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발표작- 뱀 꼬리와 부엉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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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우 곤
어느 날 뱀의 꼬리와 머리가 옥신각신 입씨름을 벌였다. 꼬리가 불만을 터뜨렸다. 왜 자신은 머리가 하자는 대로 항상 뒤에서 끌려 다녀야 하느냐, 매사에 아무런 결정권도 없다는 건 너무나도 불공평할 뿐더러 이건 순전히 노예와 같은 삶이 아니고 무엇이냐며 게거품을 물었다.
이에 머리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꼬리에게 그런 순 엉터리 같은 소린 하지도 말라고 일침을 가하며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렇다고 위험조차 미리 알아차릴 귀라도 있느냐고 서슴없이 되받아 쳤다. 더구나 시시때때로 직면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어떤 방법으로 대처해야 할지 결정할 지혜도 없으면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이렇게 하는 건 다 너를 위해서다, 뭐, 나만 위하겠다고 그러는 줄 아느냐, 이렇듯 힘이 들지만 서로 살기 위해선 어쩌겠느냐, 이럼에도 내가 앞장서서 나아가는 게 그렇게 못마땅하냐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며 눈을 부라렸다.
꼬리는 그 말에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흥, 날 생각해서 그런다고? 웃기지도 마라, 그 따위 소리는 이날 이때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와서 이젠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난다, 어떤 독재자나 압제자도 너처럼 입만 열면 한결같이 자신의 추종자들을 위한 일이라고 떠벌려대지, 그러나 실상 따지고 보면 그 구실을 대고 제 입맛 당기는 대로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리는 한발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결국 머리는 벽창호 같은 꼬리와 시간을 질질 끌며 싸워보았자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여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꼬리에게 다음과 같은 타협안을 내놓았다. 정 그렇다면 이제부턴 서로 역할을 바꿔서 해보면 되겠느냐, 즉 너는 내가 하던 머리 역할을, 난 네가 하던 꼬리 역할을 하자고.
그 말에 꼬리는 그거 좋지 하고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는 곧바로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뱀은 도랑에 빠지고 말았다. 머리의 말대로 꼬리에겐 앞을 내다보는 눈이 없는데다 미리 위험을 알아차릴 귀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당한 일이라 꼬리는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실로 난감했다. 이에 보다 못한 머리가 이리저리 궁리하며 고생한 끝에 도랑에서 가까스로 기어나올 수 있었다.
또 얼마쯤 나아갔다. 머리조차 놀랠 정도로 잘 나간다 싶었다. 하지만 웬걸, 꼬리는 난데없이 가시투성이인 관목(灌木) 숲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게 아닌가. 아차 하며 꼬리가 빠져 나오려고 허둥대면 허둥댈수록 가시덤불 속에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머리의 도움을 받아 비록 가시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지만 겨우겨우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두 번의 실수에도 꼬리는 자신이 앞장서겠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다가 이번에는 불이 타고 있는 한가운데로 들어가버렸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점점 몸이 뜨거워지고 별안간 주위가 깜깜해지자 뱀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머리가 필사적으로 구출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만시지탄이었다. 결국 몸은 불에 타고 머리도 함께 죽어버리고 말았다.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다. 자신의 역할에 불만을 품은 뱀 꼬리의 맹목적인 주장과 무모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결국 뱀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이 교훈적인 얘기는 어떤 조직이나 사회, 더 나아가 국가에서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비유하는 것에 즐겨 상용되고 있다. 모름지기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리더의 역할은 해당 분야에 대해서 탁월한 자질과 능력, 그리고 전문성을 제대로 갖춘 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야 한다. 제 분수나 처지도 모르는, 무능력한 뱀 꼬리와 같은 자를 리더로 선출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인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인사는 만사라고 했다. 따라서 인물의 발탁은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 듯 신중하게 해야 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네 정치판은 가히 쇠귀에 경읽기라 할 만큼 소위 코드 인사가 판을 치고 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별로 나아지는 구석이 없다. 거기에 대한 병폐는 뜻있는 이들에 의해서 누누이 지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학연∙지연∙혈연에 의한 정실의 개입이나 권력의 입김에 의해 인사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저런 인연만 있으면 해당분야와 전혀 무관한 자, 도덕적인 결함이 많은 자를 가리지 않고 요직에 앉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일이 그릇되면 3일 장관, 1개월 장관 등등 도중하차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그와 같은 잘못된 인사정책은 국력의 낭비와 직결된다. 사실 코드 인사로 발탁된 자들 치고 제대로 일을 하는 예를 보지 못했다. 모름지기 인사란 머리 수만 채우는 게 능사가 아니다. 뱀의 꼬리와 같은 이들을 엉뚱한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사전에 그것을 철두철미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정확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늘 되풀이되는 것은 어쩐 일인가. 아마도 코드 인사라는 게 마치 달콤하고 쫀득쫀득한 곶감처럼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가 보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자가 그 놈의 감투가 얼마나 탐이 나기에 수락한 뒤 의기양양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국회 청문회에서 온갖 질타를 받고 낙마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그를 천거한 인사에도 문제가 있지만 본인 스스로가 허물이 있다면 일이 터지기 전에 용기 있는 자세로 고사하는 게 백 번 옳은 게 아닌가. 세상엔 비밀이 없다. 비굴한 답변이나 하고 까발리지 않아도 될 더러운 자신의 과거사가 공개적으로 낱낱이 밝혀지는 창피와 수모를 당할 대로 당한 뒤에 물러나는 것을 모습을 보면 깨소금맛이 따로 없다. 제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비겁한 술수를 써서는 안 된다. 그저 덮어둔다고 해서 몸에 배인 구린 냄새가 가시겠는가.
