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용팔이의 여름날 일기
작성자 : 윤용혁
작성일 : 2005.05.31 18:01
조회수 : 1,356
본문
74년 여름 자랑스런 인고생 용팔이는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 강화도 산골마을로 내려왔다 .
사복에 교모까지 쓴 모습은 정말 모범생(?)이다 .
여름밤 사촌 형님이 밀거적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삼세 할아버지네 포도 서리를 가자고 한다 .
호기심반 두려움 반으로 따라 나선다 .
사촌 형님은 서리 준비도 단단히 한다 .
한쪽 어깨에 꼴망태와 한 손에는 낫과
랜턴을 들고 따라오라 한다 .
나는 그저 서너 송이만 따고 나가자고 하나
형님은 오히려 포도밭 한 가운데로 성큼 성큼 나선다 .
가장자리는 다른 아이들이
많이 서리해 가서 설 읽은 것 뿐이란다 .
그래도 " 형~! 그만 빨리 가자 " 고 재촉해도
마치 포도밭 주인처럼 랜턴으로
비춰가며 검게 잘 익은 포도만 골라 딴다 .
바로 그때 원두막 거적문이 덜컥 열리며
삼세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
" 네 이놈 너 백선이 둘째 아들 아니냐~! 이런 고얀놈 !! " 하시며
원두막을 엉거주춤 내려 오려 하신다 .
이에 사촌 형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 그래 ! 삼세 할아버이 내려와봐~ "하며
원두막을 통채로 마구 뒤 흔든다 .
" 네 이놈! " " 그래 내려와 봐요 ~ "
" 네 이놈~! 망할놈~! 놔라~! " " 어디 내려와 보시겨~! "
이건 서리 하는 놈 수준이 아니다 .
이런걸 가지고 '적반하장' 이라한다 .
나는 간이 콩알만 해져서
밭 두렁을 정신없이 뛰어넘어 동네 상여막에 숨었다 .
" 아이쿠! 이게 아닌데 .."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귀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등짝에 식은 땀이 흐른다 .
지금 내려 갈 수도.. 여기 머무르기도 ..
아무튼 죽을 지경이다 .
당시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다른 애들은 몰라도 선생네 둘째 아들이
포도 따갔다고 소문나면 나는 그날로 끝장이다 .
다른 애들은 들켜도 붙들리지 않으면 되지만
나는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
그런 문제에 있어서 아버지가 위낙 엄격하시기 때문이다 .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삼세 할아버지가 어떻게 아셨는지
노발대발 하시며 어머니에게 따지러 왔다 .
댁의 아드님이 포도를 다 따갔다고 ...
아이쿠 ! 난 그저 시퍼런 포도 몇 송이만 그도 처음 따봤건만
모든걸 다 나에게 뒤집어 씌울 모양이다 .
어머니가 학교에 가신 아버지께 일러 혼내 주겠다고 하신다 .
큰일났다 . 아버지가 아시는 날이면 난 학교고 뭐고 없다 .
바로 그날 남산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의 육여사 저격사건이 발생하였다.
아버지는 그 사건에 온통 사로 잡혀서
나의 이번 일을 잊고 계신 것 같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TV에서는 종일 애도 방송이다 .
TV를 보시는 아버지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피니
슬픔에 눈물을 글썽이신다.
나는 더 오버하여 구슬같은 눈물을 떨궜다.
난 좀도둑 (?) 아니 포도서리의 죄인으로서
그날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다 .
돌아가신 고인에게는 참 않된 일이지만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나는 자랑스런 인고인이 되지 못할뻔 하였다 .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 강화도 산골마을로 내려왔다 .
사복에 교모까지 쓴 모습은 정말 모범생(?)이다 .
여름밤 사촌 형님이 밀거적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삼세 할아버지네 포도 서리를 가자고 한다 .
호기심반 두려움 반으로 따라 나선다 .
사촌 형님은 서리 준비도 단단히 한다 .
한쪽 어깨에 꼴망태와 한 손에는 낫과
랜턴을 들고 따라오라 한다 .
