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칡뿌리 캐러가요.
본문
“니들 또 어디 가려고?” 잠시도 집에 붙어있지 않고 발발거리며 다니는 당신의 어린 두 아들을 보고 부엌에서 큰 가마솥을 헹구시던 어머니께서 물으셨어요. “칡뿌리 캐러가요.” 동생의 어깨에는 곡괭이가 얹혀있었고 용대의 어깨에는 삽이 들려 있었어요. 고향강화 살무니골 뒤로는 진강산과 덕정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칡은 어디든 무성히 잘 자라고 있었어요. 경험상 욕골 광교네 산의 칡뿌리가 알이 통통한 것이 맛도 좋아 정월대보름이 지나 겨우내 얼었던 땅이 슬슬 풀리기 시작하고 먹 거리가 궁해지면 매년 그곳을 즐겨 찾아 갔지요. 산언덕을 숨 가쁘게 오르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장끼 한 마리가 소리를 내지르며 푸드덕 날아올라 깜짝 놀랐어요. 장끼의 울음소리가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갔어요. “제기랄! 저놈이!” “형, 꿩고기 맛있어?” 동생이 물어왔어요. “얌마 내가 먹어봤냐?” 퉁명스럽게 대답하니 “그냥 물어 봤다고!” “저게!”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형, 이걸 캘까?” 욕심이 많은 동생은 어른 팔뚝보다 더 굵은 놈을 가리키며 전의를 불태웠어요. 그러나 먹기 좋은 칡뿌리는 상단이 손가락 굵기 정도가 좋았어요. 밑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더욱 통통해지고... 동생이 가리 킨 것은 캐기도 어렵고 분명 오래된 칡이라 크기도 어마어마해 바위를 헤쳐내야 겨우 일부를 건질 수 있는 것이 많았죠. “야! 대톨아, 꼭 너 같은 것만 고르니?” ‘대톨’이라는 별명은 어릴 적 떼를 쓰며 머릴 봉당마루바닥에 콩콩 찍다 대추씨가 이마에 박혀 얻어진 별명이었어요. 동생은 그 별명을 무척이나 싫어했지요. 동생은 구시렁구시렁 거렸어요. “형은 뭐가 나서!” 하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겠지요. 마른 칡넝쿨을 흔들어가며 적당한 것을 골랐어요. 삽으로 파다 돌이 나오면 동생이 곡괭이질을 하고... 곡괭이에 맞은 땅속의 돌이 번쩍 불꽃을 펴도... 무 구덩이를 파던 실력을 총동원하여 정말 열심히 파 내려갔어요.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흐르고...잠시 허리를 펴 저 멀리 증포 앞바다를 바라보았어요. 인천을 오가는 여객선이 검은 연기를 내 뿜고 고기잡이배는 구름발치에 걸쳐 있더군요. 저 바다로 계속가면 중국이라던데...냄새나는 X지게 지는 모습도 보인다던데... “형, 뭐해! 당겨!” 감상에 젖을 틈도 주지 않고 동생이 성화를 했어요. 하긴 칡뿌리를 캐러 와서 바다나 감상하니... 바위틈에 끼여 있는 칡뿌리의 밑 둥은 정말 성난 복어처럼 알이 배어 있었어요. 동생의 바짓가랑이는 이미 터진지 오래고... 비좁은 구덩이에 얼굴을 파묻고 행여 칡뿌리가 다칠세라 손으로 흙을 파내려 엉덩이를 하늘로 치 벋친 동생의 모습은 정말 우스웠어요. 그 뒤에서 잡아당기라니... 운동회날 줄다리기의 기억을 되살려 “영차!” 구령을 맞춰 당기는데 글쎄... “부지직!” 바로 코앞에서 울리는 괴성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더군요. 용쓰던 동생의 쌍 바위 골에서 나는 비명소리가 분명했어요. “야야! 너, 이 죽일 놈이...어디다대고...” “형, 조금만 참아! 나온다고! 자 나온다.” “뭐가 나와! 또? 않되!” “아니!!!” 그 순간 퉁하며 칡뿌리가 중간에서 끊어져 버리지 않겠어요? 순간 둘은 뒤엉켜 나뒹굴었어요.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칡뿌리가 상당부분을 땅속에 남긴 채 널 부러져 있었죠. 속상하고 그 아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야! 네가 방귀만 안 뀌었어도...” 엉뚱한데 화풀이를 했지요. 다른 곳을 또 뒤졌어요. 거무스레한 흙이 나오고 땅을 파기가 아주 수월하더군요. 정신없이 파 내려갔어요. 아까의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지요. 대박이 났어요. 뿌리줄기 하나를 보고 파 내려갔는데 가기에는 아빠 칡, 엄마 칡, 아기 칡이 다리들을 비비꼬아 뭉치로 있었어요. 너무 기뻐 소리를 질렀어요. “심봤다!” 그 소리가 산 메아리쳤어요. “심~심~봐~아~앗~ 다~아~아~아~” “형은 아무거나 심 봤데?” 동생의 반격에 아랑곳 하지 않았어요. 일석이조로 한 번에 많은 칡뿌리를 캐니 기분이 좋았거든요. 개선장군이 되어 칡뿌리를 칡넝쿨에 얼기설기 엮어 삽자루를 흔들며 보무도 당당히 산을 내려왔어요. 흙투성이가 된 바지의 무릎과 엉덩이 부분이 떡이 되어 반질거려도... 이제 톱으로 알맞게 썰어 호주머니에 넣고 동네 아이들에게 자랑할 일만 남았죠. 씹으면 물이 칙칙 나오고 약간 쓰다가 들쩍지근한 그 맛... 입 주변을 시커멓게 물들이며 껌처럼 질겅이던 그 옛날의 칡이 그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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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성님의 댓글
칙뿌리라고라 오메 워짠댜 나도 한 옛날 백석으로 박촌으로 염병하게쐬댕겼으야 ^^{요기까지가 내한계}
한상철님의 댓글
ㅎㅎㅎ 저는 캐는 것 보다는 주로 먹는쪽으로 아련한 어린시절이 떠오르네요 잘 읽었읍니다 선배님
윤인문님의 댓글
요즘은 칡이 많이 귀해졌네..술 해독에 좋다하여 칡즙으로 만들어 장복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