뤘고, 연날리기의 명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 침략과 근대화 과정에서 크게 훼손됐고,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되면서 난간은 창경궁으로 옮져졌고, 다리는 도로 밑에 묻혀버렸다. 광교와 장통교 사이에 있는 ‘정조반차도’도 볼거리.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1795 년 아버지 사도세자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 현재 수원)과 현륭원(사도세자 무덤)에 다녀오는 8일간의 행차를 그렸다. 세계 최대규모의 도자벽화로 도자기 타일 4960장을 이어붙여, 길이가 무려 186m에 이른다. 정식 명칭은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로 서울대 규장각 전시실에 걸려 있는 원작은 당대 최고 화가인 김홍도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이명규 등이 공동으로 완성했다. 사람 1779명과 말 779필이 행진하는 모습을 통해 조선 왕가 격식과 의상, 악대 구성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동대문역쪽으로 오면 오간수교 인근 ‘문화의 벽’도 놓칠 수 없다.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현대 미술가 다섯명의 작품이 전시 돼 있다. 배진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예술가 5명이 `미래로 가는 길`을 주제로 만든 각각 가로 10m, 세로 2.5m인 대형 현대미술작품으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청계천을 형상화했다.
조선 개국 초기에 세워진 흥인지문 옆 오간수교는 원래 성벽의 수문으로 한양 내성에서 바깥으로 물을 빼내는 곳. 물이 빠져나가는 홍예(虹霓ㆍ무지개) 모양의 수문이 5개라고 해서 오간수문이라고 불렀다. 1908년 일제가 오간수문도 헐고 콘크리트 다리를 설치하면서 오간수교로 이름을 바꿨고, 1926년 6월 순종황제의 국장 행렬이 지나간 역사가 서려있다. 임꺽정이 옥에 갇힌 가족을 구한 뒤 오간수문의 쇠창살을 부수고 탈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복원하면서 5개 수문과 무지개 모양 홍예아치를 만들었고, 조명으로 꾸며 은은한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청계천변 주변 서울의 중산층과 하층민 삶을 그린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은 ‘정이월에 대독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는 시리지 않는 모양이다.’로 시작한다.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서는 옛 청계천의 빨래터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낙네들이 모여 온갖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인 동시에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되기도 했던 그곳이 옛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단 실제로 이곳에서 빨래를 할 수는 없다. 물을 더럽히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
좋든 싫든 아름답든 추하든 지나고 나면 모두가 빛바랜 추억으로 남는 것. 청계고가를 완전 철거하면서 무학교 부근 교각 중 몇 개는 남겨뒀다. 닫혔다가 다시 열린 청계천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흘러가는 청계천 물살에 버티고 있는 교각이 어찌보면 새롭게 꾸며지고 있는 천변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청계천의 역사를 말해주는 하나의 상징물인 것이다.
하류로 내려올 수록 자연의 냄새는 더욱 물씬 풍긴다. 22번째 마지막 다리인 고산자교에 이르면 가장 자연적이고 생태를 살린 공간으로 꼽히는 버들습지가 나온다. 버들습지는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도록 갯버들 꽃창포 등 수생 식물을 심어놓은 곳으로 얼마 전엔 청둥오리와 백로, 흰뺨검둥오리 등이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류 버들 습지 갈대밭에는 소형 LED 조명을 설치해 밤이 오면 반딧불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
댓글목록 0
이성현님의 댓글
인천은 굴포천을 이리 만들자.
최병수님의 댓글
지금 한창 개발되고 있는 `송도신도시`에 공원이 마니 조성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