한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라고 했다. 매번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짜증이 나는 일이다. 탈무드에 나오듯 뱀 꼬리가 머리의 충고를 액면 무시하고 끝까지 오기와 고집을 부린 결과 어찌되었는가. 첫 번째 실수에 자신의 능력 밖이라는 것과 잘못을 인정했더라면 제2, 제3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뻗대다가 결국 죽음을 부르지 않았는가.
모름지기 세상의 이치는 순리대로 돌아가야 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요,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게 그렇다. 물의 흐름과 계절의 순환에 대한 이치만 알아도 난마(亂麻)처럼 얽히고 설킨 문제도 순조롭게 풀릴 텐데……. 그래서 하늘의 이치에 순종하는 자는 흥하고, 그것에 역행하는 자는 망한다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날 부엉이와 갈매기가 만났다.
“부엉이야, 대체 자네 어디로 가는가?”
“동쪽으로 옮겨 가서 살려고.”
“그건 왜?”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 울음소리가 싫다고 하단 말이야. 그래서 동쪽으로…….”
“오, 그래? 하지만 자네가 울음소리를 고칠 수 있다면 몰라도 그러지 않고서야 거기에 가도 마찬가질 걸.”
이는 중국의 전한(前漢) 말에 ‘유향(劉向)’이 찬(撰)한 『설원(說苑)』이라는 책에 나오는 대목이다. 근본이 잘못되었으면 솔직히 시인하고 그것을 고쳐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새기 마련이다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얘기다. 본래 천성이 나쁜 사람은 어디 가든 티를 내고 만다. ‘내 물건이 좋아야 산다’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물건의 질이 나쁘면 아무도 사려고 덤벼들지 않듯이 사람 사이에도 질이 나쁜 사람과 사귀다 보면 손해를 보았으면 보았지 결코 득이 되지 않음을 종종 경험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치를 행함에 있어서 위정자들이 민의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졸속으로 결정된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본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에 시행에 혼선이 빚어질 뿐더러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는 예가 허다하다. 즉,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고 제멋대로 끌어가려고 하는 것은 승산도 없는 게임을 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니, 물가에 가지 않으려는 말을 억지로 끌고 가려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우리는 ‘개혁’이라는 깃발 아래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사상의 틀만을 고수하며 덮어놓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것을 능사로 삼는 정치를 보아왔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하는 막무가내 식의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발상의 정치. 구호만 무성하고, 의욕만 앞섰지 뭐 하나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정치에 민심이 휙 돌아섰다. 천길 벼랑으로 떨어지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소위 깜짝 쇼 같은 어설픈 정책의 남발. 그 바람에 국민들은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시달렸던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국민을 우습게 보고 약 올리는 정치였다. 이는 세상을 제멋대로 쥐어흔들어보려는 고약한 심보요, 수작이 아니고 그 무엇이냐. 쥐뿔도 모르면서 세상 천지에 저 하나만 잘났다고 으스대며 천년만년 자신들의 정권이 유지될 줄 알고 기고 만장하던 꼴불견. 한마디로 말해서 방약무인(傍若無人)이요 안하무인(眼下無人)의 극치였다. 그들은 그저 말만 하면 국민들이 순순히 따라올 줄로 착각하였다. 그게 먹히지 않으면 자신들은 앞서가는데 국민들이 지각이 없어서 그렇다고 엉뚱한 소리를 공공연히 해대지 않았던가.
그 진절머리 나는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독선과 아집. 잘못에 대한 비판이나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체통도 없이 오히려 발끈하며 눈을 부릅뜨지 않았던가. 견강부회와 아전인수 격의 악어 논법으로 궤변(詭辯)만 늘어놓을 뿐 뼈를 깎는 반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생떼와 오기,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밥 먹듯이 하는 모습. 왜 솔직하지 못한가. 경험 부족에 따른 것이요 무능력해서 그렇다고 솔직히 시인하기가 그리도 어려웠던 것일까.
그런데 정치의 속성이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지난 정권들의 그릇된 정치를 질타하며 답습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늘 거기서 거기다. 한번쯤 부엉이와 뱀의 꼬리처럼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갈매기와 뱀 머리의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민심은 천심(天心)이라고 했다. 성나게 하고 억누르면 민심은 냉정하게 돌아서게 마련이다. 이제는 근본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면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서 진정 민심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 올바른 정치다.
현정권은 과거 정권들이 숱하게 저질렀던 잘못과 실수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환골탈태(換骨奪胎)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했다. 그럼에도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다. 이런 저런 연고로 요직에 제 사람 앉히기에 혈안이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 한다는 말 그대로다. 그러다 보니 지지율이 급속히 하락하고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원성이 높다.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바로 끼워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바둑의 실력을 향상하려면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어디로 나아갈지 신중히 계산도 아니하고 즉흥적 혹은 주먹구구식으로 나라살림을 꾸려가서는 안 된다. 과거처럼 국민의 비위를 거스르고 짜증나게 해서는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소위 위정자라면 위에서 예로 든 뱀 꼬리와 부엉이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두고두고 되새겨 봄직하다.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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