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봄의 연가/이글도 지난 3월 14일 MBC 여성시대에서 읽혀진 글이랍니다.
본문
봄비가 보슬보슬 내린 후 성당 옆 공터에 배 깔던 냉이가 제법 자라 귀를 쫑긋 세우고 성 너머 보리밭 사이의 달래는 살랑거리는 실바람에도 허리가 꺾일까 사뭇 염려되었지요. 보리밭 이랑을 깡충깡충 뛰어 다니며 꼬리를 아래위로 흔들어 노래하는 종달새... 웃자란 대파에 꽃이 둥글게 피어 꿀벌은 윙윙거리며 꽃봉오리를 이리저리 헤집을 때 꿀벌의 꽁무니 꿀을 훔치려는 시갑이의 검정고무신은 영문을 모른 채 공중을 솟구치더니 한바탕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어요. 뇌진탕으로 벌벌 떨며 냄새나는 고무신짝에서 기어 나오는 불쌍한 꿀벌... 하얀 나비 나른한 날개 짓에 새순은 파릇파릇 돋아나고 아지랑이 가물거리며 시야를 수놓으면 양지산 이름 모르는 새들은 정답게 노래했죠. 밭둑에 매여진 송아지 “음매!” 하고 어미 소를 부르고 간간이 들리는 춘정에 겨운 영각은 저음의 파고를 타고 막음대미산을 넘어갔어요.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무당개구리 빨간 넥타이를 매고 어설프게 짝짓기 하면 샘 많은 맹꽁이 아드득 볼을 부풀려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었지요. 맑은 도래샘 너설에 부딪쳐 멍들고 앙증맞은 털 복숭이 버들강아지 물길 따라 춤을 추었어요. 그 물오른 가지를 꺾어 비틀어 무반주 호대기를 불어대면 집안에 뱀 들어온다고 어른들은 겁을 잔뜩 주었지요. 작년에 보아둔 비밀장소 돌 틈 사이의 하얀 은싱아를 혼자 몰래 캐러 갔어요. 큰 돌을 낑낑대며 밀어내고 손을 디밀어 야들야들한 그놈을 꺾었지요. 다른 애들이 볼까 두리번거리며...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날 학교에 갔어요. 옆 반에 선영이라는 여학생이 서울에서 전학을 왔어요. 호기심이 많은 남학생들은 궁금해 죽으려했어요. 창문을 통해 엿보고... 정말 뽀얀 살결에 동화 속에 나오는 예쁜 공주 같은 애가 사박스러운 여자애들 사이에서 보조개를 키우며 앉아있는데 눈에 확연히 들어왔어요. 하얀 안개꽃을 닮은...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단... “저렇게 고운 애가 이 시골구석에 무얼 찾아 먹으려 왔으니이꺄?” 누구한테 물어 볼 수도 없고 혼자 중얼 거렸어요. 하교 길에도... 집에 와서도... 잠자리에서도... 생각나고... 방긋 웃는 모습에 가슴은 터져나갈 것 같았어요. 더구나 칡뿌리나 캐먹는 주제에 “선영아, 사랑해!” 는 입 밖에도... 꿈에라도... 만약에 좋아하는 눈치라도 보이면 짓궂은 애들한테 놀림감이 되었지요. 그리고 학교 화장실벽에 이렇게 쓰여 있겠지요. “용대는 선영이를 사랑한데요. 얼레리 꼴레리!” 실제 그렇게 놀림을 당할 것이기에 근처에 갈 엄두도 못 냈지요. 동아전과의 표지모델 같은 그 여자아이...학교 뒤 성태네가 그 애 외가댁이라던데... 기적이라 할까요? 글쎄 그 여자애가 미술반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잘 보이려 무단히 애를 썼지요. 도화지도 주고 크레용도 빌려주고... 학예회발표를 위해 초록빛바다 노래도 같이 불렀어요. “초록빛바다 물에 두 손을 담그면~~~” 실제 그 애랑 같이 두 손을 포개어 담그고 싶었어요. 초록빛 바닷물에... 목소리를 가다듬어 잘 보이려는 열망은 동물의 왕국 수놈들의 생리겠지요? 그림을 잘 그린다고 그 여자애랑 같이 전 강화 학생 사생대회에도 나가면서 아주 친해지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은 담임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둘은 꼭 오누이 같구나?” 그러시면서 제 뒤 머리통을 쓰다듬으시며 “왜 이리도 머리통이 납작하냐? 대고 글씨를 써도 되겠구나?” 솔직히 그 여자애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창피하였어요. 아니 속상하였죠. 잘 보이려는 터에... 어머니 말씀이 젖먹이시절 워낙 순해 뒤로 눕혀 놓으면 꼼짝 않고 그대로 있어 뒤통수가 납작하다고 그랬어요. 학교가 파하면 둘이서 들로 산으로 놀러 쏘다녔어요. 이제 남자애들의 놀림정도는 무시하기로 했지요. 풀밭에서 누워 흘러가는 구름도 쳐다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지나간 그 애의 도시생활도 듣고... 토끼풀꽃을 뜯어 손목시계도 만들어 양 손목에 차주었어요. 둥지산 뻐꾸기도 흥겨워 노래 부르더군요. 남자다움을 보이려 앉아 되새김질하는 소잔등에 객기를 부리며 올라탔다가 소가 놀라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거꾸로 떨어지며 소의 거시기에 코 박아 얼굴은 벌겋게 부어오르고 냄새로 치를 떨었지요. 그 애는 마냥 즐겁다고 깔깔 거렸지만...“아휴!” 싱아도 꺾어다주고 칡뿌리도 캐다 주고... 같이 지내는 시간은 정말 행복했어요. 어린 가슴에 알 수 없는 무엇이 움트고... 뭐라 말할 수 없는...그런... 벅차고 풋풋한 감정이 샘솟아 났지요. 송아지 사랑?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여자애가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간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가슴이 철렁했지요. 왜 가야만 하는지의 속사정은 몰랐어요. 드디어 헤어지는 날 속절없이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정류장에 섰어요.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온 그 애의 표정은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어요. “안가면 안 되니?”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 애의 눈가에 이미 눈물이 맺혔어요. “서울 가면 편지해. 알았지?” “응!” 그러면서 곱게 접은 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어요. 그 애의 손이 가볍게 떨렸어요. 저도 모르게 그 애의 두 손을 와락 움켜잡았어요. 창피함도 없고 이제 그 애와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죠. 제 손등에 그 애의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더군요. “잘 가!” “잘 있어!” 차에 올라 가녀린 손을 흔들다 돌아선 그 애의 어깨가 들썩이더군요. 저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어요. 차가 산모퉁이를 돌아 갈 때 까지 무작정 서서 손을 흔들었어요.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은 무너져 내렸지요. 어디선가 산비둘기도 구슬피 구구대며 울어대더군요. “선영아, 잘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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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갑자기 이글을 읽다보니 황순원 소설"소나기"가 생각나는군요.^^ 이거 잘 각색해서 영화 만들면 좋을텐데..ㅎㅎ
김성수님의 댓글
저도 유치원때는소위 킹카 그중 여자애2명이 저를 좋아해서 난리가났었고 최근에도 보고했는데 한명은 연락두절 한명은 시집갔다는설이 쩝--
한상철님의 댓글
소나기2 선배님의 글은 항상 푸릇 푸릇, 아련한 동심의 작은조각, 배경음악도 좋고 뭐하나 흠이 없네 햐 좋다~