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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남부 대혼돈]세계는 발가벗은 미국을 보았다-동아일보(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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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최악의 물난리뿐만 아니라 인종 분열, 계층 양극화의 발가벗은 사회학을 목격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4일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최대 피해지역인 뉴올리언스를 묘사하면서 이렇게 썼다. 백인은 거의 모두 떠나간 뒤에 남은 뉴올리언스의 흑인들. 떠난 백인과 남은 흑인 사이의 경계선은 인종, 계급(Class)의 단순한 구분선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처절한 운명선이었다.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의 사회학’은 평생 동안 인종과 계급 문제를 연구해온 사람들마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미국 사회의 후미진 구석을 바로 눈앞에 펼쳐 보인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뒤에 처진 사람들, 탈출수단이 없는 사람들, 대피경고를 믿지 않은 사람들, 그들은 바로 흑인들이었다. 흑인 시민 35%는 타고 갈 자동차가 없었다. 차가 없는 백인 시민은 15%에 불과했다.
카트리나가 몰고 온 거대한 물결은 뉴올리언스의 80%를 수장했다. 그러나 배수시스템을 갖춘 고지대에는 돈 있는 이들이 살았다. 가장 낮은 지대로 해수면 아래인 제9구는 시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의 차지였다.
‘뉴올리언스에서 백인은 어디에 사나’라고 물으면 ‘어디서 온 놈이냐’는 투의 경멸어린 시선을 되받을 뿐이다. 루이지애나 주립대 크레크 콜튼(지리학) 교수는 “‘물은 돈을 향해 흐른다’는 말이 있지만 뉴올리언스에서는 ‘물이 돈을 피해 흘러간다’”고 빗댔다.
시민의 27.9%가 연간 9000달러(약 900만 원) 이하로 연명하는 빈곤층이고 시민 3명 중 2명이 흑인이다. 피살사건 발생률은 최근 수년 동안 미국 최고 수준이었다. ‘성공적인 다문화(多文化) 사회’는 사실 인종과 계급으로 갈가리 나뉜 도시였을 뿐이었다.
카트리나 이후 전 세계에 그 실상을 드러낸 뉴올리언스는 이런 모습이었다. 거대한 슈퍼돔만 아니었다면 소말리아의 한 귀퉁이나 다름없었다. 오죽했으면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스리랑카가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을까.
사회학자 크리스토퍼 젱크스 씨는 “이 모습은 내가 아는 미국 사회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은 미국 사회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몇 개월 후에는 뉴올리언스에 고인 물을 모두 빼내겠지만 ‘사회적 단층선’은 여전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금 뉴올리언스에서는 ‘붕괴된 제방이 갈라진 사회의 모습을 두고두고 기억나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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