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눈빛, 이런 분위기를 가진 여자를
만나다니. 밥집으로 가면서 우리는 학자 스타일의 평범하고 담담한 여자를 상상했는데, 임채경(林彩敬) 박사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늘씬 한 키에
깡마른 체격, 백발이 섞여 쏟아지듯 흘러내리는 롱 헤어, 편하게 입은 검은 티셔츠, 그리고 흰 줄무늬가 있는 군청색 바지, 거기에다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울 만큼, 수천 개 불화살 같은 강렬한 광채를 발산하고 있는 안광. 록 연주자? 무슨 패션모델? 아니면 화가, 아방가르드?
누구든지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이런 인상을 받을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보면, 그녀에게서는 분명 마구 칠한 진한 오일 페인트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또 언뜻 패션 모델들이 갖고 있는 카리스마, 다시 말해서 의상을 통해 육신과 그 내면 혼을 표출하는 모델들만의 묘한 감각과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또 한편 지난 밤 늦게까지, 고막을 찢을 듯 온몸으로 드럼을 두드렸을 것 같은 그런 야성스러움이 풍기기도 한다. 모습
그대로는 전혀, 그 까마득한 광년(光年)의 공간에 인공위성과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나사(NASA) 연구소, 거기 고다드연구소(Goddard
Space Center)에 근무하는 핵심 연구원 Lim 박사가 아니다. 그 고다드연구소라는 곳이 지난해 12월 동남아를 온통 폐허로
만들었던 지진 해일 쓰나미를 예견했었고, 올여름 지구가 100년 만의 무더위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견한 바로 그 연구소다. 그런 ‘권위와
높이’를 가진 연구소 연구원이, 요란한 리듬 속에 몸을 비트는 드러머, 아니면 전위 화가, 굳이 식물로 친다면 이 여름 들판에 온몸으로 헝클어져
피는 들꽃 무더기 같은 분위기이니. “오, 저한테서 그런 냄새가 나요? 그림 말씀이지요? 그림, 하고 싶었어요. 털어놓지만 사실 저
미술학 석사예요. 1989년에 ‘the American University’에서 학위 받았어요. 고3 때, 아버지께서는 이학부, 즉 모든 과학의
기본인 수학과를 강력하게 종용하셨지만 전 미대와 이학부를 놓고 고민 많이 했었어요. 미대 가는 것이 어려서부터 꿈이었는데…. 지금은 그림 하고
싶어도 오히려 바빠서 못해요.”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한 가지 인상은 어렴풋이 맞춘 셈이다. 물론 나중에 들어 안 일이지만, 그녀의 작은
딸이 발레를 하는 것을 보아 그녀의 몸속에 흐르고 있을 모델 류(類)의 카리스마를 이어 받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토록 타는 듯한 눈빛이
생긴 것은? 그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매일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을 올려다보고, 또 자신들이 하늘에 올려 보낸 별-인공위성을
올려다보면서 그와 같은 눈빛, 혜성의 눈빛이 되었을 것이다. 정병근 시인, 그 젊은 시인의 말이 맞는다. “… / 눈먼 어둠이 내 눈을
밝힙니다 / 어두울수록 내 눈을 밝힙니다 / 어두울수록 더 깊이 빛나는 눈의 심지 / … / 별들 더욱 가깝게 옷 벗습니다 …”(「어둠 行」
부분) 이 시 구절처럼 여자의 안광이, 눈의 심지가 타오르면서 그 너머 갈증까지도 포함한 듯 환하고도 막막한 빛을 띤 것은 바로 그
‘어둠과 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혼 했었어요. 아이는 둘인데, 아들 하나, 딸 하나이고, 남자애가
14살, 그 밑 여자애가 12살예요. 아들 마슈드가 금년에 ‘토마스 제퍼슨 하이스쿨’에 입학했어요. 날 닮은 것인지…, 그 학교 미국에서도 과학
명문 고등학교로 이름이 나 있거든요. 그리고 딸애는 발레를 해요.” 인생. 삶. 모래 언덕과 눈물과 별과 영원히 혼자만의 노래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이 대단한 인천 여자, 임채경 박사에게 드리워졌던 굴곡과 그늘도 이제는 다 그녀 내면에서 저 바구니 속의
청포도처럼 향기롭게 성숙했을 것이다. 인천 인일여고, 이화여대 수학과, 연세대 수학과 석사과정, 1985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디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이학석사(통계학), 다시 1989년 그 대학에서 미술학 석사, 2003년 버지니아 주에 있는 George Mason
University에서 이학박사(계산정보과학) 취득. 그리고 그녀의 부친은 고(故) 임택기 인하대 수학과 교수, 모친은 인천광역시 시의회 박승숙
의장. 아, 그리고 큰 손녀 임채경 박사를 그토록 귀여워해 주시던 할아버지 임광익(林光益) 선생은 인천영화초등학교 교장이셨다. “제가
하는 일은 직접 인공위성 같은 걸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위성 원격 탐사 데이터를 연구하는 것이에요. 고다드연구소의 32개 동(棟) 중 30개
동이 지구 과학 데이터를 취급하지요. 그 가운데에서도 지구에 내리는 비, 그 강수량을 검사하는 게 제 전문이고요.” 지구에 내리는 비?