나는 그저 서너 송이만 따고 나가자고 하나
형님은 오히려 포도밭 한 가운데로 성큼 성큼 나선다 .
가장자리는 다른 아이들이
많이 서리해 가서 설 읽은 것 뿐이란다 .
그래도 " 형~! 그만 빨리 가자 " 고 재촉해도
마치 포도밭 주인처럼 랜턴으로
비춰가며 검게 잘 익은 포도만 골라 딴다 .
바로 그때 원두막 거적문이 덜컥 열리며
삼세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
" 네 이놈 너 백선이 둘째 아들 아니냐~! 이런 고얀놈 !! " 하시며
원두막을 엉거주춤 내려 오려 하신다 .
이에 사촌 형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 그래 ! 삼세 할아버이 내려와봐~ "하며
원두막을 통채로 마구 뒤 흔든다 .
" 네 이놈! " " 그래 내려와 봐요 ~ "
" 네 이놈~! 망할놈~! 놔라~! " " 어디 내려와 보시겨~! "
이건 서리 하는 놈 수준이 아니다 .
이런걸 가지고 '적반하장' 이라한다 .
나는 간이 콩알만 해져서
밭 두렁을 정신없이 뛰어넘어 동네 상여막에 숨었다 .
" 아이쿠! 이게 아닌데 .."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귀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등짝에 식은 땀이 흐른다 .
지금 내려 갈 수도.. 여기 머무르기도 ..
아무튼 죽을 지경이다 .
당시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다른 애들은 몰라도 선생네 둘째 아들이
포도 따갔다고 소문나면 나는 그날로 끝장이다 .
다른 애들은 들켜도 붙들리지 않으면 되지만
나는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
그런 문제에 있어서 아버지가 위낙 엄격하시기 때문이다 .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삼세 할아버지가 어떻게 아셨는지
노발대발 하시며 어머니에게 따지러 왔다 .
댁의 아드님이 포도를 다 따갔다고 ...
아이쿠 ! 난 그저 시퍼런 포도 몇 송이만 그도 처음 따봤건만
모든걸 다 나에게 뒤집어 씌울 모양이다 .
어머니가 학교에 가신 아버지께 일러 혼내 주겠다고 하신다 .
큰일났다 . 아버지가 아시는 날이면 난 학교고 뭐고 없다 .
바로 그날 남산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의 육여사 저격사건이 발생하였다.
아버지는 그 사건에 온통 사로 잡혀서
나의 이번 일을 잊고 계신 것 같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TV에서는 종일 애도 방송이다 .
TV를 보시는 아버지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피니
슬픔에 눈물을 글썽이신다.
나는 더 오버하여 구슬같은 눈물을 떨궜다.
난 좀도둑 (?) 아니 포도서리의 죄인으로서
그날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다 .
돌아가신 고인에게는 참 않된 일이지만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나는 자랑스런 인고인이 되지 못할뻔 하였다 .
댓글목록 0
태동철님의 댓글
윤 후배님,고향이 강화라하시면 혹시나 윤 효상 씨와는 ??
반갑습니다
이글보니 누구나 어린날 치기어린 추억이있음에 ...아름다운 추억됨은 이를 어떻께 소화하며 삶을 꾸려왔은지에 따라..후배님은 생각하는 삶속에 항상 아버님의 가르치심이 자리하쎳네요 하여 아버지는 언제나 위대하신분. 이런 좋은 글 동참합시다
이시호님의 댓글
성실,전문 잘 읽었습니다.용팔이는 제 대표 브렌드니 사용을 자제 해주세요.계속 사용하시면 상표권 등록해 버리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바로 이런글이 신변잡기에 올려져야 하는글입니다....
성기남님의 댓글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골프연습장에서 골프공 서리를 하다가 잡혀서 혼난 적이 있습니다
이성현님의 댓글
몇회신가? 정서가 딱 인고 정서네...
이성현님의 댓글
용팔이 상표는 오래된 상표라 누구던 써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