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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기념관’을 세우자/조우성 시인(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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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5. 8. 22)
‘문화예술기념관’을 세우자 / 조우성 시인(65회)
올해로 광복 60주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그 새 ‘이순(耳順)’이 되어 인생을 반추해 보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필자는 지난 4월 ‘인천 문화예술의 이순’에 초점을 맞춰 광복 후 인천문화예술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전시회를 구월동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연 바 있었다. 전시회의 명칭은 인천문화예술 60년전(仁川文化藝術60年展).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전시장에는 문화예술계의 원로, 선배, 동료, 후배들과 각계의 지도층 인사들이 와 주셔서 격려와 성원을 아끼시지 않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한 여류 화가는 눈시울을 적시면서 ‘이 같은 전시회를 마련해 주어 고맙다’는 과분한 말씀을 해 주셨고, 또 어떤 덕망가(德望家)는 전시장을 세 차례나 다녀가시기도 했었다.
그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해 주신 말씀은 대충 이랬다. “이 자료들은 모두 인천 문화예술의 산 증거다. 인천시나 문화재단 등이 나서서 이를 토대로 ‘문화예술기념관’ 같은 상설 전시관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몇몇 전시품은 이미 삭아 보존 대책이 시급한 것 같다. 40-50년대 자료가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만도 다행스럽단 생각이다.”
사실, 전시장에는 백발이 성성한 원로들의 추억 속에나 펼쳐져 있을 자료들이 누렇게 바랜 얼굴로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유리 케이스 속에 정중히 모셔져 처음 공개된 최영섭 선생의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악보 초고(草稿)가 그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몰랐던 미술ㆍ음악계의 희한한 포스터들을 화가 이철명, 연주가 정흥일 두 선생의 노고에 의해 수십 년 만에 재회할 수 있게 돼 관람객들을 흐뭇하게 하였다.
인천이 낳은 문인들의 저서로 극작가 함세덕 선생의 출세작 ‘동승(童僧)’ 초판본, 소설가 현덕 선생의 ‘집을 나간 소년’, 불세출의 평론가 김동석 선생의 평론집 ‘예술과 인생’, ‘해변의 시’ 등과 아벨서점이 내놓은 ‘학원’, ‘새벗’, ‘아리랑’ 등 50,60년대 잡지들은 국내 고서 전시회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서들인데 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조그만 안복(眼福)이었다.
이밖에 1950년대 지방 도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인천에서 만들어져 서울에까지 진출하였던 영화 사랑의 교실', ‘심판자'와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의 유품과 점자책, 서예계 거목이셨던 검여 류희강 선생이 생전에 쓰셨던 붓, 도장, 인주 등 문방구(文房具) 유품, 인천사협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전국임해촬영대회 리프렛과 지방 교향악 운동의 선구였던 인천시향의 면모를 보여주는 각종 자료, 그리고 새얼, 가천, 승국, 해반 등 문화재단의 활동상 등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우현 고유섭 선생이었다.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이 제공해 주신 선생의 소형 동상(銅像)을 빨간 비단천에 고이 바쳐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한 이유는 선생이 인천문화예술계의 상징이자 우리나라 미술사학계의 원류요, 바로 올해가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뜻에서였다. 서지가 신연수 씨의 협조로 우현 선생의 저서 대부분을 더불어 전시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보람이었다.
최근 ‘우현 탄생100주년기념 심포지엄’이 인천문화재단 주최로 열렸다. 선생의 인간과 학문을 기리는 전시회도 함께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었다. 그 전시회에는 선생의 주변 인사들과 인천의 몇몇 소장가들이 지니고 있던 여러 연구 자료들이 선보여 다시 한번 선생의 고매한 학덕(學德)의 향기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필자가 ‘인천문화예술60년전’을 찾아오신 분들처럼 “ 이 귀한 유산(遺産)들을 고스란히 귀향시킬 방안은 없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인천시가 서재필 기념관을 세운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광복60년을 맞는 오늘까지도 내 고장 문화예술계를 되돌아볼 기념관 한 곳 갖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그 새 말만 많던 가요사박물관, 야구사박물관, 문학박물관은 어쩌고 또 서재필기념관이냐 싶었다. 전남(全南) 보성군 생가 부근에 유품 800여 점을 전시중인 ‘서재필기념관’의 분관쯤이라도 짓겠다는 것인지 몰라도 별 연고가 없는 인천에 왜 그의 기념관이 서야 하는지 의아했다.
그 같은 여력이 있다면, 인천시는 마땅히 가칭 ‘인천문화예술기념관’ 건립 같은 사업에 힘을 쏟아주기 바란다. 현재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여러 유산들을 마냥 방치해서는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세상만사 모르는 것을 사랑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시민들에게 내 고장 문화예술계의 활동상과 그 업적을 알리고, 그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 보관, 연구, 전시해 사회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면 그것이 곧 한 차원 높은 내 고장 사랑 운동이요, 정체성 고양 사업이라는 생각이다.
종이신문정보 : 20050822일자 1판 4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5-08-21 오후 6: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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