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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씨(65회) `약산 김원봉' 펴내
작성자 : 이덕호
작성일 : 2005.08.16 08:31
조회수 : 966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05. 8.16)
항일투쟁의 신화 `약산' 일대기
이원규씨 `약산 김원봉'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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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의 나이에 의열단, 조선의용대를 이끌며 독립운동을 펼쳐 항일투쟁의 신화로 남아있는 약산(若山) 김원봉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이 나왔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실천문학사에서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간한 ‘약산 김원봉’은 이제는 잊혀져가는 독립투쟁의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다.
“10년전부터 해외 항일운동에 관한 자료수집과 글을 써온 입장에서 김원봉과 의열단 사람들에게는 늘 마음의 빚이 있었습니다.”
저자인 소설가 이원규(58)씨는 이념의 굴레에 갖혀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지못한 약산과 의열단 사람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책 내용은 약산 한 사람의 삶과 투쟁에 그치지않는다. 의열단선언을 작성해 준 단채 신채호, 약산을 라이벌로 인식했던 백범 김구, 여기에 약산의 명령 한 마디에 폭탄을 품에 안고 죽어간 의열단원 윤세주, 이종암, 박재혁 등 무수한 인물들의 삶을 담고 있다.
4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약산의 출생과 성장기를 다뤘다. 2·3부는 의열단 창간과정부터 각종 테러활동, 조선의용대 활동과 광복에 이르는 시기다. 4부에서는 광복 이후 고국에 들어온 약산이 북한에서 최후를 맞는 시기를 담았다.
“김원봉은 굉장히 냉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김원봉을 한마디로 냉정한 지도자라고 말한다.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선배에게 술 한잔을 권한 뒤 담담하게 폭탄을 건네는 그런 지도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약산은 광복이후 이념의 굴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광복후 국방부 장관에 내정됐다가 친미정부가 들어서자 월북, 국가검열상을 지내다 숙청당한 뒤 역사의 전면에서 잊혀졌기 때문이다.
저자의 해외항일운동사에 대한 관심은 10년전부터 시작됐다. 한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항일운동 전체를 관통하는 대하소설 ‘누가 이 땅에 사람 없다 하랴’ 9권을 집필하기 위해 자료수집에 나서면서부터다. 이를 기점으로 13회에 걸쳐 해외항일운동 현장을 답사하고 자료수집, 이미 방대한 양의 자료가 준비됐다.
당연히 약산 김원봉을 의뢰받았을 때는 자료수집과 자료연구가 마무리된 상태였다. 약산 평전의 원고 1천900매를 6개월만에 탈고한 것은 바로 이같은 사전 준비가 바탕이 됐다.
작가는 요즘 몇 가지 고민이 있다고 한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항일운동사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평전을 쓰느라 중단했던 소설도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올 연말 첫 연애소설 ‘첫사랑’을 출간할 계획이다. “더이상 나이먹으면 연애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인천출생으로 주로 분단과 이념을 주제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해 온 이원규 작가. 그가 세상에 펼쳐낸 ‘약산 김원봉’은 바로 이 시대의 또 다른 아픔이다.
조태현기자 blog.itimes.co.kr/choth
종이신문정보 : 20050816일자 1판 8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5-08-15 오후 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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