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무니라는 고향산골마을은 무척이나 추웠어요.
새벽녘 머리맡에 놔둔 숭늉이 꽁꽁 얼어붙었어요.
화로를 밤새 방안에 모셔 놓아도 웃풍이 심했지요.
아침에 뜰 안에서 어머니가 따듯하게 덥혀준 물을 세숫대야에
받아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방 문고리를 잡으면 철꺽 달라붙어
강제로 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 살살 달래야만했죠.
어머니는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 숯이 되기 전의 잔불을 건져내
무쇠로 된 화로에 온기를 가득 눌러 담았어요.
조반을 위해 온 식구가 둥그런 밥상에 둘러앉으면 화롯불에 아버지는
석쇠를 펼쳐 김과 꽁치를 구워 내셨어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파랗다 못해 검은, 굵은 소금이 뿌려진 김이
몸을 비틀다 바스스 잠이 들어 파삭파삭해졌지요.
맛깔스럽게 구워진 꽁치토막에는 동생과 전투가 벌어졌어요.
젓가락 끝을 무기삼아 아주 유리한 각도로 잡으면 겨우 한 토막을
전리품으로 가져올 수 있었어요.
누구나 꽁치의 배창자부분을 싫어했지요.
아랫목에는 담요를 뒤집어쓴 놋주발이 흰쌀밥을 담고 옹기종기
도란 도란거렸어요.
물론 온장고를 대신한 점심용이었죠.
어느 때는 조폭같이 생긴 술독이 농익은 밀주를 담고 아랫목에 떡
버티어 그 옆의 밥그릇은 빌붙은 똘마니들 같았어요.
구정을 알리는 신호도 되었지요.
겨울방학에다가 바깥 날씨마저 추우니 누나와 동생과 같이 방안에서
용대는 놀이 감을 찾았어요.
한참 놀다보면 곧잘 말다툼으로 번지곤 했지요.
그러면 헤어진 양말을 어디서 구하셨는지 모르는 전구에 껴 실로
짜짓기를 하시던 어머니에게 단체로 매를 맞았습니다.
참다못한 어머니의 화풀이였죠.
누나가 맞고 나면 용대가 매를 맞았습니다.
훈장의 사모님답게 매를 드시는 것이 아니라 나뭇광에서 즉시 제조된
솔가지가 여럿달린 회초리였어요.
무조건 그간 잘못한 것을 일곱 가지를 대야만이 매질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용대는 너무나 억울하였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았어요.
훌쩍이며 “어머이 말 안 듣고요.” “또?” 동생이랑 싸우고요. “또?”
“공부 안하고요.”
그 사이 약은 동생은 잠겨 진 문고리를 잽싸게 풀고 도망을 쳤어요.
미처 어머니는 동생을 붙들 수 없었지요.
추위에 한나절을 어디서 놀다 동생은 돌아 왔어요.
황급히 뛰어들며 “어머이, 저기요? 클났어요.” 영문을 모르는 어머니는
아까 일을 다 잊어버리시고 “응? 뭐라고?” 반문을 하셨어요.
그러면 동생은 “아니에요. 어머이!” 순간 기지를 발휘한 동생의 엉뚱함에
어머니는 웃음을 짓고 말았어요. 면죄부가 발부되었죠.
동생은 목이 타는 지 동치미 국물을 벌컥 마셨어요.
그리고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계속 났어요.
알고 보니 물동 박에 살얼음을 깬 동생이 그걸 그릇에 건져내 당원을 타
오들오들 깨물어 먹고 있었어요.
오후에 눈이 많이 내렸어요.
성당 마당에도 초가지붕에도 흰 눈이 펄펄 내렸어요.
동생은 혀를 내밀고 그걸 입으로 받아먹으려 이리저리 날뛰었죠.
뽀드득 밟히는 눈이 좋아 발뒤꿈치를 붙여 돌아가며 꽃을 그렸어요.
오줌독을 피해 눈사람도 만들고 눈으로 된 성을 양편에 쌓았죠.
눈싸움이 지치면 아궁이에서 고구마를 구워냈어요.
반쯤 까맣게 탄 속노란 고구마를 부지깽이로 들쑤시며...
그리고 내일 산속으로 산토끼를 잡으러 간다고 동생과 굳게 약속을 했어요.
산속의 밤은 일찍 찾아왔어요.
저녁을 일찍 물린 동생과 가물거리는 등잔불을 이용해 그림자놀이를 하였죠.
멍멍 짓는 개의 머리도 만들고 날아가는 독수리와 물가의 오리도...
이불 속 동생의 발가락이 간지러웠어요.
개구쟁이 동생은 이불속에서 가끔 스컹크로 돌변하였어요.
그럴 수밖에요. 낮에 그 속노란 고구마를 그렇게 많이 먹었으니...
꿀밤을 한 대 쥐어박았지요.
동생이 또 긁적거렸어요. 분명 수퉁니가 산보를 나가 몸통을 아장거리며
기어가고 있었을 거예요.
하루 놀이의 피로로 용대의 눈꺼풀이 무거워졌어요.
겨울밤이 문풍지에다 대고 자장가를 불러주었어요.
그렇게 겨울이야기는 그 후로도 계속 되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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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진님의 댓글
말과 글만의 효는 효가 아닙니다......말과 글만의 우애도 우애가 아니지요? 행동하는 효와 우애만이 효일겁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함보다는 살아생전의 효가 우선이겠지요? 간혹 남자분들은 아내에게 강요합니다 효를 말입니다.어머니는 자식 가정화목위해 희생하는 존재들입니다.감히 말씀 올리고 갑니다.
성명진님의 댓글
넘 뻐겼나봅니다..............하루종일 .......고개숙이고 요강들고 벌섰습니다.
용서해주실거라 믿고......갑니다.....존중 올리면서.....갑니다....후다다다닥...잡지 마세욤............*^^*정말 좋은 글귀보고 가슴이 따스해졌습니다....캄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