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용대의 겨울 이야기
본문
어릴 적 아버지 몰래 갈퀴 살을 잘라 가오리연을 만들었어요. 살무니 산골마을에서 대나무를 구하기란 참으로 어려웠지요. 커다란 달력 한 장을 떼어 오려 얇게 여민 갈퀴 살을 밥풀로 붙이고 꼬리는 신문지를 길게 잘라 붙이면 제법 그럴 듯 했어요. 실을 끊어 귀를 맞추니 마음은 이미 창공을 날고 있었지요. 얼레는 어차피 없으니 어머니가 쓰시는 실패에 감긴 실을 풀어 마당에 나가 시도를 하면 이놈이 꼬리를 흔들며 요리조리 체머리를 빙빙 돌리다가 땅으로 곧잘 곤두박질하였어요. “양귀가 잘 안 맞았나?” 조용한 바람이 문제였어요. “바람아, 제발 불어다오!” 동생은 큰소리로 외쳤어요. 동생의 원대로 된바람이 불어 왔어요. 실패에서 실을 늘어뜨리자 동생이 또 다시 소리쳤지요. “자 날린다.” 어느새 용대의 마음은 두둥실 하늘로 떠올라 이리저리 날아다녔어요. 겨울방학이 되자 인천중학교에 다니던 큰형이 내려왔어요. 자취를 하다 하숙집으로 옮겨서인지 살이 투실투실 앙팡지게 붙어 있었어요. 용대와 동생의 우상이 시골집에 내려온 것이지요. 가오리연을 날리던 저희를 보더니 “야, 창피하게 그게 뭐냐!” 그러더니 이가 듬성듬성 빠진 갈퀴를 거의 작살내어 방패연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들창문을 바르고 남은 창호지를 직사각형으로 잘라 동그랗게 가운데를 오려낸 다음 댓살을 대각선으로 여럿붙이는 것 까지는 좋았어요. 글쎄 귀를 못 맞춰 뱅글뱅글 돌기만 하고 연신 땅바닥에 코를 들이 박아 방패연이 만신창이가 되었어요. 그런데 큰형보다 한 살 아래인 옆집 형은 방패연을 잘 만들어 아까부터 놀리고 있었어요. 결국 큰형과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하는데 그 믿었던 큰형이 밑에 깔려 허둥대고 있지 않겠어요? 두 동생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어요. 인중에서 유도를 배웠다고 방학 때가 되어 내려오면 봉당에 이불을 깔고 낙법을 가르쳐주니 마니 하던 큰형의 체면이 구길 대로 구겼죠. 그래도 저녁에는 마을 사랑방에서 옆집 형에게 항복을 받았다고 큰형은 코를 벌름거리며 알려 왔어요. 그날 밤, 곤하게 자는데 집 옆 성당의 종각에서 심하게 울리는 종소리가 들려왔어요. “땡땡땡땡” 마구잡이로 흔들어 대는 종소리였어요. 들창문을 바라보니 대낮같이 훤하였어요. 안방에서 모두가 같이 잠을 잤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황급히 일어나시어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으셨어요. “영인 네가 불난 것 같다.” 잠결에 저의 집이 불난 줄 알고 얼마나 무섭고 두렵던지... 한참 후 양동이와 세숫대야를 가지고 불 끄러 달려 가셨던 부모님이 이마에 땀을 흘리며 돌아 오셨어요. 그런데 그 불 끄시던 도구를 절대로 집안으로 들어 놓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굵은 소금을 획하니 뿌리셨어요. 화마를 내쫓는 의식이랬어요. 당시 시골집들은 겨우내 땔감을 처마 밑에 잘 쌓아 놓았는데 아궁이에서든 그리고 버린 담배꽁초 등의 불씨가 화재의 원인이 되곤 하였지요. 개중에는 여름내 물꼬 시비 등으로 이웃집과 사이가 안 좋아 앙심을 품어 방화로 보이는 화재도 있었지만 목격자가 없어 묻혀 지곤 하였어요. 이런 불을 도깨비가 놓았다고 종종 불렀어요. 이를 막기 위해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당번제로 돌아가며 야경꾼을 두었는데 큰형은 북을 두드리며 한밤중에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아주 신나했어요. 다음 날은 뒤뜰 양지바른 곳에 큰형이 군용담요로 텐트를 쳤어요. 거적을 깔고 들어서니 아늑하니 참 좋더군요. 때론 활을 만들어 수수깡 앞 끝에 못을 꽂아 함부로 하늘로 쏘아대고... 시위를 떠난 화살에 동심도 따라 올라갔지요. 오후에 사촌형과 나무를 하러 올라간 큰형이 산불을 내어 동네 상여막이 다 탈 뻔했어요. 나무는 하나도 못하고 산소 갓에 불을 놓았다가 바람이 불어 큰 불로 번졌지요. 지게와 낫은 다 타고...머리칼과 눈썹도 다 그을리고... 겨울방학 중 일직으로 학교에 가셨다 돌아오신 아버지께 혼쭐이 났어요. 멀쩡한 갈퀴를 마귀할멈으로 만들어 놓은 것까지 포함해 무진장 혼났지요. 사실은 용대가 주범인데요. 그리고 개학이 가까워지자 큰형은 다시 인천으로 떡 싸들고 올라갔지요. 하숙집에 줄 누런 양회포지에 싼 백설기를 책가방 가운데에 반듯하게 넣어... 그 후로 몇 해가 흘렀어요. 어딘가에서 돌아온 옆집 아주머니의 절규하는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놀라 달려갔지요. 마당 귀퉁이마다 굵은 소금을 뿌리며 슬피 울고 계셨어요. 사연을 알고 보니 몇 년 전 큰형과 방패연 문제로 싸움을 벌였던 옆집 형이 새우젓 배를 탔다가 노가 바닷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건지려 그 추운 바닷물에 뛰어 들었다가 그만 익사하여 돈이 없어 시신을 고향집에도 못 데려 오고 그곳에 대충 묻고 와 엉엉 울고 계셨어요. “돈이 웬수여! 돈이... 보내달라는 학교도 못 보냈는데... 그 죽은 놈이 글쎄 제 어미를 보더니 코피를 주르르 흘렸시다.” 자꾸 목 놓아 우셨어요. “아이고! 아이고!” 땅을 치며 통곡하셨어요. 고추바람에 대추나무도 따라 울고 어린 용대의 마음도 따라 울었죠. 모든 것을 잊으려 밤새 하얀 눈이 내렸어요. |
댓글목록 0
오 태 성[70회 님의 댓글
용혁님 배경음악 제목 좀 알려 주세요.
윤인문님의 댓글
난 강화에 갈때마다 용혁후배가 쓴 강화 추억거리를 떠올리곤 합니다. 항상 좋은 추억거리를 알려주어 고맙기 그지 없구만요..^^
윤용혁님의 댓글
오태성 선배님, 안녕하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배경음악은 사라 브릿트먼의 겨울빛(WINTER LIGHT)이랍니다.여여하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모로 죄송함을 전합니다.운동과 일에 빠져 선배님을 제대로 보필 못함을 늘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선배님을 존경하는 후배랍니다.즐거운 주말되시고 청안하세요.
오 태 성 님의 댓글
용혁후배 먼저 고맙다는 인사 오리네 요즘 매일 아침 겨울빛 한곡 감상 헌 후에 하룽 일과 시작하네 당ㅡㅁ에 또 좋은 곡 하나 부탁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