무지한 우리는 나사에서는 꼭 우주선이나 로켓을 쏘아 올리고 화성 탐사 같은 그런 일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지구의 강수량을 검사하는 일도 거기서
한다고? 1만여 명씩이나 연구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런 분야까지 속속들이 연구하기 위해서라고? “음,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인공위성이
보내온 데이터를 가지고 지상의 강수계로 측정한 수치와 비교하여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에서 필요로 하는 전 세계 농산물 수확량의 예측 모델에
들어갈 강수량의 신빙성을 검토하여 최종 보고서를 미국 농산부에 제공하는 일이지요.” 알겠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려면 지구는 물론 ‘우주
공간에 관련한 모든 것(지식)’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여전히 신의 세계이니까 거기를 가려면 신이 만들어 놓은
미로(迷路)를 역시 아주 조심조심 더듬어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강수량 같은 것도 검사하고 또 예측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또 나아가 그런 지식을 꼭 인공위성에만 쓰지 않고 인류가 먹고 살아갈 식량 생산 문제에도 결부시켜 연구하는 것이겠지. 임채경
박사, 이 여자의 눈빛은 정말 이래서 그토록 번득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 31동에는 한국인으로는 저 하나구요. 32동에 이화여대
출신 지구과학과 요원이 둘 있고, 수시로 한국에서 학자들이 오고가고 하지만, 이 분야에 인천 출신은 저 하나밖에 없어요.” 어제는 우리
인천 출신 대 학자, 우리나라 미학, 고미술사학의 태두,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선생의 따님을 만났는데 오늘은 우리 인천 출신 나사
과학자를 만난 것이다. 우리 인천에 무수한 인재들이 있지만, 이 두 사람만으로도 연 이틀 우리는 자랑과 행복, 자긍과 자부심 속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좌우명이라면 첫째, 뚜렷한 목표를 세울 것. 둘째, 매초마다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할 것, 다시 말해서 자신의 능력을
아끼지 말고 최대한 발휘할 것. 그리고 끝으로 기존의 사고 방식에 얽매이지 말 것. 살아가는 데 있어 무슨 일을 하든지 스스로 만족스럽게 느끼고
남과 나 자신에게 떳떳하면 된다고 봐요. 전 제 아이들에게도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게 하고 또 그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있어요.” 이야기 끝에 이 깡마른 여자 우주과학자는, 학생 시절부터 하고 싶은 것은 절대 포기하지 못한 고집이 센 학생이었다는
것과 그 까닭에 유학 가서 수학 대신에 미술학 석사가 되었다는 것, 그러나 당시 다른 말씀 한 마디 없이 학비를 보내 주신 두 분 부모님께는
크게 죄스러웠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물론 그쯤에서 다시 방향을 돌려 아버지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과학자가 되었지만. 몸으로 그리고
눈빛으로 온통 강렬함, 독특함, 비학자적(非學者的) 열정 같은 것을 내뿜고 있는 여자. 그러나 자세히 보면 손톱도 가꾸지 않았고 화장도
수수하다. 고작 치장이라고는 박사의 손가락에 끼워진 낡은 반지 하나. 이화여대 문리대를 상징하는 ‘梨文’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이문형(梨紋形)
반지와 숫자 판이 둥글고 커다란 시계 하나뿐이다. 귀고리도 목걸이도 없다. “연구와 공부가 내 치장이에요.” 다시 한 번, 마르고
날카롭게, 그리고 혜성처럼 번득이는 눈빛을 낸 것은 ‘정작 중요한 미래 산업인 항공우주 분야에 무관심한 고국에 대한 걱정과 불만’을 말할
때였다. ‘어서 원격 탐사, 이 학문의 후배를 찾아야 한다고, 그래서 지난 한 달 동안 여기저기 강연도 하고 인하대, 이화여대도 방문했다고’
말할 때였다. 임채경 박사는 지난 8월 6일에 NASA로 돌아갔다.
글 _ 김 류(시인·eoeul@hanmail.net / 본명 김윤식) / 사진 _ 김보섭 (자유사진가·ericah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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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문(80)님의 댓글
귀국후 인일모임 사진에서 보던 분위기랑 많이 다르네요.
그전 기억으론 너무나 볼살이 없어서 깡마른 분위기였는데 ..
역시 우리 기후와 먹거리가 좋은가 봅니다.
보기 좋게 볼살도 오르고 날카로움보다는 친근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