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곡하여 바라오니 평안하소서/조우성.시인(65회)(퍼온글)
본문
곡하여 바라오니 평안하소서
송찬규 인천향우회 회장님 별세에 즈음하여
회장님, 비가 그친 흐린 저녁에 회장님의 부음을 전해 듣습니다.
지지난 달, 경기도 이천시 남정리 ‘양지원 농장’에를 가 뵈었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살면 한 90까지는 살 꺼야” 하시면서 예의 소탈한 미소를 지으셨던 모습을 이제 저희는 영영 뵈올 수가 없게 됐군요.
그러나 회장님, 이렇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드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아, 이제야 긴 여정 속에서 짊어지셔야 했던 온갖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 놓으셨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회장님, 그 동안 회장님께서 지나오신 길은 늘 말씀 하셨던 그대로 온통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혹은 회장님의 크신 뜻을 세상이 이해치 못해 하는 일도 있었으나, 그 보다는 더욱 더 많은 이들의 회장님의 견리사의(見利思義)하셨던 일들을 익히 알고 따라 배우고 그리하여 우리 인천의 자랑스러운 어르신으로 모셔왔던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썩어 악취가 하늘을 찌를 때에도 불의와 타협을 하지 않으신 회장님은 세상의 귀감이셨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금융통화위원 등을 역임하시면서 우리나라 경제계 발전에 헌신하신 일들과 환갑, 고희의 연세에서도 배움의 길에 드시어 보여 주신 그 열정에도 그만 머리가 절로 숙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인상(仁商) 시절 펼치셨던 항일 학생 운동의 씨앗이 후에 ‘안중근 연구소’ 창설이라는 열매로 맺어지고, 인천향우회 회장과 명예회장을 지내시면서 내 고장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혁혁히 보여 주신 그 크신 정신은 저희 모두가 가슴에 되새겨야 할 감명이었습니다.
또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주)와이지 원을 자제와 함께 창업하셨던 일도 인천 지역 경제계에 두고두고 일화로 남을 것이라 믿습니다. 회장님, 회장님은 그렇게 고난과 역경의 순간들을 정의와 인간애로써 이겨낸 인생의 승리자이셨습니다. 그 절절한 말씀들을 어찌 다 세상에 전하겠습니까마는, “내 생의 마직막을 도자기 굽는 것으로 마치려고 해,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게 아냐?” 그렇게 말씀하셨죠.
이제야 그 연세에 ‘도공의 꿈‘을 지니시게 된 뜻을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는 이제 이승의 짐을 훨훨 털어 버리시고 말씀하신 바대로 그 흙의 고향으로 돌아가시었군요. 그러나, 아무리 생자필멸이라 하기로소니 이제 뵈옵지 못한다니 세상의 인과 연이 모두 뜬 구름 같습니다.
회장님, 오늘 저희는 곡하며 바라오니 부디 평안하소서. 저희는 회장님이 자연사랑, 나라 사랑의 가르침 쫓으면 끝내 흙과 더불어 사사기를 소망하셨던 회장님께서 저 세상에서 사랑과 평화의 질그릇을 마음껏 빚으시옵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조우성․시인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